소심한 탕진

그래도라는 섬에서 5

by 만리의 바다

옆길로 새지 않은 것은 머리 때문이었다.


인천공항 다녀오는 길에 중간 경유지에서 다들 내리고 버스 안에 남은 승객은 나 혼자였다. 기사 아저씨가 집 방향을 묻더니 가까운 곳 정류장에 내려 준다고 했다. 종착지인 터미널까지 가면 30분 이상 되짚어 와야 집에 갈 수 있음을 알기에 그러시는 것 같았다. 고마움을 표

하며 아주 오래된 역사가 있는 청소역에서 내렸다.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읍내 시장통 어디쯤의 보라 미용실이나 소라 미용실 같은 이름을 단 작고 오래된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는 거였다. 길 가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 한 세대는 거뜬히 넘긴 듯한 거울 앞에서 할머니 원장님의 손길에 내 머리카락을 맡겨 보는 일.

마침 하차한 곳 건너편에 M미용실이 있었다. 느낌이 왔다. 간다라 미술 양식 대표 불상의 그 골뱅이를 앉혀 놓은 듯한 웨이브만 아니면 된다. 제일 굵은 웨이브용

으로 머리를 마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48년째 그 자리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소문의 샘'이 되지 않고 무난히 그 자리

를 지키는 일에 대해서 느릿느릿 말씀하시는 70대 미용사의 말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아침도 못 먹었는데 12시가 넘었다. 인근 식당에 대해 물었더니 1인분은 힘들거라고 했다.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고 냉장고를 몇 번 여닫는가 싶더니 곧 양은 재질의 둥근 밥상에 한상 차림이 나왔다. 당근으로

색을 낸 콩나물무침, 고추부각,참치호박볶음,가지무침

,멸치볶음, 그리고 통묵은지 등뼈찜이 그득 담겨 있었

다. 혼자 사시면서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냐고 물었더

니, 머리하다 점심 때가 되면 손님들과 같이 밥을 먹기 때문에 늘 반찬을 이것저것 해둔다고 했다.

언젠가 TV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랑방이나 참새방앗간 같은 어느 동네 미용실에서는 때가 되면 밥을 차려주었다. 밥을 먹기 위해 먼 곳에서도 머리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들른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세면대 아래에 낮은 욕탕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는데 용도를 뒤늦게 알았다. 바닥에 상을 놓고 욕탕

용 낮은 의자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 것이었다.간이 아

잘 맞았고 통묵은지 등뼈찜은 최고였다. 고기보다 김치를 더 좋아하는데 자꾸만 등뼈를 하나 더 발라 먹으

라고 권하시더니 안 먹고 있으니 내 그릇에 놓으셨다.

밥 먹고 믹스커피까지 대접 받고나니 머리 풀 때가 되었다. 굵게 만다고 했으나 나로서는 역대급 빠글 펌.

말그대로 펌, 파마가 아니라 빠마가 되었다.


다음 날 만난 동네 여자분들의 반응이 심상찮았다. 머리

가 왜 그렇게 됐냐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웃, 이마를 드러내봐라, 머리를 묶어봐라, 머리를 귀 뒤로 넘겨봐

라......

머리가 정말 많이 상하긴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머리

가 더 부풀고 수분기가 없다. 왜 그런 모험을 하냐고 무

모하다던 어느 언니의 말이 아주 근거없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명절맞이 튀김머리, 라고 농담으로 넘겼지만 내가 봐도 '참 볼만하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안남미 밥알처럼 윤기없이 펄펄 날리는 머리카락 때문

에 사람도 많이 달라 보였다.

그 머리로는 쉬는 날이라고 해서 옆길 새기도 편치가 않았다. 두발 여건상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한시적, 타

적 조신함으로 명절을 보냈다. 밤새 복구펌 검색을 하며.

자고 일어나니 뚤레즈에 간 둘째 딸이 복구펌 비용을 토스해 놓았다.

단골미용실은 연휴 휴무중이고 신도시 사거리에 서서 불켜진 미용실을 골랐다. 상담을 거쳐 일단 머리를 손봤다.


버킷리스트에 남은 것들을 하나씩 체크해 나가는 일은 크든 작든 어떤 형태로든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래도 시골 역전 미용실의 그날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 자리에 앉게 이끈 힘은 따뜻함, 정겨움, 사람냄새, 향수, 작고 낮은 곳의 훈기 같은 것을 향한 마음이었고 역시나 그런 것이 모두 남아 있음을 확인한 걸로 족하다.


딸이 프랑스 가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얼마간의 돈을 따로 주며 탕진이란 걸 한번 해보라고 했다. 크게 탕진할 정도의 금액은 아니니 경리단 황리단 봉리단 길 정도 돌아다니며 며칠 소심한 탕진은 가능할 거라고 했

다. 아마도 그 돈의 일부를 튀김 머리 복구에 쓰라고 보냈으리라.

결국 기막힌 탕진은 내가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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