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기록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30대 초반의 나의 모습. 혼자 제주로 여행(이라고 늘 말하긴 하지만 사실은 도망이다.) 온 나의 가장 젊은 날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내가 예약한 곳은 젊은 남자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작은 사진관이었다. 그 작은 사진관 안에서 내가 원하는 장소를 선택해 찍을 수 있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는 기본 배경의 흑백사진을 선택했다. 사장님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촬영하는 내내 사장님은 내게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를 건넸고, 그 덕에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내가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밝은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지금 이 순간의 가장 젊은 내 모습과 혼자 멀리 여행 와서 무언가 의미 있는 추억을 남기고 싶은 사진이었는데 막상 사진을 받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면서 ‘영정사진으로도 참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밝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으니 분명히 내가 사라진다 해도 사람들은 밝았던 나를 마지막으로 기억하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또 언제 올지도 모르는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여행도, 나도. 행복한 순간을 온전히 즐기게 되면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데, 분명히 행복한 만큼 그 다음은 불행이 뒤따를 텐데, 다음의 불행을 막기 위해 조금만 덜 행복해하자며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웃는 사진을 보며 영정사진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참 답도 없다. 엄마아빠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아파할까.
다시 오늘의 기록을 바꿔본다. 나는 오늘 영정사진이 아닌, 살아있는 나의 가장 젊은 순간,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남겼다. 진심으로 행복하고 편안했다. 오늘은 거기까지면 됐다.
-2020년 10월 20일 제주에서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