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by yeonwoo



병원에서 새로운 처방을 받았다. 바로 책 처방이다. 항우울제가 늘어가는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셨다. 일반적인 도서 추천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해내기 힘든 것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같이 하나씩 해보자고 하셨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걸 같이 해보자고 하시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단순히 좋은 책이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책이 도착해있었다. 책을 쓴 사람은 정신의학 쪽으로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하신 교수님 같은데 실제로 우울증에 걸려보지는 않으셨겠지. 사실 잘은 모르지만,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도, 내가 입원해 있을 때 나를 진료하신 홍준표 교수님도, 주치의 선생님들도, 그리고 지금 나를 진료하시는 김지원 선생님도 중증의 우울장애를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죽음의 문턱으로 달려드는 사람의 마음은 어려운 의학 용어나 심리학의 지식만으로 헤아릴 수 없다.


같은 우울증이어도 어떤 사람은 공황에 시달리고 어떤 사람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어떤 사람은 신체화장애에 시달린다. 나조차도 그들이 되어보지 못했으니 같은 병을 앓고 있어도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쯤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아마 적어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숨 쉬며 살아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온 사람 중 하나고.


이런 책 처방을 받은 것이 처음에는 새롭고 신박해서 어쩌면 약보다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도 했었다. 아직 몇 장밖에 읽지 못했지만 확실한 건 나에게는 이런 어려운 의학용어가 잔뜩 적혀있는 책 보다 진심이 담긴 위로나 따뜻한 포옹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부정적 인지를 고치지 못하면 우울증이 나아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부정적 인지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고 그걸 고치기 위해서는 이 책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부정적인 나는 이 책 조차도 믿지 못한다.


내가 우울에 빠져있을 때 내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 부정적으로 빠져버린 생각을 긍정으로 돌리는 것이 사실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조차도 안 되는 내 모습을 더 자책하게 될 때가 많다. 오늘은 우울하고 자책이 심한 날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만 나를 낙오자와 실패자로 만들고 그렇게 만드는 것 또한 나다.



나는 나로 살 수 있을까. 나로 사는 것이 힘들다.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좀 더 견딜 수 있었을까. 어딘가에 빠져 허우적 대다 조용히 가라앉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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