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늘 먼저 다가가는 편이었고 그러다 보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상대방도 늘 마음을 열고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먼저 다가가면 언제까지고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혼자만 유지하려는 관계는 되려 나를 지치게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 내가 힘들 때마저 나를 외면하는 친구들. 나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친구들이 늘어만 갔다. 이런 관계에 허무함을 느끼고 권태감을 느낄 때에도 어리석은 나는 하나라도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두려워 항상 먼저 연락하고 다가갔다. 내가 지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급한 일이 있으니 목돈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오랜만에 만나서 나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새로 시작한 일이 있는데 몇 개의 계약서가 필요하다며 만나자마자 계약서부터 들이밀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는 처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처음엔 나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친구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이니 나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지치는 관계는 나도 이제 그만하려 한다. 내가 찾지 않으면 나를 찾지 않은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며, 나에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나를 외면하는 사람 또한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다.
뜬금없이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박정민 배우(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스터를 찍어 보낸다거나 주말에 떠난 짧은 여행에서 아기자기한 보라색 소품들을 보니 네가 생각났다 하는 사소하지만 애정이 깊은 연락을 사랑한다. 어젯밤 꿈에 네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꿈자리가 흉흉하니 오늘은 몸조심하라는 한 번도 맞은 적 없는 그들의 어설픈 직감을 사랑한다. 퇴근하는 길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는지, 요즘 잠은 잘 자는지 물어보는 그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사랑한다.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한 관계가 사소한 것들에 의해 끊어지고 사소한 것들에 의해 유지가 된다. 어쩌면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도 사소한 것들에 의해 다시 끊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한 나도 그들을 사랑할 것이고 그들이 나를 믿어주는 한 나도 그들을 끝까지 믿을 것이다. 그것만 있다면 우리는 결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겠지. 비록 사소한 일들이
우리를 갈라놓으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