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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게 뭐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깊어지는 자아성찰에 대한 기록

by yeonwoo



대학생이 되던 해부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면 항상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취미'와 '특기' 란이었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고 특기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이란다. 나는 둘 중 어떤 것도 쉽게 적지 못했다. 딱히 즐기기 위하여 하는 어떤 것도,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어찌어찌 대충 적고 뒷 장으로 넘어가면 자기소개서에서 '장/단점'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또다시 막혔다. 단점은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겠지만 장점은 정말 쥐어짜 내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수정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나, 혹은 나는 어떻게 이렇게 즐기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하고 싶다가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생각에 이직을 포기하게 된다.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이런 건 학생 때나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이쪽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도, 내가 잘하는 것도 모르고 살았나 싶어서 더 머리가 복잡해진다.


사실 그동안 아무것도 시도한 것이 없느냐 한다면 그건 아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무리를 해서라도 배워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재미를 붙였던 일본어라든지 중국어, 영어회화, 피아노, 스윙댄스 등등... 직접 더 넓은 곳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혼자서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보기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고 돈을 모아 많은 것들을 하며 참 알차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누군가 "좋아하는 게 뭐예요?" 혹은 "잘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은 난리가 난 듯 바빠진다. '나는 야구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야구를 잘 챙겨보지도 않으니 이건 취미가 되지 않겠지? 집에서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것도 취미가 되려나? 그나마 일본어를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자격증은 고작 3급이니 특기라고 하면 비웃겠지? 글을 쓰고 책을 낸 적은 있지만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했으니 특기라고 할 순 없을 거야.'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취미와 특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이것들에 대한 기준은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 누군가 '그래, 그 정도는 돼야 취미라고 할 수 있지. 그 정도는 돼야 특기라고 할 수 있지.'라고 정해 놓은 것도 없다. 그 기준은 오직 나로 인해 정해진다. 얼마나 흥미를 느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맞고,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잘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입사한 회사에 제출한 이력서에 취미는 야구 관람, 특기는 글쓰기라고 적었다. 야구는 물론 집관보다는 직관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취미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야구장에서 직관을 할 때 굉장히 신나고 즐겁다. 글 쓰는 것을 특출 나게 잘하지 않아도 남들은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나만의 책을 출간했으니 그것만으로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해 매일 고민한다. 그것들을 찾아나가는 것이 버겁고 힘들기도 하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회사에서 야근하는 것보다 힘들고 남자 친구와의 다툼보다 아프다. 그렇다고 해도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네 생각, 내 생각 다를 수도 있지.


또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젠 뜸 들이지 않고 말하고 싶다.

잘하는 게 뭐냐고요? 저 글 잘 쓰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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