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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Mar 27. 2024

[화조풍월 연작 3] 風 : 허수아비와 바람

알 수 없는 존재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화조풍월 (花鳥風月)

명사  |  꽃과 새와 바람과 달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일반적으로 풍류를 일컫는 말이며, 혹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쓰인다.



    어느 들판에 허수아비가 살았다. 허수아비는 들판에 단단히 고정된 채 언제나 꼿꼿이 서있었다. 이따금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허수아비는 넘어지지 않았다. 허수아비는 그저 묵묵히 새들을 쫓고 들판을 지킬 뿐이었다. 새들은 그런 묵묵한 허수아비를 피했다. 들판을 탐내며 돌아다니는 새들은 허수아비의 눈에 어지럽고 시끄럽기만 했다. 허수아비는 새들이 자신과 들판을 지나치기를 바랬다.

      어느 날 새들이 들판 너머의 세상을 얘기하는 소리가 허수아비에게 들려왔다. 허수아비는 문득 들판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보니 아름다운 들판은 이제 허수아비에겐 늘 똑같은 지루함 뿐이었다. 허수아비는 새들에게 들판 너머의 세상을 묻고 싶었지만 새들은 그를 피하기에 바빴다. 허수아비는 새들이 부러워졌다.

      그러던 중 바람이 불어와 허수아비를 감쌌다. 허수아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늘 꼿꼿이 버티던 허수아비는 흔들림이 반갑게 느껴졌다. 허수아비는 바람이 자신을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수아비는 바람에게 물었다. 이 들판 밖엔 무엇이 있니. 바람은 말했다. 적어도 네가 평생 본 적 없는 다른 풍경 일 거야. 허수아비는 바람에게 부탁했다. 그럼 더 강하게 불어서 날 새들 처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줘. 그러나 바람은 허수아비의 부탁을 거절했다. 내가 널 데려가면 넌 사지가 찢어지고 머리가 부서져 결국 쓰레기가 될 거야. 허수아비는 화가 났다. 새들은 데려가면서 왜 난 안되는 거야. 바람은 단호하게 말했다. 넌 이 들판에서 밖에 설 수 없어. 넌 다른 곳에선 조각난 헝겊, 썩은 나무 쪼가리에 불과해. 날 따라 나서면 넌 산산조각 나서 죽어.

      이내 바람은 새들을 데리고 허수아비를 떠나갔다. 허수아비는 들판에 홀로 남겨졌다. 허수아비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들판을 지킬 뿐이었다. 허수아비는 이제 바람을 따라간 새들도 산산조각 나서 죽어버리기를 바랬다. 들판 밖 세상이 두 번 다시는 자신의 귀에 들어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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