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1.2020 5:30 AM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어 빌어주소서.
나는 무료할 때 가끔 묵주 기도를 머릿 속으로 되뇐다. 불면증의 밤이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 거리를 걸을 때 머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제일 많은 경우는 버스를 타고 갈 때이다. 차 타고 멀리 갈 때 늘 묵주 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16년 겨울에도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대학 입시가 끝난 뒤였다. 그 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혼자 만의 시간이 없던 나는 그 때 홀로 떠나는 나들이를 계획했다. 목적지는 혜화로 정했다.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를 눈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아침 일찍 포항 시청 간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다. 휴대폰을 보고, 음악을 듣다 창 밖을 본다. 그러다 모든게 지루해지면 나는 그 때 부터 묵주 기도를 외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무언가를 바라며 기도를 하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버스에서 빨리 내리고 싶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곧 높은 건물과 두배는 많아진 차들이 보이고 버스는 서울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더듬어 3호선과 4호선을 타고 혜화역에 도착했다. 당시 내 기억에 혜화는 굉장히 커 보였다. 외국에 온 것 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다. 나는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비오는 주말의 학교는 사람도 없고 휑했다. 꽤나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난 어떻든 상관없었다. 3년간 흘린 내 땀과 피가 눈 앞에 있었다. 이 학교, 이 동네에서는 모든게 다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안고 살아간다. 어제가 힘들었던, 오늘이 잘 안풀리더라도, 내일이 불안하더라도. 어제와 오늘보단 내일이 더 밝기를 바라고, 믿고 사는 것이다. 그걸 다르게 말하면 목표나 꿈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그런 미래를 맞은 확률은 매우 낮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가 있으리라는 거짓말, 삶을 유지시키는 가장 큰 거짓말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결국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 죄인들이 가득한 셈이다.
19살의 내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반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더이상 혜화는 크게 느껴지지 않고 높은 건물들이 더 익숙하다. 학교는 여전히 사람이 적고 휑하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많더라도 휑하게 보인다. 3년간 흘린 피와 땀은 이제 더 많은 피와 땀을 요구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그 간의 내 거짓말에 눈 감고,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을까. 19살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로등 불빛 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꺼이 죄인이 되기로 한 19살의 나 처럼, 지금의 나도 거짓말을 꾸미며 살 수 밖에 없다. 늦은 새벽, 불켜진 방 안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거짓말쟁이 죄인이 되기로 한다. 이번만큼은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길 바라면서.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