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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에서 시어머니 얘기를 해볼까 3

시래기 된장지짐

by 이정

며칠, 어머님의 아침전화는 소강상태였다.

나는 겨우 큰 숨을 쉬며 출근을 할 수 있었다.

맘이 상하셨는지, 눈치가 뵈셨는지는 모르나

영이의 수유시간, 수면시간에 맞춰 오던 전화도 잠잠했다.

급하게 구한 이모님은 당췌 미덥지 않았고, 나는 소위 ‘이모님 대란’ 을 겪어내는 중이었지만

나는 어머님께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참견도 간섭도 단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에 올라와 계셨던 때, 점심시간이면 전화를 드렸던걸 기억하셨는지

딱 점심시간에 맞춰 온 전화가 시작이었다.

어머님이라는 글자가 핸드폰 화면에 뜨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머리가 띵했다.

팀원들 앞에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할까 싶어 회의실로 달려가는 동안,

끊어져라 끊어져라,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어머님은 전처럼 울지는 않으셨으나, 무언가 달라진 태세였다.

힘들지 않냐며, 새로운 이모님은 괜찮냐며, 너가 너무 고생이라며.

아들 앞에서만 하시던 내 걱정을

아들도 없는 전화 너머로 자꾸 늘어놓으셨다.

그리고 이내, 용건을 내놓으셨다.

"그래서 말인데, 영이 우리집으로 내려보내.“


숨이 턱 막혔다. 당췌 무슨 소리를 하시는건지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나도 일하느라 바쁘니, 아이를 어머님댁으로 내려보내고

주말마다 와서 함께 지내면 좋지 않겠냐는 어머님의 말씀.

백지상태가 된 머릿 속을 추스리며 숨을 골랐다.

'바쁜 며느리를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시는 걸수도 있어. 그래 그런걸꺼야!'

어머님 이웃 중에

맞벌이 자식내외를 위해 아이를 대신 키워주는 친구분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일을 그만둘듯 말한지라

외벌이 할 아들래미가 걱정되어 필요이상 반응하신 걸수도 있다 생각하고 싶었다. 정말 그러길 바랐다.


"어머니, 저 못 보내요. 내 새끼를 내가 키워야지 어떻게 보내요."

며느리의 거절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다. 맹랑하기로 맘 먹은 며느리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어머님은 물러설 생각이 없으셨다.

“내 새끼도 되지! 생판 남한테 맡기는거보다야 백번 낫지! 왜? 내가 애 망칠까봐 그러냐?“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머님의 말 속에서 나는

고집센 며느리가 되었다가, 매정한 어미가 되었다가, 이기적인 워킹맘이 되었다가,

이리 꺾이고 저리 메쳐졌다. .

더 듣다가는 영영 어머님을 못 볼 것만 같았다.

당신도 아주버님과 남편을 낳고 늘 일을 하셨던 분이셨다. 같은 워킹맘끼리 어떻게 내게 이럴수가 있을까.

회의 가야 한다고 몇 번에 걸쳐 말을 막아서자,

결국 더 이어가시지는 못했으나, 개운치 않은 마지막 말을 기어이 덧붙이셨다.

"생각해봐라.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생각하고 말것도 없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너무 보고 싶어서

틈만 나면 아이의 사진을 돌려보는 내가

먼 곳에 보내놓고 멀쩡한 생활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

아이를 주지 않고 부엌으로 내몰았던 어머님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 싫어, 엄마 싫어, 를 가르치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 날이 시작이었다.

어머님은 늘 같은 시간에 전화를 해서

먹은 점심을 체하게 만들었다.

처음은 안부를 물으시고, 내 건강을 걱정하신 후에,

아이를 보내라. 말씀 하셨다.

카랑한 목소리로 속사포같이 쏟아내시는,

배려를 빙자한 강요를 나는 어떻게든 끼어들어

차분하게도, 단호하게도, 간곡하게도, 날카롭게도 막아섰으나

매일이 반복이었다. 어머님이 키우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 전화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가 결국 목소리를 높이며 그만 하시라 했던 날,

계속 이러시면 이제 어머님을 볼 수가 없다고 화를 냈던 날,

어머님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고 잔소리를 하시더니

양보인지 뭔지 모를 결론을 내리셨다.

"그럼 둘째 낳아서 둘째는 보내. 얼른 낳아 얼른."


내 속의 위태하던 줄이 탕, 끊어지는 걸 느꼈다.

아주버님과 남편을 낳고도 일을 하느라,

예쁜 시기에 충분히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을 늘 아쉬워했던 어머님.

어머님은 나를 통해 그 아쉬움을 채워넣으려고 하는걸로 여겨졌다.

아이에게 엄마 싫다는 말을 열심히도 가르치시던 목소리,

아이를 한 번 안아보려는 나를 밀쳐가며 부엌으로 내몰던 모습,

내 품에 겨우 안긴 아이를 당연한듯 뺏어가던 행동.

서러움을 넘어 모멸감을 느꼈다. 첫째가 안되면 둘째라도 보내라는 말을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내가 내 새끼 곁에 있기 위해 왜 이토록 애써야 하는지.

이 상황을, 그리고 기어이 이 강요를 밀어붙이는 어머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정이나 하지 말 것을.

"어머님, 저 영이랑 떨어지면 못 살아요. 제가 키울거에요." 라고 울먹이던 내게

"유난도 떤다! 누가 보지 말라디? 주말에 와서 보라는데 왠 유난이야."

라며 매정히 대답하던 어머님의 목소리는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을 얼음장으로 만들었다.

그런 어머님에게 내 새끼와 떨어뜨리지 말라고 사정했던 내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그 얼음장은 쨍그랑 쨍그랑 깨지며 날이 서렸다.


어머님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점심시간 내내 전화기가 울려도 족족 끊어버렸다.

남편이 "엄마가 너 전화 안 받아서 걱정하시더라." 는 말을 전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남편은 어머님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거라 했다.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이토록 크게 반응하는 내가 어이 없다고 했다.

무시하면 되지 일일히 반응하는 나를 예민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어머님 편이었다.

연애 내내 너무 무뚝뚝한 아들이어서

내게 잔소리를 그리 듣던 남편은

어머님에게만 너그러운 효자였다. 남편은 유부남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효자 명찰도 챙겨 단 듯 했다.

내려가서 어머님과 살라는 말이 또다시 튀어나왔다.


명절이면 어머님댁에 가서 하룻밤 자야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고역이었다.

식사 하는 것 정도는

예의 바르지만 단호하게, 미소를 띄되 사무적으로,

그리 대하며 내가 정한 선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으나,

어머님과 부대끼며 이틀을 붙어있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외로 맘이 약한 내가

좋은게 좋은거라며 혹여라도 무뎌지면

어머님은 이때다 하며, 내가 쳐놓은 선을 덥썩 넘어올 것만 같았다.

다행히 영이는 효녀였다.

잔병치레가 거의 없던 영이는 신기하게도

명절 전 날이나 전전날쯤에 꼭 열이 났다.

열 나는 아기를 차에 태워 먼 길을 오라는 말은 어머님도 차마 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영이 뒤에 숨어 두어번의 명절을 건너뛰었다.

영이의 병치레는 거짓이 아니었으나,

어머님도 남편도 그 뒤에 숨은 나의 본심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아도 상관 없었기에 굳이 숨기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몇 번의 명절을 건너뛰며

어머님은 어느정도 내게 항복을 하신듯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편이 어머님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영이를 보내라고 이정이를 달달 볶았냐는 질책 또한

어머님의 '영이 데려오기' 계획을 접으신 것에 한 몫 한듯 했다.


어머님의 입에서

꽤 오래동안 그 말이 더이상 나오지 않음을 확신한 후에야

나는 어머님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뱃 속에는 신이가 있었기에

"둘째 얼른 낳아라. 낳아서 나한테 보내." 라는 말이 종종 떠올라서

마음이 괴롭고 불안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나는 이미 착한 며느리이기를 포기한 채였다. .

어머님을 포기시키는 방법을 알았으니,

또 그러신다면 이제는 영영 어머님을 안 볼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님은 신이에 대해서

영이 때와 같은 행동을 하실 수 없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어머님에게는

아이들을 보내라는 요구를 할 명분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에,

"아니 그러면, 애비 혼자 벌어야 하는거야? 그러면 힘들어서 어째!"

고생할 아들 걱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애비는 어쩌냐고 한숨이 늘어지는 어머님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만 둔 이유 중 일정 부분은

어머님이에요. 안타까워할 자격 없으세요 어머님.'


어머님의 외벌이 아들걱정이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유치한 승리감과 치졸한 통쾌함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못되먹은 며느리를 자청하고 있었다.

착한 며느리보다는 그 편이

내 가족을 지켜내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의 기분을 맞추느라 잔뜩 구겨진 마음을

남편 앞에서 펼쳐내어 본들,

본인의 엄마를 함께 욕하기 힘든 입장도 이해가 되었으므로

나는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래서 그 즈음 어머님이 내게 자주 한 말은

"그래 너 잘났다!" 였다.

어머님에게 맺힌 마음은

한 켠에서 죄송한 심정들이 들고 일어나서야

조금씩 희석되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복수라고 할지도 모르나,

내게는 그저 안전지대의 확보였다.

최대한 어머님과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어머님이 쉽사리 건너오지 못하리라는 것이 확인 되어야만 했다.


영이와 신이에 대해 어느정도 마음을 내려놓은 어머님은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삼시세끼 밥타령을 시작하셨으나

그 정도는 기꺼이 받아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시래기가 나오는지

어머님은 찾아뵐 때마다 양 손 가득 말린 시래기를 들려주셨는데

눈 딱 감고 받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받고 나서가 문제였다.

수시로 전화하셔서 시래기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셨기 때문이다.

다 먹었다고 하면 처치곤란한 시래기를 또다시 잔뜩 보내셨고,

아직 남았다고 하면 도대체 뭘 해먹고 살길래 아직도 남았냐며 성화셨다.

어느날, 여지없이

"뭘 해 먹고 살기는 하는거냐? 왜 아직도 시래기가 남았어!" 하는 어머님 말에

"어머님. 허구헌날 시래기만 먹고 살아요 그럼?"

한참 크는 애들 여러가지 골고루 해먹여야 하는데

주구장창 시래기만 해 먹일 수는 없다고 따박따박 대꾸를 했다.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뭐 하나를 끓이면 일주일 내내 같은 반찬 같은 국만 밥상 위에 올리셨다고

남편이 어머님 흉을 보았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너 잘났다. 아주 그냥 고루고루 해먹여라."

어머님의 언짢다는 대꾸에도 나는

"넵!" 얄밉게 대답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어머님을 대하는 법을 터득해갔다.


어머님을 대하는 법은 점점 능숙해져서

"아니, 다른 아들들은 결혼하니까 살이 오른다던데

애비는 왜 도통 살이 안 오르니?" 하시면

"어머님이 30년 넘게 못 찌우신 살을 제가 몇 년만에 어찌 찌워요."

라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받아칠 줄도 알게 되었고

"너는 얼굴이 좋아졌다? 애비는 영 얼굴이 그대로인데." 라고 하시면

"내가 저 사람 밥이라도 뺏어 먹을까봐 우리 어머님은 잠도 못 주무실거야 아마. 그쵸?“ 하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정곡을 찌르는 법도 익혔다.


집들이에 사돈의 팔촌까지(정말이지 이웃에 친구까지) 끌고 오셔서는

"수저 하나씩만 더 놓으면 되는데 뭘 미리 알리고 말고 하니!"

하는 말에도 네네, 하고 부랴부랴 준비했던 순한 며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만삭 며느리에게 느이 형님은 당췌 음식솜씨가 없으니

아주버님 생일상을 차려놓고 초대를 하라고 하시는 말씀에도

눈물만 뚝뚝 쏟았던 여린 며느리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머님에게는 수난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맞받아쳐도 되돌아오는 어머님의 말들에

나 또한 슬슬 속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만 건드리지 않으시면 된다고 생각하며 지났다.

몇 년 전의 어머님에 비하면

이만하면 양반이라고 여기며 애써 보내는 날들이었다.





시래기 된장지짐


어릴 적, 시래기국이 식탁 위에 오르면

밥 한공기를 척 말아, 신김치를 쭉쭉 찢어 올려

한 술 크게 떠먹었던 맛있는 기억이 있습니다만,

언젠가부터는 저에게 애증의 재료가 되어버렸죠.

말린 시래기를 불리는 특유의 향도 지긋지긋했고

냉동실에 가득한 시래기통들도 거슬리던 날들이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어머님과 서로를 적당히 받아들이며 잘 지내는 중입니다.

어머님은 더이상 시래기를 떠안기시지 않고,

저는 국이며 지짐이며 식탁에 올리면서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시래기는 잘 불려야 질기지 않게 먹을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푹 불려주시고, 혹시 시래기 껍질이 잘 제거되지 않았다면 불리면서 꼭 벗겨내주세요.


1. 말린 시래기를 불립니다. 시래기를 넣고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불을 낮춰 30분 이상 푸욱 끓인 후에 불을 끈 상태로 3-4시간 불려놓습니다.

2.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시래기를 된장을 풀어넣은 멸치육수에 넣고 끓입니다. 끓어오르면 중약불에서 자박하게 맛이 배도록 졸여주세요.

3. 적당히 자박해지면 들기름을 두르고 파마늘을 넣어 한소끔 더 끓입니다.

4. 마무리로 들깨가루를 넣고 부족한 간은 멸치액젓이나 국간장으로 맞춰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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