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무침 비빔밥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 첫 가족모임이었다.
결혼 전부터 어머님과 형님의 사이가 편치만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있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어머님은 형님을 알게모르게 무시하시는 것이 번연히 드러났고,
형님은 내가 봐도 답답한 구석이 많았다.
어머님을 이해하다가도, 형님이 안쓰럽다가도,
그러나
대장이어야 하는 어머님과, 의지하기 좋아하는 형님은
어쩌면 찰떡궁합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 날도 식사자리에 앉자마자
어머님의 불편한 심기가 눈에 띄었다.
집으로 초대해놓고 집밥이 아닌 바깥밥으로 대접한다는 사실은
밥타령이 유독 심한 어머님의 눈쌀을 내내 찌푸리게 만들었다.
막 결혼한 새댁이 앉아있기 불편하도록 어머님은
형님을 몰아세웠다.
"점심은 뭘 해서 먹였니."
"중국집에서 시켜 먹었어요."
"너는 어떻게 된 애가 허구헌날 배달음식이니."
"애들이 먹고 싶다는데 어떡해요 그럼."
"오죽 엄마밥이 별로면, 허구헌날 바깥음식 타령을 하겠니!"
아주버님댁 아이들은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다.
나는 형님보다 아이들의 마음이 더 걱정되었다.
시어머니에게 질책당하는 엄마를 보는 일이란 괴로운 법이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를 보며 그 괴로운 마음을 평생 느껴왔었다.
이제 좀 멈추었나 싶었던 것은 착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형님이 잠시 화장실에 가자마자
어머님은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큰조카에게 물었다.
"느이 엄마 밥 잘 안 해주지?"
"뭐, 어차피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별로 없어."
"아니, 집에서 먹을 일이 왜 없어!"
"친구들이랑 보통 사먹어."
"집에 먹을게 없으니까 자꾸 사먹게 되지!"
"..."
"오늘 아침엔 뭐 해주든?"
"아침 안 먹었는데?"
"하이고... 집구석에서 도대체 뭘 한다니 느이 엄마는!
그러면 어제 저녁은 뭐 먹었어?"
"친구들이랑 햄버거 사먹었어."
"집구석 잘 돌아간다. 느이 엄마는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애 밥 하나 안 챙겨주고 뭐하는 거야!"
충격이었다.
시집살이 호되게 시켰다는 우리 할머니도
나를 취조하며 엄마 흉을 보지는 않았었다.
당황해하는 시조카들 보기가 맘 아팠다.
아직 철이 덜 든 아이들은 이 갈등에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아니라고, 엄마가 해준다는데도 우리가 우겨서 그런거라고 엄마를 변호하려는 조카 말을
탁탁 끊어내시며 형님을 깎아내리시는 어머남의 발언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듯 했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뭐 하루이틀이야. 그러려니 하셔." 라며
어머님의 말에 은근한 동조를 보내는 아주버님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남편의 태도였다.
그 분위기가 힘든 것은
나와, 조카들뿐이었다.
어머님의 추궁은 영이와 신이 또한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 또한 집밥에 열심인 사람이었으므로
어머님이 그닥 잡을 트집이 없을거라 생각했으나
맘 먹고 달려드는 이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어머님은 아이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느이 엄마가 저녁은 잘 해주든? 뭘 해주든?" 을 물으셨다.
같은 질문이어도 이왕이면 "저녁은 뭘 먹었니?" 하시면 좋으련만
늘 약간의 빈정거림을 말 끝에 매달고는 "잘 해주든?" 이라고 던지는 질문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지라 습관처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 것을 아신다면 덜하실까 싶어서
일부러 대화내용을 다 듣고 있는 티도 내봤고,
아이들이 스피커폰을 더 편해한다고 말씀도 드렸지만
어머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어머님의 전화가 울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오늘 식사메뉴는 뭐였는지 얼른 떠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다.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게 아니니, 내가 나서서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맑게 손을 꼽아가며 반찬들을 읊는 아이들을 보며
굳이 문제 삼으며 어머님과 부딪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말투의 문제일거야. 별 의미 없는 질문일거야. 스스로 다독이며
때마다 올라오는 불쾌함을 나의 속좁은 트집으로 치부하려고 애썼다.
어머님과 상관없이 집밥에 유별을 떠는 나의 성향이
그나마 이 갈등을 키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며 지나가고 있었다.
남편은 분기별로 크게 앓곤 했다.
편도선염이 도지면 이삼일 끙끙 앓아야 일어났다.
어머님은 남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통곡을 하시곤 했다.
맹랑한 며느리는 참다참다 때로는
"어머님, 누가 들으면 애비가 중병 든 줄 알겠어요." 라며
한마디씩 던져보기도 했으나,
감기걸린 아들이 딱해서 쏟아지는 눈물을 어머님은 때마다 멈추지 못하셨다.
안그래도 어린 아이 둘에, 침대에서 꼼짝 못하는 남편까지, 심신이 지친 나에게
남편의 죽과 보양식은 어떻게 챙기고 있는지
꼬치꼬치 확인하시고 잔소리를 보태시는 어머님의 전화에
나는 진이 빠진 터여서 전화 세 번 중에 한 번은 건너뛰던 참이었다.
그 날은 주말이었다.
남편과 신이는 늦잠을 자는 중이었다.
편도선염 이후에 입맛이 없다는 남편을 위해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봄동비빔밥을 해주려고 재료들을 준비해두고
가족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이가 먼저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영아. 아침 먼저 먹을래?"
"아니. 아직 배 안고파. 있다가 아빠랑 신이랑 같이 먹을래."
"그래. 그러면 좀 기다려봤다가 늦어지면 먼저 차려줄게 먹어."
막 무쳐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는 봄동비빔밥이기에
영이에게 조금 기다려보자고 하는 중에, 영이의 전화기가 울렸다. 어머님이었다.
아침 8시였다. 주말 아침 8시면 아이들에게는 한밤중이었으나,
어머님은 그런 것을 안중에 둘 분은 아니셨다.
며느리가 자꾸 전화를 잘라 먹으니, 영이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리라.
영이는 이제 좀 커서 더 이상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지는 않았으나
영이의 대답을 들어보면 대화내용을 가늠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그게 아니구요. 아니요. 아뇨 그게 아니구요.
아뇨 제가 좀 이따 먹는댔어요.
아니에요. 아빠랑 신이가 아직 자서
같이 먹고 싶어서 제가 그러자고 한거에요."
예상하던 어머님의 반응이었으나,
그 날 조금 달랐던 점은
영이가 어떻게든 어머님의 말 틈에 나를 변호해 주려고 했던 것이었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할머니는 왜 자꾸 이러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했던 점이었다.
영이의 불편한 내색 위로
그 날의 조카들의 표정과, 나의 몸둘 바 모르던 마음이 겹쳐졌다.
십여년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던 내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그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봄동무침.
혹여 아삭한 식감이 덜해질까,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무쳐주고팠던 나의 마음이
허탈함을 넘어 못나게 느껴져서
봄동이고 뭐고 개수대에 넣어버리고만 싶어졌다.
"할머니는 옛날 분이시라, 늘상 밥 걱정이 많으셔서 그래." 라고
영이에게 애써 어머님 입장을 들어주면서도 굳어버린 내 표정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이제 더는 아니다. 영이는 눈치가 빤하게 컸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영이까지, 조금 후에는 신이까지 속상할 일들이 많아질 것만 같았다.
"맨날 전화하면 엄마가 밥 안 해 주는 사람처럼 흉만 보려고 드셔."
영이의 볼멘 소리에 나는 기어이 칼을 뽑아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에게 통보를 했다.
어머님의 "느이 엄마는 뭐하느라 그것도 안 해준다니." 라는 레퍼토리는
남편도 알고 있는 터였다.
늦어진 식사시간 때만이 아니었다.
청국장을 보내주시면 한동안은 전화로 청국장을 먹었는지 확인하시며 덧붙이시는 말이었다.
시래기든, 애호박이든, 감자든,
우리집 식탁 메뉴가 어머님의 예상이나 바람과 다를 때마다 득달같이
"뭐한다고 그것도 안 해주니." 라며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날리셨다.
그간, 내가 문제삼지 않고 지나가는 투정 정도로 넘겼기에
남편 또한 별 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으나,
가끔 남편 앞에서도 어머님이 밥타령을 하실 때면
"걱정을 마세요. 엄마보다 이정이가 몇 배는 잘 해먹여." 라며
어머님에게 퉁명스레 말을 보태기도 했고 , 그만 하시라고 나서서 막아서기도 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이 더 맘을 다치기 전에,
할머니에게 반감이 생기고, 엄마를 애잔한 존재로 느끼기 전에,
당분간 어머님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나의 통보를
남편은 받아들였다. 경험을 통해 남편은 내가 맘먹은 이상, 그리 할 것을 알았을 것이고
참아라 참아라 하기에는 언제고 터져나올 일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저, 어머님이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셔야 하니,
자신이 상황설명을 해드리겠노라는 말만 하고는
우리는 일단 그리 지내보기로 했다.
십여년만에, 나는 다시 어머님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남편은 어머님과 긴 통화 후에
나에게 어머님 입장을 전해주었다.
어머님은 본인이 그리 말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노라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어머님의 그 레퍼토리는 남편 또한 늘상 듣던 것이니
기억조차 못하시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으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들인듯 하다는 결론이었다.
그 날 이후로 어머님은 나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셨고,
전화 좀 받으라는 문자도 넣으셨으나, 나는 피했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어머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나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어질 것만 같았다.
전화와 문자가 거듭되기에,
'제가 지금은 통화하기 힘드니, 나중에 맘이 좀 가라앉으면 전화를 드릴게요.'
라고만 대답하고 나는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그 기간동안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남편이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나에게 '별 말도 아닌데.' 라며 어머님 편을 들었다면
모든 화를 남편에게 쏟아내고 내 마음은 더 냉랭해질 수 있으련만,
남편은 나에게 아무 내색을 않고 지냈다.
어머님의 호들갑은 연락이 닿지 않는 며느리 대신 아들에게 가 닿았을테고.
가운데에서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힘이 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남편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간히 어머님 얘기가 나오더라도
일단은 네 마음이 나아진 후에 통화를 하는 것이 맞다며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엄마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라고 내 눈치를 살피는 남편이
나는 안쓰럽고 짠해서 모른체 하기가 힘들었다.
남편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잡고
어머님에게 한 달여만에 전화를 했던 날,
나는 그런적이 없다, 했더라도 별 말 아닌데 그렇다고 그리 연락을 피할 일이냐,
등의 말씀에 뭐라고 대답할지 나름 준비를 하고 전화한 터였는데
예상치도 못한 어머님의 말들을 들어야 했다.
어머님의 첫 마디는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내가 왜 그랬을까." 였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셔서 남편과 아버님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늘 그리 말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셨다고.
내가 살뜰히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는걸 충분히 알고 있고,
사방에 자랑까지 하고 다니는데 왜 그리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애들은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배운데가 없고, 말이 무식해서 그런가보다는 결론까지 닿으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기어이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다.
내가, 나의 까칠한 성격이, 나이 드신 어머님으로 하여금
무식해서, 못나서, 라고 사과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죄스럽고 후회되고 마음이 아팠다.
"아니에요. 저는 어머님이 일부러 그러신다고 오해했어요.
어머님이 모르고 그러신줄 알았으면 제가 좋게 말씀드렸으면 됐을텐데."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며 우는 내게 어머님은
"그려. 너는 할 말은 하는 애면서 왜 그건 참고 있었대.
앞으로 내가 또 그러거든 너가 꼭 말해라. 내가 말을 무식하게 할 때가 많아."
우리는 전화통을 붙들고 엉엉 울며
서로 더 미안하다고 실갱이를 했다.
나는 그 날 밤, 퇴근한 남편에게
어머님으로부터 가장 멋있는 '사과의 정석'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이드신 시어머님에게 받아낸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내가 너무 독했다고, 후회스런 맘을 쏟아놓았다.
괜찮아, 괜찮아, 한 번은 겪어야 될 일이었어. 라며 등을 쓸어주는 남편에게
말을 하지는 못했으나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간 기다려준 남편에게도 아주 고마워하고 있음을.
"당신도 고생했어." 라는 말에 남편은
"어우, 이제 좀 살겠네!" 하며 하하 웃었다.
봄동무침 비빔밥
예전에는 봄에만 나던 봄동인데 요즘엔 계절 상관 없이 만나게 되는 것에 가장 기뻤던 사람은 남편일 겁니다.
고추장 없이 고춧가루로만 무쳐서 깔끔하게 먹는 봄동무침은 반찬으로도 좋지만, 남편은 식은 밥에 봄동을 잔뜩 넣고 참기를 둘러 비벼주는 것을 더 좋아하더군요.
아빠 입맛과 꼭 닮은 영이도 좋아해서 가족들이 입맛 없어할 때나, 깔끔하고 칼칼한 맛이 당길 때에 손쉽게 할 수 있는 메뉴랍니다.
1. 봄동을 손으로 뚝뚝 뜯어 잘 씻어줍니다.
2. 파 마늘, 고춧가루, 액젓, 설탕,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쳐줍니다.
3. 무치는 동안 한 김 식혀놓은 밥(뜨거운 밥을 넣으면 봄동이 금세 숨이 죽어버립니다.)을 넣고 참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에 잘 비벼주세요.
4. 깨를 뿌린 후 잘 담아내면 깔끔한 봄동비빔밥이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