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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에서 시어머니 얘기를 해볼까 2

얼큰 소고기 무우국

by 이정

다음 날도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어머님은 점심을 대충 때웠다고만 하셨고, 내가 퇴근하면 그 때 잘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늘 그렇듯 야근은 필요했으나, 나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복직하자마자 정시퇴근을 고집하는 것에 팀원들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엄마 싫어. 할미 좋아." 를 배우고 있을 영이었다.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엄마는

둥지를 침범하는 누구든, 알을 지키기 위해 부리로 쪼아대는 어미새의 마음이다.

시어머니를 쪼아댈 수는 없으니, 나는 그저 영이 곁을 단단히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영이에게 기어이 그 말을 스며들게 하셨을까봐 하루종일 초조하고 안달이 났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려는 듯, 눈을 똘망대며 할머니의 입모양을 바라보던 영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집이 엉망이었다.

평소 자식들에게 죄다 퍼부어주시려 하던 어머님이 하실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제도 집이 엉망이긴 했으나, 오늘은 더 심각했다.

아침에 쏘아붙이던 며느리가 미워서였을까.

해주시길 바란 적은 없으나, 온 집안에 널려진 물건들을 보니

뭐라도 가서 도와주고 싶다던 어머님의 말들이 떠올라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 날도 역시나 나는 영이를 받아안지 못했다.

아들 오기 전에 얼른 저녁을 해야겠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내가 저녁을 준비하면서 분주하게 집정리를 하는 동안

어머님은 영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엄마는 바쁘다고 울애기랑 못 놀아줘. 울애기는 할미랑 놀아야지.

엄마보다 할미가 좋지? 할미 좋아 해봐 할미가 좋아."

라며 나와 영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즐거우셨다.

나쁜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부글대는 속을 가누기 힘들었다.

어머님은 뒤늦게 퇴근을 한 남편에게 가재수건 세 장을 빨았노라 보여주셨다.

세탁실 구석에 있는 빨랫비누로 조물조물 빨았다며,

영이의 발가락을 닦았다가, 이내 입가를 정성들여 닦으셨다.

나는

아이 물건만큼은 유기농 세제로 정성들여 빨고 삶고 하던 참이었다.

세탁기에 어른 빨래와 같이 돌리지도 않을만큼 유별을 떨었던 시기였다.

아이 입에 먼지 하나라도 들어갈까 노심초사 키우던 초보엄마였다.


풀어지지 않은 갈등은 때로

사소한 것으로 터져나온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이 한 번 안아보지 못하고 저녁을 차려내고 있는 내 등 뒤에서

가재수건 세 장을 들어보이시는 어머님과

"어유, 쉬시지 뭔 일을 하셨어! 서랍에 가재수건 많아요. 빨지 마요. 힘들어." 라는 남편.

결혼 후, 야금야금 쌓여오던 서운함과

이번 일로 인해 부글대던 나의 화는

가재수건을 타고 흘러넘쳤다.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어머님, 아이 입에 닿는거라 걸레 빠는 빨랫비누로 빨면 안돼요.

제가 서랍에 넣어둔걸로 쓰세요."

냉랭히 말하는 내게

당황하는 어머님의 눈빛과, 화가 난 남편의 눈빛이 동시에 꽂혔다.

상관없다. 그 둘은 어차피 한 편이었다. 내 편이 아니었다.


다음날 나는 출근을 하며, 잠시 살림을 도와주셨던 이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 화를 삭히고 있는 내게

"어머니가 힘들게 수건을 빠셨는데 굳이 그래야겠어?" 라던 남편의 말에

단단히 결심을 한 참이었다.

더는 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남편에게도 다른 방법을 찾든, 내가 애를 업고 출근을 하든,

어머님은 내일 내려가시는 걸로 하자고 통보를 해놓은 상태였다.

전화를 드린 이모님은 산후조리를 마치고 나서

잠시 살림만 부탁할 요량으로 업체를 통해 만났던 이모님이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영이를 유독이나 예뻐하셨었다.

복직 후 영이를 보살펴주실 수 있을지 여쭤봤지만,

원래는 이 일을 하지 않는데, 요즘 다른 일을 준비중이라 잠시 우리집에 왔었던 거라며

아쉽게 헤어졌던 분이셨다.

대신, 급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사정이 되는 한, 도와주겠다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모님, 삼일만요. 주말엔 제가 있으니 삼일만 와주시면 돼요."

막무가내 사정하는 애기엄마가 짠했던지, 스케줄 조정을 해보시겠다 허락을 받았다.


그 날 저녁, 내일부터 이모님이 오게 되었다는 비보에 어머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그나마 저녁 후에 안아볼 수 있던 영이와의 잠깐도

나에게 내어주지 않으려 하셨다.

어머님은 슬펐고, 남편은 화가 났다.

상의도 없이 갑작스레 어머님을 내려보내기로 한 내가 그 둘은 괘씸했을 것이다.

상관 없었다.

영이에게 엄마는 싫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을 수 있다면,

눈치를 보며 몇 십분 아이를 안아보다가 뺏기는 것을 멈출 수만 있다면,

그럼에도 어머님이 애틋해서 어찌할 바 모르는 남편을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못할 것이 없었다. 어머님과 남편이 영영 멀어진다 해도 괜찮았다.


다음 날 아침, 냉장고에 있던 소고기무우국과 생선을 구워냈다.

냉랭한 분위기에 남편은

어머니가 이제야 좀 쉬시겠다며 어색한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영이를 데리고 자주 내려가 보겠다며 묻지도 않은 약속들을 하다가

국을 한 술 떠먹고는 "커어." 하는 소리를 내며 국이 시원하다는 괜한 말을 붙였다.

"저번에 느이 형이 집에 왔는데 엄마 무우국이 맛있다고 두 그릇이나 먹더라?" 하며

딴청인지, 반박인지 모를 대답만 하는 어머님을

나는 마음으로 흘겨보았다. 얼굴을 마주보고 싶지 않아서 국에 코를 박고 있었지만,

충분히 어머님의 옆통수는 따가웠을게다. 나는 이 둘이 얄미워 죽을 판이었다.


출근준비를 하는 동안, 이모님이 오셨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 어머님만 보고 계시지 않았더라면 끌어안고 눈물이라도 흘릴 판이었다.

아침을 드시지 않았다는 이모님을 위해 서둘러 아침상을 차렸다.

무리하게 스케줄 조정을 하고 오신 이모님께

아침이라도 뜨끈하게 차려드리고 싶었다.

괜찮은데, 괜찮은데, 하며 한 술 뜨신 이모님은

평소 조용했던 분같지 않게, 어머님에게 애써 말을 붙이셨다.

"애기 엄마가 음식을 참 잘 해. 무우국이 너무 맛있어요.

어머니가 며느리를 잘 보셨어요. 아주 똑 부러지더라구요."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구구절절 말씀드리지는 않았으나, 이모님은 다 알고 계셨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어머니가 와 계시지만, 이모님이 꼭 와주셨으면 한다는 나의 말에

대충의 상황을 헤아리셨을테다.

이모님도 누군가의 며느리었으니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었을테다.


자꾸 미적미적 일어나지 않는 어머님께

얼른 출근해야 한다고, 가는 길에 터미널에 내려드려야 한다고,

이번엔 내가 어머님의 나서는 길을 재촉했다.

칫솔 하나 넣고 손주 한번 보고, 옷 하나 넣고 눈물 한 번 훔치며,

어머님은 겨우겨우 집을 나섰다.

기운이 빠진 어머님의 모습에 한 켠으로 짠한 마음이 일기도 했지만

터미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머님은 기어이 내 속을 헤집어 놓으셨다.

“불쌍한 내 새끼. 애미애비도 없이 남의 손에 키워지는 내 새끼.”

버려진 손주를 애닲아하며 눈물을 질금거리시는 어머님 곁에서

터미널로 가는 내내 나는

낳자마자 아이를 내버린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의 친할머니 손길도 내쳐버린 비정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어머님을 터미널에 내려드리고 나서야 눈물이 올라왔다.

생판 남에게 새끼를 넘기고 커리어를 지키겠다고 악셀를 밟는 어미가 된 나는

눈물도 흘릴 자격이 없는듯 하여, 혼자 있는 차 안에서도 이를 앙다물고 눈물을 구겨넣었다.


어머님은 댁으로 내려가셨고, 이모님은 삼일간 아이를 살뜰히 봐주신 후,

나는 새로운 이모님들과 또다시 이모님 대란을 겪어야 했다.

남편과도 시큰둥 했다. 내려가서 느이 엄마랑 살라고 소리지르고픈 맘이 수시로 올라왔다.

그래도 살 것 같았다.

"엄마 싫어"를 가르치는 어머님이 없으니 숨이라도 쉴 수 있었다.

퇴근 후 오붓한 영이와의 시간을 위핸서라면 더 한 것도 겪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의 안도는 오산이었다.


어머님은 이제 아이의 수유시간과 취침패턴을 알고 있었다.

나를 향한 서운함 때문이었는지 며칠 잠잠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가 우유를 먹을 시간이면 회사로 전화가 왔다. 이모님이 잘 먹이는지 확인해보라는 거였다.

아이가 잠을 자야할 시간이면 또 전화가 왔다. 할미도 엄마도 없이 잠을 잘 자는지 걱정이 늘어지셨다.

무엇보다 나의 출근시간도 알고 계시기에, 집을 나서면 늘 같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내가 한남대교를 건너는 딱 그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한남대교 싸인이 보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심장이 뛰었고, 여지없이 전화벨은 울렸다.

어머님은 매일 아침,

애미애비도 없이 자라야 하는 핏덩어리가 맘 아프다고 우셨다.

그 어린게 남의 손에서 자라는게 딱하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마를 길 없다고 하셨다.

어머님 전화를 끊고나면, 나는 또다시 내 일을 하겠다고 남의 손에 새끼를 버려둔 엄마가 되어버렸다.

냉랭한 마음으로 어머님 울음을 견뎌내고 나면,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울면서 출근을 해야했다.

한 달 가까이 어머님의 아침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어머님 말씀을 막아섰다.

"그래서요 어머니. 그래서 제가 일을 그만두시길 바라는거세요?

저 일 그만두고 영이 볼까요?"


흐느끼시던 어머님이 서둘러 추스리셨다. 갑자기 정색을 하셨다.

요즘 세상에 남자 혼자 일해서 어쩌냐며.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 이제 그런 소리 저한테 하지 마세요.

어머님 전화 받고 출근하면 하루에도 열두번씩 때려치고 싶어져요."

어머님의 아침전화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진즉 말할 것을. 미련하게 버티느라 나는 한달 가까이 울면서 출근하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이제는 좀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시원한 KO패라 여겨져서 회사에 도착하는 동안, 턱을 쳐들고 핸들을 돌렸다.


그러나, 내가 어머님을 너무 몰랐다.

"엄마는 한 번 꽂히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잔소리를 해.

버텨도 소용없어. 내가 두손두발 다 들었다니까."

남편이 연애 때 했던 말을 내가 잊고 있었다.

뭐든 본인의 뜻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지치지 않으시는 분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레벨업을 했듯이, 어머님도 레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멈추었으면 좋았으련만,

그 다음 단계는 나로 하여금

어머님에게 등을 돌려버리게 만들고도 충분했다.





얼큰 소고기 무우국


어릴적부터 당연히 누구나 아는 메뉴인줄 알았던 이 국이

경상도식 무우국이었다는 것은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지만, 콩나물과 무우가 넉넉히 들어가서 더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메뉴이죠.

소고기 무우국과 레서피는 많이 다르지 않아요. 그저, 소고기와 무우를 볶을 때에 고춧가루를 넣어 함께 볶고, 나중에 콩나물만 넣으면 완성이랍니다.


1. 소고기와 무우를 참기름과 국간장을 넣고 볶습니다.

2. 거의 다 볶아갈 무렵, 불을 끄고 잔열에 고춧가루를 함께 볶아 고추기름을 냅니다.

3. 물을 넣고 끓이다가 파마늘을 넣습니다.

4.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푸욱 끓입니다.

5. 마지막에 콩나물을 넣어 시원한 맛을 올립니다.

6. 후추로 마무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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