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얼마전, 시댁에 갔다가 돌아올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어머님은 늘 그렇듯 아이스박스에 바리바리 음식들을 챙겨주셨는데,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필요치 않은 것들이 많다. 혹은 양이 너무 많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손사래를 치기도 하고 남편까지 나서서 다시 꺼내놓는 실갱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우리 부부는 이제 포기하기로 했다.
서운해하는 어머님의 표정 앞에 굳이, 싶었기 때문이고,
어차피 다음에 오면 똑같은 도돌이를 겪어야 하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음식재료들을 잔뜩 싸주시면
한동안은 전화로 "얼마나 남았니. 다 먹었니. 뭐 해먹었니." 를 일삼아 물으시고는
아직 좀 남았다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뭘 해 먹고 사는거냐는 질책어린 성화가 이어졌기에
거짓말에 서툰 나는 늘 진땀이 났었다. 신혼 때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의 잔소리를 듣다가 깨달았다.
'친정엄마의 말들에 상처받지 않는 이유는 나도 할 말을 따박따박 하기 때문이구나!'
똑같은 말을 시어머니가 하면
부아가 치밀고 홧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어머니의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말들에 나는
찍소리 못하고 오롯이 당하고만 있는 며느리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님께 할 말 하는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그닥 센스가 넘치는 이도 아니면서 가운데서 진땀을 흘리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나도 소매를 걷어붙이기로 했던 것이다.
물론, 시어머님이 독한 분이면 엄두도 못 냈으리라.
시어머니여서 그렇지, 좋은 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여서 그런거지...
내키지 않는 음식들을 아이스박스 두 통에 가득 담고 갈 채비를 하던 중,
어머님이 방에서 쇼핑백을 후다닥 들고 나오시더니 아이스박스 옆에 스을쩍 놓으신다.
"이거, 가져가서 너 먹어." 라며 남편에게 은밀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내가 코 앞에 있었다. 은밀한 말투라지만 워낙 카랑카랑한 어머님의 목소리는
누가 봐도 내 앞에 메다꽂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내 표정을 슬금슬금 보시는 모습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는체를 해주길 바라시는건지 모른척 해주길 바라시는건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머니, 이거 뭔데요?"
잠시의 정적을 내가 깨버렸다. 나는 할 말은 하는 며느리다.
"아니여 아니여. 별거 아녀."
"아니 내 코 앞에서 아들한테 몰래 주면 그게 몰래가 돼요? 하하하."
애써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넘기기 위해 나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끌어냈다.
남편도 어이가 없는지 한 마디를 붙인다.
"이게 뭔데? 뭐 좋은거야? 아니 그렇게 하면 이정이가 모를거라 생각하신거야?"
"아녀. 별거 아녀. 그냥, 그냥 녹용인데 누가 주더라고."
그럼 그렇지. 막내아들이 애틋하고 눈에 밟혀, 뻑하면 밤잠을 못 이루시는 분이다.
할 말을 다 하는 며느리를 능가하게
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감없이 티를 내는 분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방식은 불쾌하다. 차라리 "너 먹지 마라. 이거 아들꺼야!" 하셨으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내 눈과 이미 마주쳤는데도 슬금슬금 눈치보며 아들에게 건네던 그 말투가 떠올라
자꾸 표정이 굳어지려는 것을 겨우겨우 추스렸다.
"아니, 나를 먹이고 싶어도 이정이 앞에선
며느리도 먹어라- 하면서 주셔야지, 그런다고 이정이가 이걸 다 먹겠어?
어차피 약도 잘 안 챙겨먹는 앤데, 이러면 이정이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먹어요."
남편의 따박따박 맞는 말이 이어지자,
나를 또 슬금슬금 보시며, 어색하게 큰 웃음을 웃으신다. 평소처럼 농담으로 넘기시려 한다.
"아이고, 그래! 내가 내 아들 몸 축날까봐 걱정이 됐다! 왜 어쩔래!
너 하나도 먹지 말고 다 우리아들 줘라! 호호호."
이런 상황은 종종 있었다.
이 어머님이 또 이러네 싶어, 하며 대충 넘기고는
어이없는 에피소드쯤으로 여길 짬밥은 되었다 생각했는데
그 날은 왜그리 속이 상했을까.
어쩌면 아이들이 빤히 그 상황을 보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겐 할머니가 '좋은 사람' 으로 여겨지길 난 늘 바랬다.
시집살이가 고되었던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엄마가 할머니에 대한 하소연(정확히 말하자면 뒷담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야 했는데
어른이 되고나니 아쉬운 터였다.
나의 뿌리가 '나쁜 사람' 이라고 여겨지며 사는 것은 아주 불쾌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도 일정 부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는지라
덮어놓고 할머니를 '나쁜 사람' 이라 대했던 어린시절에
나는 죄책감마저 있었다. 동시에 할머니와 어느정도 잘 지내었으면
나의 어린시절이 좀 더 풍성하고 따스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이제 눈치가 다 큰 아이들 앞에서
어머님의 이런 행동은 그간 "너희 할머니는 진짜 좋은 분이야." 라고 열심히 말해주던 나의 노력이
옹색해졌다.
엄마를 가엽게 느끼는듯한 아이들의 눈빛에 그간의 속상했던 마음이 들고 일어났다.
어머니와 나의 전쟁요소는 8할이 밥이었다.
남편이나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너처럼 밥을 해대는데도 밥전쟁을 치뤄야 하니,
요즘스타일 며느리를 봤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입을 모았다.
결혼 전부터 살림에 영 소질이 없는 형님이
밥 가지고 내 앞에서 호되게 야단을 맞거나 퉁박 당하는걸 여러번 본지라,
자칫하면 나도 저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구나 싶긴 했는데
어머님은 그 순서를 빨리 당기고 싶으셨는지 결혼 하자마자 하루가 멀다하고
"밥은 뭘 해먹였니." 를 확인하셨다.
어쩔 땐, 그럴듯한 메뉴를 듣고나면 "친정엄마가 해다줬구나?" 라며 슬쩍 떠보기도 하셨다.
"제가 한거에요." 라고 얼른 대답을 하면 "으음...." 하시며 찝찝한 반응으로 넘어가시곤 했다.
밤낮없이 바쁜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밥만큼은 살뜰히 지어, 어머님의 어여쁜 아들에게 먹이는 중이었다.
엄청난 현모양처여서라기 보다는, 나의 결혼생활 로망을 이루기 위해 그러던 중이긴 했으나
안그래도 간섭을 싫어하는 내 성격에
매일의 메뉴를 살피고, 진짜 밥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는 어머님의 루틴은
솔직히, 지긋지긋했다. 지어놓은 밥도 내쳐버리고 싶었다.
신혼 집들이도 하고, 가서 부엌일도 돕는 와중에
내가 요리에 영 젬병은 아니란걸 아셨지만
그래도 어머님 눈에는 늘 미덥잖았다.
왜 남편이 살이 오르지 않는지 자꾸 물으셨다.
평생을 마른 체질로 살아온 남자였다.
임신을 하고, 영이를 낳는 동안,
어머님과의 밥실갱이는 이어졌고, 이런저런 이유로 드러나지 않는 갈등도 겪었다.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날,
버선발로 뛰어나와 따뜻하게 품어주시던 어머님은 어느새 내게
슬슬 피하고만 싶은 분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첫째를 낳고, 이모님 대란을 겪으며
복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주일정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 처해졌다.
늘 바쁜 친정엄마는 불가했고,
우리집에 오고 싶어 몸살이 나신 시어머니가 적임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 정말 난 내키지 않았다.
오시면 일거수 일투족 부딪힐게 보였다.
안그래도 칭얼대는 갓난쟁이에게 "망할 년."이라 웃으며 달래시던 모습에
서울깍쟁이였던 나는 기함한적이 여러번이었다.
뒷통수를 예쁘게 만들겠다고 영이를 엎어 재우면
얼른 달려와 홱까닥 뒤집어 놓으시며 호통을 치시는 통에 맘이 상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있으랴.
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다음날 새벽, 한달음에 올라오셨다.
오시자마자 아이를 뺏다시피 안아드시고는
얼른 준비하고 회사를 가라며 등을 떠미셨다.
"할머니랑 같이 있고 싶지? 엄마 필요없지? 엄마 가-그래라. 엄마 가- 엄마 가-"
아이에게 자꾸 어이없는 말을 가르치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며 출근을 했다.
어머님이 아기를 돌보느라 식사를 소홀하실까봐
냉장고에 국과 찌개를 그득 채워놓은 참이었다. 좋아하시는 나물이며 밑반찬을 빼곡하게 넣어두었다.
경험을 통해, 밥문제로 핀잔을 들을 확률이 제일 컸기에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고 새벽녘까지 부엌에서 분주했었다.
그러나 점심에 전화를 하니, 대충 먹었다는 말씀을 하며 얼른 뒤이어,
이따 너 와서 제대로 먹으면 된다고, 안심시키는 말씀인지 부담주는 말씀인지 모를 얘기만 하셨다.
야근이 잡혔으나, 집으로 뛰어가야 했다. 얼른 가서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야할 판이었다.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얼른 손을 씻고
아기를 받아 안으려는 내게 어머님은 아기를 주지 않으셨다.
"냉장고를 보니, 찌개가 없더라. 뭐 밥을 슥슥 비벼먹을만한게 없어."
냉장고에는 고추장찌개도 있고, 소고기무우국도 있고, 배춧국도 있고, 콩나물국도 있었다.
"어머니, 고추장찌개 있어요. 그거 데울까요?"
"고추장찌개는 무슨. 된장찌개 끓여. 울아들은 된장찌개 좋아해."
아기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어머님은 어여 가서 된장찌개를 끓이라며
아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간다고 나를 떠밀었다.
멸치육수를 내고 된장을 푸는 내 등 뒤로
"엄마 싫지? 할머니 좋지? 말해 봐. 엄마 싫어! 할머니 좋아! 아이고 잘하네!!"
똥글똥글 눈맞추며 까르르 웃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열심히 말을 걸고 계셨다.
엄마 싫지? 라는 어머님의 카랑한 목소리와, 아무것도 모르고 까르르 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내 등에 식칼처럼 꽂혀왔다.
뒤늦게 도착한 남편은 어머님의 저 말을 저지할 생각이 없었다.
모자가 영이를 눕혀놓고, '엄마 싫어.'를 반복하고, 또 그 말이 뭐가 웃기다고 껄껄 웃는 소리들을 들으며
난 내 등에 꽂힌 식칼을 뽑아들고
두부를 썰고, 애호박을 썰었다. 어머님께 아이를 맡아주십사 전화를 했던 내 손가락이라도 자를듯이
뚜걱뚜걱 힘 주어 재료를 썰었다.
상을 물리고 겨우 영이를 받아들었다.
면회마냥 짧은 시간이었다.
몇십분 되는 동안, 어머님은 옆에서 계속
"이거 봐라. 할머니가 더 좋다잖냐. 엄마 싫어 해봐. 엄마 싫어. 할머니 좋아."
욕지기가 올라왔다. 눈물이 울컥 했다.
아이와 어머님이 자러 들어가는걸 보고 나서,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냉장고에 찌개와 국이 그득인데, 굳이 된장찌개를 끓이라 하시더라?”
남편이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한마디 했다.
"울어머니 된장찌개 진짜 못 끓이시는데.
그래서 난 어머니 된장찌개를 먹어본 적이 별로 없어.
갑자기 왠 된장찌개 타령?"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도 어머님이 내 품에서 큰아이를 뺏어갔다.
"엄마 싫어 해봐, 엄마 싫어- 엄마 싫어-" 하면서.
새벽 5시였다.
아침으로는 떡국을 끓이려고 냉장고에 미리 떡국 육수를 뽑아놓은 터였다.
방문 앞을 서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밥을 언제 하려고 안 일어나나... 남편 밥을 먹여 출근시켜얄텐데...."
부러 들으라고 방문 앞을 왔다갔다 하며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시는 어머님 성화에
주섬주섬 일어났다. 밤새 꿈 속에서 어머님께 아이를 뺏겼던 나는
좋은 소리가 안 나왔다. "떡국꺼리 다 준비되어 있어요."
쌀쌀맞게 한마디 던지고는 부엌으로 갔다.
준비하는 내내, 옆에 서서 보고 계셨다. 얘가 진짜 요리를 할 줄 아나 모르나,
"다음엔 뭐 할건데? 육수는 어떻게 뽑았는데?" 문제를 내셨다.
손이 빠른편인 나는, 육수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15분이면 끝날 일이었다.
순식간에 차려진 아침식탁을 보며 어머님은 "손은 빠르구나." 하셨다.
내 떡국이 최고라고 눈치를 보며 치켜세우는 남편에게
"먹을만은 하네. 그런데 아침에 쌀을 먹어야지 떡국이 뭐니." 한마디를 붙이셨다.
"어머니, 이거 쌀떡이거든요!"
결혼해서 처음으로 어머님께 내뱉은 날카로운 대답이었다. 어머님도 남편도 벙어리가 되었다.
앙, 하고 울며 깨어난 아이에게
어머님보다 먼저 달려가 안아들었다. 출근때까지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으리라.
어머님한테 절대 넘겨주지 않으리라.
설겆이 안하냐며 아이를 내달라는 어머님에게
"이따 와서 할거에요." 대답을 쏘아붙이고는 자꾸 내미는 어머님 손을 밀어내었다.
내 딸이야. 내 딸이 왜 엄마를 미워해. 내 딸이야. 날 제일 사랑하는 내 딸이야.
자꾸만 나오는 눈물을 들이키며 백번이고 천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소고기 떡국
요리도 간편하고, 워낙 좋아했던 떡국인데
저 날 이후로는 떡국을 볼 때마다
어머님의 '엄마 싫어.' 라는 목소리와
'쌀떡이거든요.' 쌀쌀맞던 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마음에 꽁꽁 쌓아둔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지금은 제법 잘 지내는 고부사이지만, 참 힘든 과정을 우리도 겪었구나 싶어요.
알고보니 떡국은 지역마다 레시피가 다르더군요. 보통 제가 끓이는 떡국은 서울식으로 알고 있어요.
사골국물이나 멸치육수가 아니라, 양짓머리로 육수를 내어 만듭니다.
달걀지단 대신, 끓는 국에 달걀을 풀어내어 만드는데, 둘째가 워낙 호로록 호로록 달걀을 건져먹는 것을 좋아해서 넉넉히 달걀물을 두른답니다.
1. 국거리(저는 기름이 적당히 섞인 양지를 좋아합니다)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다가 국간장을 넣어 간이 배도록 볶아냅니다.
2. 물을 부어 푹 끓이면서 육수를 냅니다.
3. 다진마늘을 넣고, 대파를 어슷어슷 썰어 넣습니다.
4. 불려놓은 떡을 넣어 익힙니다. (만두를 넣는 경우엔, 떡보다 먼저 넣어야 둘 다 알맞게 익습니다.)
5. 소금과 국간장으로 마무리 간을 해 줍니다. (달걀을 풀면 좀 싱거워질 수 있으니 살짝 간간하게 간을 잡아주세요.)
5. 팔팔 끓을 때, 풀어놓은 달걀물을 빙 둘러 넣고, 살짝 익어갈 때 살살 저어 부드럽게 풀어지도록 합니다.
6. 후추를 넣고 마무리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