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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 어느 해보다 뜨거웠기에

닭도리탕

by 이정

영이는 무사히 입시를 마무리 했다.

5월 1차 원서, 7월 2차 지필, 8월 3차 면접으로 이어지던 지리한 시험은

뒤로 갈수록 마지막 정점을 찍듯, 아이를 날카롭게 만들었었다.

나 또한 가장 어렵다는 2차를 잘 지나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지 못하고 똑같이 굴었다.

같은 길을 가는 다른 엄마들은 마지막 3차를 앞두고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숨 죽이고 지낸다던데

내 성질머리는 어찌된 노릇인지

주체도 안되고 거둬들여지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길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입시에 치이는 것보다는

중학생 나이에 겪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길 바랐었다.

자신의 고집으로 이 길을 가고 있으면서 그 스트레스를 내게 푸는 걸 느낄 때에는

끝까지 말릴걸, 싶은 후회와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은 원망이 치받았다.

이 길을 가야만 한다는 영이를 만류하다가

행복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덜컥, 허락을 했는데,

영이는 오랫동안 하나도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내게는 아무런 위안꺼리 없이

매일매일 소진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3차 면접을 끝내고 온 밤,

우리 둘은 참아내었던 마음을 서로에게 쏟아내며

묵혀뒀던 악다구니를 썼다.

고삐 풀린 서운함이 둘 사이를 날뛰었다.

부딪히다 말고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고 라이딩을 가고,

가시돋힌 마음을 쏟아내다가도 타격이 오래 갈 말들은 쥐어틀은 날들을 지나,

비로소 우리는 남김없이 속엣 말을 서로에게 던졌다.

내가 먼저 울었다 멈추면, 잠시 후엔 아이가 먼저 울었다.

싸우다 말고 아이가 3차 면접을 망쳤다며 울상을 지으면

나는 돌연, 괜찮아 괜찮아, 위로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원망섞인 말들을 질세라 늘어놓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서로 사과도 하고 용서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흐지부지 사이가 좋아져서는

아이돌들이 춤추는 TV 앞에서

쟤가 더 잘 생겼네, 재가 더 예쁘네, 하는 영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가 한창이던 밤이었다.


우리의 숨막히는 여름은 그 후로도 계속 되었다.

꽤나 긴 시간, 또 다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영이는 혹시 모를 불합 소식에 대비하겠다며

플랜B 원서를 앞에 두고 널뛰는 마음을 다스려야 했고,

나는 아이를 다독이다 응원하다를 반복하느라 더딘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는 합격자 발표를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부둥켜 안았다.

역대 가장 무더웠다던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우리의 환호성은 한껏 달궈졌던 이 여름에 불을 당겼다.

폭죽이 터졌다. 지나온 날들이 형형색색으로 떠올랐다.




여전히 영이는 나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어젯밤에도 노닥대다가 취침시간이 늦어지는 것으로 한 소리를 들었고

영이는 잔소리 좀 그만하라며 눈을 흘겼다.

오늘 아침에는 밥 좀 푹푹 떠먹으라는 내 말에

피곤해서 입맛이 없으니까 그렇지! 라며 영이는 지지 않다가,

그러게 누가 늦게 자래! 라는 퉁박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나의 말끝은 아이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영이의 대꾸는 한껏 둥글어졌다.

부딪히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농담을 주고 받는다거나,

눈을 흘기면서도 입모양은 웃기도 한다.

아. 이 평화로운 날들. 간절했던 시간.


영이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가장 원했던 것은

누군가에겐, 아니 몇 년 전까지는 우리에게도 아주 평범했던, 그런 날들이었다.

함께 빨래를 개며 영이의 시시콜콜한 학고생활 이야기에 낄낄대고 싶었고,

캐러멜이냐 오리지널이냐 실갱이를 하며 영화관으로 함께 향하고 싶었다.

방학이면 여행을 가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러나가는 영이를 보고 싶었고

일주일 한 두끼 정도는 온가족이 모여앉아 도란도란한 저녁을 먹고 싶었다.

가족들이 모여있는 거실을 지나, 주섬주섬 혼자

무겁디 무거운 가방을 챙겨나가는 영이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영이가 돌아와 잠든 후에도 내 마음은 편한 밤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 별 것 아닌 일상이 우리에겐 그리도 인색했다.

매일이 땡볕이었다. 그늘은 좁았고 그나마도 금세 방향을 틀어버리는 날들이었다.


닭볶음탕을 오랜만에 끓였다.

영이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다.

닭볶음탕을 넉넉히 끓여 내 놓으면 영이는,

장갑을 양 손에 척,하니 끼고는

야무지게 살을 발라먹고, 국물에 밥을 슥슥 비벼

두 그릇쯤은 뚝딱 비워내곤 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닭볶음탕을 끓이지 못했다.

닭볶음탕 뿐 아니라,

영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되도록 피해가며 만들었다.

영이가 비어있는 자리 앞에

좋아하는 메뉴를 차려두고

이 빠진듯 허전한 세 가족이 먹다 보면

도시락은 너무 식지 않았는지, 오늘도 편의점에서 대충 때웠는지,

영이 생각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깨작대는 밥술에도 얹히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닭볶음탕 앞에서

영이는 예전의 모습을 잊지않고 돌아와

장갑을 끼고, 닭날개를 뜯는다.

국물과 감자를 으깨 넣고 밥을 석석 비벼

새큼하게 익은 김치를 척 올려 먹는다.

영이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은 비단 이것만은 아니다.

다정하게 대하는 법도, 유쾌하게 대화하는 법도,

아이는 잊지 않고 있었다.

늘, 영이가 자신의 좋은 점들을 지워버린 것 같아

불안하고 서글펐던 나는

이제야 시원한 숨을 내쉰다.

변한듯한 아이가 견딜 수 없이 속상할 때면,

우리 이제 그만 하자고. 꼭 이 길이 아니어도 수많은 꽃길이 네게는 있을거라며,

자꾸만 영이 걸음을 멈추려고 했던 나를

후회도 해본다. 반성도 해본다.


푸짐하게 한 솥 끓여

네 명이 모두 모여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고, 쉴새없이 떠들고,

다 먹고 나서도 시간에 쫓기듯 얼른 일어날 필요 없이

부른 배를 쓸어내리며 마무리 되지 못한 수다를 이어가는 일이

이토록 감사한 순간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영이의 재치있는 농담을 반찬 삼는 것이 얼마나 푸짐한 한 끼를 이루는지도

이 길을 지나고서야 알게 되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이 여름,

날씨보다 숨막혔던 우리의 날들.

그렇게 보낸 여름의 끝에 실바람이 불어온다.

유별나게 뜨거운 날들이 없었다면 성에 차지 않았을 이 바람이

벅차도록 시원하다. 감사하도록 상쾌하다.

밤하늘 달이

몰라보게 밝고, 높고,

가을이 온다. 비로소 가을이다.






닭볶음탕


주말 점심이면 종종 만들었던,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입니다.

영이 없이 한 번 먹었다가 내내 맘에 걸린 이후로, 한동안 만들지 않았었죠.

저는 신선한 닭이라면 굳이 데쳐내지 않습니다. 대신 냉동보관 되었다면 해동할 때 우유에 재웠다가 끓는 물에 아주 살짝만 데쳐냅니다.

바로 끓이지 않고 초벌하여 끓이기 때문에 기름이 어느정도 있어야 더 깊은 맛이 나더군요.


1. 닭볶음용 닭(저희집은 닭다리살, 닭날개, 닭다리를 섞어 만듭니다.)을 껍질쪽이 아래로 향하도록 펼쳐 노릇노릇하게 굽습니다.

2. 닭고기의 양면이 노릇해지면 고춧가루를 넣어 잔열에 고추기름을 내어 줍니다.

3. 닭고기가 잠길만큼의 물을 붓고, 감자를 넣어 끓이면서 고추장, 설탕, 매실액, 맛술, 진간장, 고춧가루를 넣습니다.

4. 마늘 듬뿍, 생강 약간, 후추 넉넉히, 그리고 대파와 양파를 넣고 푸욱 끓여냅니다.

5. 국물이 졸여지고 진득해지면, 마무리 간은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잡습니다.

6. 채 썰어놓은 깻잎을 넉넉히 넣고 한소끔 끓여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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