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리 콘카르네와 베이크드 포테이토
숙소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면세점에서
제법 저렴하고 실용적인 가방을 만지작 거릴 때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고민할 때에,
예전 회사를 다닐 때에는
여행가면 면세점 쇼핑은 필수였던 적이 있었지 하며 잠시 서글펐던 때에,
"이정!!"
음절이 낭랑하지만, 연결이 부드러웠던,
그래서 내가 아주 좋아했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늘, 이.보다는 정.에 더 악센트를 넣어 불러주던,
고개를 돌리는 찰라의 순간에 나는
갈색의 숏컷과, 하얀 얼굴의 그녀가
예의 환하고 다정한 웃음으로
더 할 수 없이 반달눈을 만든 채로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랬다. 딱 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는 달려갔고 끌어안았다.
반가움 뒤에는 당황스러움이 매달려 있었고,
애틋함이 난감함에 떠밀려 왔다.
그러나 그 중 어떤 감정을 골라낸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에게 달려가기, 그리고 깊이 끌어안기, 였다.
십여년 전에도 그녀는 내게
그러한 감정이었다.
그녀의 애정은 내게 반가움이었으나, 때로는 난감함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미워한 적 없었다.
애틋하면 애틋한대로, 당황스러우면 당황스러운대로,
그 시절 그녀의 날들은, 곧 나의 내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리에서 차장으로 올라갈 무렵,
그녀는 나와 전투적인 날들을 함께 보내었다.
대리때부터 차장때까지 그녀는 국장님이었는데,
나를 정대리, 정차장, 그리고 이내 이정아, 로 바꾸어 부르는 동안에도
나는 그녀를 국장님, 국장님, 하고 불렀었다.
어느날 밤, 그녀는
얼큰해진 표정과 나른해진 목소리로 내 어깨에 팔을 얹고는
이제는 언니라고 불러. 라고 말했다.
언니었다.
다른 본부 국장님이었으나,
자신의 본부 회식 때에는 꼭 내게 메신저를 보냈다.
아랫사원이 속을 썩이거나, 회사측에 야속했거나, 혹은
클라이언트가 진상을 부릴 때면 그녀는 내게 메신저를 보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시어머니의 어이없는 퉁박이나 아이의 학교생활 고충에도
그녀의 메신저는 나를 향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랬다.
팀장에 대한 불만부터, 남자친구와의 고민까지
나 또한 국장님을 언니로 대했으나, 호칭만큼은 꼬박꼬박 국장님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고지식하게
공과사를 구분하겠다며, 그깟 공과사가 무어라고, 이미
국장님이라 부르기 우스울만큼 언니로 대하고 있으면서,
그녀가 민망해지도록 연거푸 거절을 했다. 나중에는 그저,
주워담기 민망해져버린 고집을 부린 것이리라.
그녀는 희미해졌던 입꼬리에 힘을 주며
"우리한테 공과사가 어딨다고 아직도 공사구분이냐." 라고 했다.
맞다.
그 시절 우리의 사는 늘 공에게 침범당하며 살았다.
그녀는 종종, 어린 초등생 딸의 공부를 회의실에서 채점을 해주어야 했다.
집에는 단정한 공부방이 있건만, 그녀가 설전을 벌이고 있는 회의실 옆 회의실에서
그녀의 딸은 낯설게 앉아 눈높이 수학을 풀고, 그녀는 회의 중간중간 넘어와
깨져버린 주말 약속에 대해 딸에게 연신 사과를 하며 지냈다.
나는 한참 사는게 힘들었던 시기가 있어 사표를 썼었다. 혈압은 끝간데 없이 내려갔고
뻑하면 기절을 반복하며,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미련없이 내던졌었다. 그러나
그 호기로웠던 사표가 3개월 휴직계로 처리되었다는 소식은
어느날 늦잠을 자던 오전,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부터 통보 받았다. 그리고
본부 일이 많아지면서, 3개월은 어느날 갑자기 2개월반이 되어
미처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생겨나고, 필라테스 반달치는 날려버려야 했다.
그랬던 시절을 우리는 함께 보냈다.
사는, 공의 허락 하에 존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떠나는 것조차도, 허락이 필요한 때였다.
"공사를 구분하려면, 우리에게 사는 없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할 걸."
그녀는 공에게도 사로 공격해보자 했다.
이미 국장님을 언니로 대하고 있는 것이, 나를 정차장이 아니라 이정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
이미 우리에겐 공사구분을 포기한 상태였으나
그녀보다 6년쯤 풋풋한 연차였던 나는
공의 눈치가 그리도 보였다. 그래서 때마다 그녀의 서운한 눈빛을 애써 모른 척하며
국장님, 국장님, 불렀었다.
그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이번 껀은 정차장과 진행하겠다 사장님에게 보고를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사장님의 신임을 한껏 받는 그녀의 애정은
내게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때로, 다른 일들이 넘쳐나는데 그녀의 고집스런 선택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그간의 고마움을 잊고
버거움이나 원망이 슥, 밀려오기도 했다.
그런 경우들이 켜켜이 쌓이며, 나는 어느새 공의 뒤로 또다시 숨기로 했다.
아무리 친하다 한들, 고맙다 한들,
미리 잡힌 다른 껀들에 손해를 끼칠 수는 없다며
에둘러 말해보려 노력해보긴 했지만
내가 그녀의 프로젝트를 기어이 거절했던 날,
그녀는 꼬박꼬박 국장님 소리를 들을 때보다 더 서운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다.
주고받는 메신저의 횟수가 줄어들고, 회의실에 마주앉아 떠는 수다가 잦아들었다.
내가 회사를 옮기기로 맘 먹었을 때에도
그녀는 아주 늦게 그 소식을 접했다.
"가서도 잘하고."
"네. 감사했어요 국장님."
우리의 인사는 이렇게도 서로가 쓸쓸했다.
나는 그 후에도 그녀를 아주 많이 떠올렸다.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서둘러 출근을 할 때에,
갑작스레 잡힌 주말출근으로 시댁행사에 참석하지 못 할 때에,
야근으로 이모님께 조금 더 있어주십사 사정을 할 때에,
나의 내일이었던 그녀가 마음 아프게 생각났다.
마냥 능력있고 신임받던 그녀의 보여지는 모습만 나의 내일인줄 알았다.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불러댔다 여겼던 나는 틀렸었다.
그녀는 내게 미처 다 털어놓지 못했던
쌓이고 문드러진 마음들이 넘치고도 흘러내렸을 것이다.
우리에게 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던 그녀의 말은
나와 다른 무게였음을 수시로 깨달아갔다.
나와 그녀의 마지막 대화가 언제였던가.
복직했다, 프리랜서로 돌렸다, 다시 복직계약을 하고,
갓난쟁이었던 둘째가 밤새 고열을 앓은 다음날,
계약을 파기해버리고는 이제 정말, 일을 놔버리기로 했던 때였다.
아주 오랜만에 그녀는 내게 전화를 하여
"이정! 그만두려고? 진짜 아예?"
마치 엊그제쯤 만났던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으랴.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그녀 옆에서
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홀홀히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철부지였다.
"국장님, 어떻게 버티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너무 아깝잖아! 나무라나 싶다가 얼른,
그래 잘 생각했어, 해본들 별 거 없어! 했다가 다시,
그래도 후회 안하겠어? 하며,
갈팡질팡 정신이 없었다.
매일을 저렇게 우왕좌왕한 마음을 붙들고 살았을 그녀가 여실히 느껴져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에라 모르겠다고 떠나버림에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그녀를
동료들의 입을 통해, 간혹 신문을 통해, 때로는 방송을 통해,
만나고 들었다.
축하할 일이 하나면, 안타까웠을 일이 두개였다.
박수를 한 번 받기 위해, 두어번의 적진과 서너번의 현실을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말,
그녀가 이제 일을 떠났다고 들었다.
내가 그만두었을 때에는 후련함이 함께 밀려왔기에
나는 한동안 그 뒤에 숨어, 반가운 표정을 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소식에는 그저 아쉬움 뿐이었다.
내가 그만두던 날보다 나는 더
진심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하나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십여년을 건너와
내 뒤에서 날 부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준비치 못한 때에.
칠리 콘카르네와 베이크드 포테이토
그 시절 다니던 회사는 이태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국장님과 종종 이태원에 있는 멕시코집을 방문하곤 했었어요. 둘 다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라 별 일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가야 했었죠.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사실 줄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뛰지 않고 정성을 들이고 싶었으니까요.) 1편은 무슨 음식을 곁들일까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얼마전에 찍어두었던 칠리와 포테이토를 보자마자 자주 가던 멕시코 레스토랑이 떠올랐죠.
칠리 콘카르네 소스를 만들어두면, 포테이토뿐 아니라 또띠아에 야채, 치즈와 함께 올려 먹어도 좋고, 파스타 소스로도 훌륭합니다. 빵에 발라먹어도 훌륭한 샌드위치가 되지요.
시판용으로도 나와 있지만, 직접 만들어 먹으면 훨씬 맛도 재료도 좋습니다. 향신료들도 마트나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 가능하니 시도해보시길 추천드려요.
1. 편마늘을 볶은 올리브오일에 양파, 샐러리, 양송이등등의 야채를 넣고 볶다가 야채들이 숨이 죽으면 소고기 다짐육을 넣어 볶습니다.
2. 재료들이 거의 다 익어갈 무렵, 칠리파우더와 큐민가루를 넣어 향을 입힙니다.
3. 홀토마토 통조림을 자작하게 넣고, 월계수잎과 치킨스톡을 추가해주세요.
4. 토마토가 뭉근하게 풀어지도록 중약불에서 푸욱 끓이다가, 소금, 설탕, 후추로 간을 맞춰줍니다.
(보통, 키드니빈을 넣는데, 저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했습니다. 대신 체다치즈를 넣어 맛을 더 진하게 했습니다. 만들 때 치즈를 넣지 않으셔도, 내어낼 때 칠리 위에 치즈를 얹어 오븐에 데우면 보기에 더 맛있는 칠리 콘카르네가 완성됩니다.)
5. 살짝 삶아낸 감자(그대로 오븐에 넣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약식으로 합니다.)를 반으로 칼집을 내어주고, 가염버터를 올려 구워줍니다. 감자 표면이 바삭해질 때쯤, 치즈를 듬뿍 올려 다시 오븐에서 마무리 합니다.
6. 파슬리 가루를 뿌려낸 후, 칠리를 듬뿍 올려 감자를 떠먹으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