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딥
첫째가 어렸을 적,
나는 회사를 다니느라 함께 있을 시간이 부족했던 한을 푸는 양
하루도 이벤트가 없던 날이 없었다.
다행히, 함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열정적인 모성과 넘치는 에너지로 무장한 이들이라
우리는 매일매일을 특별한 날처럼 보내었다.
산이고 바다고, 테마파크부터 동물원, 특별히 갈 곳이 없으면
서로의 집을 내 집마냥 드나들며
만들기, 키즈요리, 팀게임 등등
각자 하나씩 맡아 문화센터 선생님이 되어보는 날들이었다.
둘째 임신 막달까지, 그리고 몸을 풀자마자도 그러한 날들은 지속되어
엄마들은 매일밤,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뭐하고 놀지를 정하며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매일아침 눈을 뜨며 "오늘은 뭐하고 노는 날이에요?" 를 물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내가 확고히 믿던 것은
행복도 습관이라는 것이었다.
매일매일이 행복한 일들로 채워진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한 꺼리를 찾아내는 것이 수월할 것이라는 믿음은
허구헌날, 오늘은 무엇으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지를 고민하게 했다.
간혹 별다를 것이 없는 날이라도 있으면
욕조에 버블이라도 풀어서 행복한 시간을 누리기를 바랐고,
거실을 키즈카페로, 방 하나를 물감놀이 테마파크로 바꾸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매일이 이벤트고, 수시로 파티였던 날들은
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된 나의 체력에는 버거운 것이었으나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잠든 아이들을 보는 내 마음은
알콜솜으로 정성껏 닦아낸 듯 개운하였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었는지 감사하게도
아주 밝고, 매사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간혹 과도하게), 도전적으로 자라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행복도 습관이니까, 아주 소중한 습관을 아이들에게 선사했다는 뿌듯함은
퇴사나 육야로 인한 스트레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첫째가 커가면서 '공부'라는 것을 시작한 이유도 있을테고,
얄궂은 사춘기에 목덜미를 붙잡힌 이유도 있었을테다.
아니, 아이들의 이유 말고도
길고 길었던 코로나 펜데믹 기간을 지나며
어떻게든 집에 틀어박혀서도 아이들의 행복할 꺼리를 만들어내느라
내가 너무 지쳐버린 탓도 있었고,
코로나 직후, 추스릴 틈 없이 두 아이에게 연달아 닥쳤던
이런저런 사정은
나의 열심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도 남았을게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힘을 내고, 열심을 부린 것은
아이들의 식사준비였는데,
그 또한 전과 같지 않았다.
더 이상 엄마의 집밥에 열광하지 않는 첫째는
안 그래도 빈약해진 내 의욕을 꺾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나마, 엄지척을 해주고 환호를 곁들여주는 둘째가 없었다면
나는 애저녁에 요리에도 기운을 빼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나의 번아웃과 아이들의 사정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물려
나는 어느새 '습관적인 행복' 을 잊고 살았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순탄한 날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 되었고,
이렇다하게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면 충분히 만족했다.
몸은 좀 편해졌겠으나, 마음은 시들어갔다.
별 탈만 없기를 바라며
바닥 뻘에 납작 붙어 견뎌내는 가자미같은 날들은
나를 온통 늙어지게 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맥없이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알고보면 디게 웃기더라?"
얼마전, 둘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알고보면' 웃긴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시도때도 없이 깔깔대는 사람이었고,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재미있는 이모'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습관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다양한 이벤트와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유쾌한 기분이 가장 중요하다 믿었기에
어느 순간에도 아이들과 웃어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알고보아야 웃긴 사람' 이 되었다니.
아이들은 컸고, 나는 그동안 빼곡하니 나이가 들어
그 때와 같은 수는 없겠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충만했던
그 시절의 루틴으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렇다할 꺼리가 없으면
저녁시간 잠깐, 30분이라도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희한한 춤을 함께 추며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던 그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아보카도딥을 만들었다.
하루걸러 하루, 우르르 꼬맹이들을 불러모아 놀던 시절
자주 만들었던 메뉴이다.
아이들에게 맛있게 야채를 먹이기 안성맞춤이었고,
남으면 엄마들과의 맥주 한 잔에 곁들이기 제격이었다.
나초에 얹어주면 야채인지 무언지 모르고
과자라며 신나게 먹어대던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서
다이어트에 좋겠다며, 많이 먹어도 죄책감이 없다며,
출출할 때마다 냉장고 문을 열어대며
나초 없이도 한 통 가득한 아보카도딥을 하루만에 뚝딱 비워냈다.
파티의 상징이었던 아보카도딥이 이제는
미용에 좋은 간식쯤으로 바뀌어 아이들을 만족시키는 것처럼
아마 지쳐있던 시절동안
나와 아이들의 행복한 꺼리들은 꽤나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하루에 딱 하나씩만.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 나를 위한 무언가,
행복한 무언가를 해나가자 마음 먹어본다.
바빠진 아이들과
예전처럼 함께 놀고, 거창한 이벤트를 여는 것은 여의치 않을테니,
아주 따뜻한 말 한마디,
꽤나 웃긴 기억 하나,
기억에 남을만큼의 다정한 시간이나
하다못해 입맛도는 야식이라도
하루에 한번씩, 아이들이 빙그레 웃는 마음이 되었으면 다시 간절해졌다.
나의 맘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를 위한 사소한 꺼리도 하나씩 해봐야지 다짐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맞게,
조금 더 나이들어버린 나에게 맞춰,
꾸준하지만
예전처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우리의 날들에 행복한 습관을 하나씩 더해봐야지.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
'습관적 행복' 을 촘촘이 끼워넣기로 해본다.
오늘은
런닝머신을 타고 싶다던 첫째를 데리고
아파트 헬스장에 다녀와야겠다.
차일피일 미루던 옷방 정리를 하며
옆에 자리잡고 앉아 내 옷을 뺏어가려는 첫째와
티격태격 낄낄대는 실갱이도 해보자 생각해본다.
그리고, 저녁에 둘째가 돌아오거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쉬멜로우를 같이 구워먹어야지.
옛날만큼 흠뻑 젖어 있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도 나도 각자의 바쁜 일정들이 우선 되더라도,
예전처럼 나는 밤에 잠이 들며
아이들에게 내일은 어떤 행복을 습관처럼 전해줄지 고민해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예전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부터 떠올렸던 마음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 때까지.
어젯 밤, 내일은 뭐할까 생각을 하며
나는 빙그레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반갑다 이 기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는 이 기분이 그리웠나보다.
내가 지쳤다고만 생각했던 날들에도
나는 사실,
'습관적으로 행복한 삶'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요즘이다.
아보카도 딥
파티에 빠지지 않았던 메뉴 중 하나에요.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에게 전수받은 음식인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살사나 타코를 구하기 쉽지 않아서 마음 먹고 만들어야 했지만, 요즘엔 마트마다 외국식재료가 넘쳐나니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되었더라구요.
사진에서의 레이어 아랫부분부터 설명드릴게요. 이번엔 금세 다 먹을듯 해서 떠먹기 좋도록 아보카도를 가장 아래에 놓았지만, 2-3일동안 드실거면 토마토를 가장 아래에 깔아주세요. 토마토에서 물이 나와서 아보카도 색이 예쁘게 보관되지 않는답니다 :)
1. 잘 익은 아보카도를 으깨어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맞춘 후 깔아줍니다.
2. 잘게 다진 토마토를 물기를 짜낸 후 얹어줍니다.
3. 양상추를 잘게 다져 물기를 빼낸 후 얹어줍니다.
4. 사워크림과 살사, 크림치즈, 타코가루에 다진마늘 약간과 소금 조금을 넣어 잘 버무려줍니다. 간은 입맛에 맞게 조절하시면 됩니다. 살사나 타코향을 좋아하신다면 넉넉히, 아니라면 적당히 넣으시고, 상큼한 맛을 좋아하시면 사워크림을 많이, 고소함을 원하시면 크림치즈를 넉넉히 넣으시면 됩니다.
5. 만들어놓은 소스를 야채들 위헤 얹은 후, 슈레드 체다치즈로 덮어주세요. (전 슈레드 콜비잭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올리브로 마무리해주시면 됩니다.
6. 그냥 먹어도 좋지만, 나초 위에 얹어드시는 것도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