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사랑을 믿지 않는 너에게

브로콜리 깨무침

by 이정

신아.

TV에서 가슴저린 모성을 목격하거나 하면

너는 나를 말꼬롬히 바라보며

"저게 말이 돼? 난 믿어지지가 않아."

하곤 했지.

아기를 위해 목숨을 건 출산을 감행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순간에 아이를 안아 보호하거나,

그런 것들이 너에겐 미지의 감정이겠지. 그렇고말고. 엄마도 어릴 땐 그랬으니까.

"저런 상황에서 엄마는 너를 목숨을 걸지 않을 것 같아?" 라는 나의 질문에

"그럴거 같긴 하지만, 그 마음이 난 이해가 안 돼. 말이 안되는 것 같아."

라고 대답하는 널 보며 나는

너를 품고, 낳고, 키우던 시간들을 떠올렸단다.


신아.

네가 엄마 뱃 속에 있었던 때,

찬장을 정리하겠다고 의자 위로 올라갔다가

삐끗하고 떨어지면서

땅을 짚을 손으로 너를 품고 있던 배부터 끌어안았던 것을 네가

뱃 속에서도 느끼고 있었다면

너는 엄마의 사랑을 믿었을까.


네가 엄마 뱃 속에서 8개월쯤 되었을 때였어.

약 없이 감기를 견디다가 걸려버린 급성축농증으로

두통, 치통, 잇통까지 버텨내느라 밤마다 아파서 우는 나를

아빠가 억지로 큰 병원을 데려갔던 날,

의사가 이러다 큰 일 치룬다며 치료를 바로 시작하자 했을 때에도 엄마는

뱃 속의 네가 무리가 된다면 치료받지 않겠다며

약성분을 확인하고, 치료과정을 산부인과에 문의하며

어떻게든 두어달 견뎌보겠다 고집을 부렸었어.

그 때를 너가 보았다면

너는 엄마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까.


네 살 때였나.

여행을 갔던 강원도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나를

맘대로 뒤쫓아왔던 너를 잠시 놓쳤던 날,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이 무서웠는지

덤프트럭 뒤에 옹크리고 숨어 앉아 울고있는 너를 발견했던 그 순간,

덤프트럭이 시동을 걸고 차를 빼려고 후진을 하려기에

엄마가 악을 쓰며 달려가 너를 덮쳐 안았던 것을

네가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면

너는 엄마가 너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지도 모를텐데.


신아.

너는 아가때부터 뭐든지 덮어놓고 믿는 법이 없는 아이였단다.

엄마 말이라면 무섭도록 믿어버리는 언니를 키우다가

전혀 다른 성향의 너를 키우는 일은

신기하면서도, 당황스러웠지.

너가 두살쯤 되었을 때였나. 더 어렸을 때였을까.

브로콜리만 쏙쏙 빼놓고 먹는 네게

"신아, 브로콜리가 그러네.

신아신아. 나도 먹어줘. 너가 나만 안 좋아해줘서 슬퍼."

라며 엄마는 잔뜩 브로콜리 목소리를 빌어 너를 설득해봤지.

언니는 그게 통했거든. 무조건이었어.

엄마가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언니는

너무너무 미안한 표정으로 "브요코이야 미야내." 하며 입에 쏙 넣었었거든.

하지만 너는 달랐지.

엄마가 민망할만큼 브로콜리 성대모사를 하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다가

너는 아주 딱 잘라 말했어. 혀가 한참 짧은데도 목소리만큼은 단호했지.

"브요코이 입 업또!"


그랬지. 너는 그런 아기였단다.

엄마가 어찌나 당황했던지,

엄마는 너에게 브로콜리를 먹이는 것을 포기했지.

아직 말도 설된 아이가 그리 생각해낸 것이

신기하고 감탄스러운 한 편,

나는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때로는 엄마아빠 말을 정말 듣지 않아서

이를 어쩌나, 맘을 졸이게 만들지도 모르고,

고집이 세다고 호통을 쳐야하는 날들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언니와

아주 다른 아이.

그래서, 엄마아빠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들을 선사해줄 아이라는 것.

야무지고 줏대있게 자라나리라는 것을.


신아.

너는 얼마 전에

발톱 거스러미를 자꾸 뜯어내다가

한참을 아파서 고생했었지.

자꾸 뜯으면 아주 아파질거라는 엄마의 말에도,

엄마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도,

발톱에 손을 갖다대며 고칠 맘이 없더니

기어이 썩이 나서 아파졌었어.

속이 상해서 잔소리를 하며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엄마에게 너는

"엄마가 그냥 겁주는 건줄 알았어."

라며 너는

이제 엄마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지.


하지만 너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 아이야.

때로는 논리적으로 맞더라도,

너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덥썩 받아들이지는 않는 아이지.

그러니 너는 앞으로도

엄마 말을 수월히 들어주거나,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를 의심없이 받아주지는 않으리라는 건

엄마는 알고 있단다.

그런 네가,

뭐든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주는 법이 없는 네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니.


그러나 신아.

너가 속상한 일을 당하거나

마음쓰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

괜찮아, 별 일 아니야. 엄마는 네 앞에서는 힘을 내지만

너가 잠든 후에, 혹은 네가 없는 곳에서,

엄마는 너보다도 허둥지둥하며

걱정하고 아파하고,

대신 겪어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단다.

그러나 너는 모르지.

너를 다시 마주할 시간이 다가오면

엄마는 마음을 어떻게든 추스려 세웠으니.

어릴적, 걸음마를 하다가 넘어져 피가 나는 무릎을 보고

으앙 울어버리는 네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까지 띄우며

"괜찮아 괜찮아. 금세 나을거야." 라고 안심을 시켜놓고는

네가 잠이 들면 몰래 방에 들어가 요리조리 상처를 살펴봤던 것처럼.

엄마는 그렇게, 엄마니까.

네 불안까지 내 것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단다.


엄마가 때로는 너를 혼내기도 하고

가끔은 미안하게도 네 맘을 다치게 하는 질책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사랑이었어. 다소 거친 표현이었지만

그 또한 애틋한 마음이었단다.

혹여, 바깥에서 다른 이에게 질책을 받거나

엄마가 미처 채워주지 못한 것들로

곤란한 경우에 맞딱뜨릴까봐

미리 가르치고, 먼저 준비시키느라

네게 잔소리를 하고 엄하게 구는거였단다.

하지만 신아,

너를 혼내고 나면 그 몇 배의 시간동안 엄마는

나의 말 한마디, 너의 대답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너는 이미 아무렇지도 않아진 후에도

고민하고 걱정하고, 때로는 후회하고 반성한다.

스스로 아프게 나를 다그친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내가 잘못하고 이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엄마는 그렇게, 너를 사랑하니까,

네 부족함까지 내가 가져가고픈 간절함으로 너와 살아가고 있단다.


사소한 불안과 부족함만이 아니라,

네가 겪어내야 할 세상살이의 힘든 것들을

죄다 내가 대신 지고 아파해줄 수만 있다면,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러나, 그런 방법이 있어도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엄마는 하루하루

바람과 능력의 격차 속에서 안타까워하고 있어.

머리와 마음의 어긋남으로 허둥대곤 하지.

네가 없는 곳에서도, 네가 모르는 순간까지

엄마는 너를 사랑하여 그리 살고 있는 중이야.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 순간은

부디 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나로 다시 살게 될 너의 남은 날들이

너무 아플까봐 염려되어

나는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아야겠지만,

아니, 겪을 일이 없을테지만,

언젠가는 너도 믿을 날이 오겠지.

고개를 홱 돌리며 또박또박

브로콜리는 입이 없다던 네가 지금은

아주 좋아하는 반찬이 되어

"예이!!! 브로콜리!!!" 하며 먹는 지금이 된 것처럼.

브로콜리는 입이 없지만,

그것은 너를 위한 엄마의 정성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처럼.


엄마가 괜히 겁 주는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 말이 정말임을 깨달았다며

다시는 발톱에 손을 갖다대지 않는

네가 된 지금처럼.

발톱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엄마 말을 안 믿었지?" 라며

씩, 멋쩍게 웃으며

엄마는 아직 오지 않은 너의 날들을 미리 짚어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너는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목숨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마음인지,

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될 날이 올거야.

그리고 그 사랑을 준 최초의 사람은

엄마였다는 것을 너는 알게 될테지.


그런 날이 오거든,

너가 미처 이해되지도 않았던 그 마음을

오롯이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오거든,

너를 사랑하느라 힘이 든 적 없으니 엄마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이,

너에게 무엇을 바라서 사랑한 것이 아니니 갚아야 한다는 부담따위 없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너의 세포 구석구석은

가늠 안되었던 그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기억하고

네 자신에게는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할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나의 신아.

엄마는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단다.

네가 다정히 나를 안아줄 때와

나에게 서운한 행동을 주었을 때에도,

엄마가 든든히 네 곁을 지켜주었을 때와

부족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었을 때에도,

네가 나의 뱃 속에 자리 잡았을 때부터

지금의 엄마보다도 더 큰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한 순간도 빠짐없이,

빼곡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 어느 순간에도 쉬어가는 법 없이

온통 사랑하고 있어.






브로콜리 깨무침


브로콜리를 싫어하던 둘째를 기어이 브로콜리에 마음을 열도록 해준 반찬입니다.

만들기도 간단해서 야채반찬이 부족하다 싶은 날에는 만들어 올리곤 하죠.

맥주 안주로도 좋아서, 이 반찬으로 안주를 대신하고 나면 왠지모르게 내 몸에 대한 죄책감이 덜어진달까요.


1. 물에 잠시 담궈 브로콜리를 씻어낸 후, 한입크기로 자릅니다. (브로콜리 기둥도 저는 사용합니다. 영양가가 더 높다고도 하고, 오독한 식감이 좋답니다.)

2. 브로콜리는 오래 데치면 식감이 떨어지므로 기둥을 먼저 넣으신 후, 윗부분은 초록빛이 올라올 정도로만 살짝 데쳐주세요.

3. 진간장을 살짝 버무려질 정도로만 넣고, 다진마늘, 깨듬뿍, 참기름을 넣어 잘 버무려주세요.

4. 그릇에 담아내면 완성이랍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8화반 걸음 정도, 엄마의 속도는 더뎌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