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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 다시 한 번

패티 스테이크

by 이정

방학이다.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듯 한데

다시 방학 첫 날이다.


지난 방학의 악몽.

아침마다 도시락을 포함하여 네 번의 식사를 차려야 했던 그 기억.

다시 그 시기가 돌아왔다.


도시락에 까탈을 부리는 첫째 점심까지 싸면서

남편과 아이 둘의 각자 다른 아침식사 시간을 맞추는 걸로 부족해,

중간에 라이딩까지 다녀오는 아침의 일정은

오전시간만으로 온 몸의 진이 빠지는 날들이었다.

힘든 것을 떠나, 분 단위로 쪼개 움직여야 하는 매일은

나를 아주 날카롭게 만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허둥대고 종종대는 내게

혹여라도 남편이 무심하게 하거나, 아이들이 철딱서니 없는 말을 늘어놓으면

그냥 넘기지를 못하고 날을 세웠다.

서운함은 수시로 올라왔고, 야속함까지 마음에 새겨졌었다.

그럼에도 도망갈 수 없는 엄마의 자리인지라

길고도 긴 겨울방학을 지내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아, 이제 끝이야. 다음 방학은 아마

첫째의 오전특강도 없을테고,

그러니 도시락 쌀 일도 없을테고, 두 명 쯤은 한 번에 아침을 먹일 수 있겠지.'

라고 수시로 되뇌이며 마지막 힘까지 끌어올리자고 기운을 내 보았었다. 그런데.


이번 방학에도 첫째의 오전특강은 이어진다.

도시락도 당첨이거니와, 이른 아침의 라이딩도 따라올 것이고,

세 식구의 아침을 따로 차려내는 일도 여전할 것이다.

나는 지난 겨울이 떠올라 한 달 전부터 예민해졌다.

첫째의 특강스케줄을 전달받는 순간, 아 망했네... 라는 생각만 차올랐다.


그렇게 맞이한 오늘, 방학 첫 날.

나는 지갑을 또 잃어버렸다는 첫째와 부딪혔고,

말대답을 또박또박 하는 둘째와 실갱이를 했다.

게다가,

늘 그렇듯 분위기 파악 못하고

생각없이 말을 내뱉은 남편에게까지 싫은 소리를 했다.


혼을 낼 만한 일이었고, 서운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유별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을까.

오전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만큼 별 일이었을까.


아이들은 늘상 덤벙거렸다. 안 그런 날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의 재촉에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편의 눈치없음은

뭐 20년 전, 연애때부터 알고도 결혼한 부분이다.

오늘 달랐던 건,

주말 내내 도시락 반찬과 한동안의 삼시세끼 밑반찬을 준비해 놓느라 힘이 들었고,

안 그래도 잠을 설쳤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바빴던 것에 피곤했고,

무엇보다

작년의 기억으로

이번 방학도 그리 힘들까봐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었던 탓이었다.

건드리기만 해봐, 라며 도끼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저번주쯤

방학을 기다리는 심난한 기분을 글로 써 놓은 것이 있었다.

정말 피하고프나, 당당히 잘 치뤄내겠다는

뭐 그렇고 그런 야심찬 글이었는데

방학 첫 날 아침부터 엉망진창이 되며 그 글은 싹 지워냈다.

전혀 당당하지도, 야심차지도 않은 시작이었다.

하루의 기분은 아침이 결정하고, 한해의 기운은 첫날이 좌우한다고 여기는 나는

기분이 언짢기 이전에 마음이 우왕좌왕 하다.

첫꿋발이 개끗발이야.... 라고 자꾸 내게 주문을 걸어본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서

방학 첫 날부터 전쟁이라는 이야기들이 핸드폰을 통해 들려온다.

아주 멋진 엄마들이고

아주 괜찮은 아이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집 저 집 시끌시끌한 것을 보니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위로가 된다.


그래.

시작부터 맥 빠지는 모양새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해내보자.

마지막인줄 알았던

'아침만 네 끼'를 또 다시 견뎌내보자.

대신,

오늘 밤에는 가족들을 불러모아

아침만이라도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달라 부탁할 셈이다.

눈치없는 반찬투정이나, 양심없는 아침짜증 따위는

후회만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놓을 참이다.


싫어도 다시 한 번.

이번 방학이 마지막이겠지.

아.....

아닐수도 있겠구나........





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는 8월말까지는

연재 스케줄을 조정해얄듯 합니다.

'마음을 꼭꼭 씹는다' 는 주1회 월요일.

'그 시절, 나의 아줌마들' 은 주1회로 줄여서 금요일에 올릴게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그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항상 큰 힘과 위로가 되고 있답니다.


연재요일 변경이 안되는걸 이제야 알았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그렇죠 뭐.

다음주부터는 ‘마음을 꼭꼭. 씹는다’ 는 원래대로 수요일 연재 하겠습니다. 때마다 덤벙대면서 제가 지갑 잃어버린 첫째를 혼냈네요 이렇게 또 반성해봅니다.




패티 스테이크


전쟁 중에 오늘 아침 싼 도시락입니다.

전에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어 폭신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함박스테이크를 도시락 반찬으로 만들어두곤 했는데,

워낙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비슷한 맛의 도시락반찬을 고민하다가 만들어낸 레서피에요.

일반 스테이크는 몇 시간이 지나면 식감도 많이 달라지고, 향도 나빠지는데 비해,

이런 식으로 만드니 제법 괜찮은 도시락반찬이 되더군요.

햄버거 패티와 맛이 비슷해서 이름도 제 마음대로 패티 스테이크라고 지었답니다.

단언컨대, 쉑X버거의 패티보다 한층 고급지고, 육즙이 살아있는 도시락 반찬이랍니다.


1. 함박스테이크와 달리, 돼지고기 없이 소고기로만 만듭니다. 다진 소고기에 캐러멜라이징한 양파를 넣습니다.

2. 빵가루(저는 남은 빵들을 한 번 구워 갈아놓아요. 냉동보관해 놓으면 일반 빵가루보다 풍미가 훨씬 좋답니다.)를 넣은 후에 스테이크 시즈닝(저는 몬트리올 시즈닝을 씁니다. 다른 시즈닝도 많으니 취향껏 선택하시면 될 듯 해요.) 을 넣어주세요.

3. 녹인 버터를 넣고 여러번 치대주세요. 많이 치댈수록 육즙이 풍성해진답니다.

4. 일정한 양을 떼어내 좌우 손으로 던져 옮기며 모양을 동그랗게 잡아주세요. 그리고 살짝 눌러 납작하게 만든 후에는 가운데를 움푹 눌러주세요.

5. 중불로 예열한 팬에 기름을 두르고 패티 스테이크를 올립니다. 한 면이 충분히 익으면 뒤집어서 중약불로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어주세요.

6. 거의 다 익었을 무렵에 버터를 조금 넣어 풍미를 올린 후, 앞뒤로 한 번씩 다시 구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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