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들의 커뮤니티도, 꽤 괜찮다

묵은지 된장 지짐

by 이정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엄마들의 마음은 아이보다 분주해진다.

아이들의 적응도 적응이거니와,

엄마들이 어디까지 개입을 하고 지원사격을 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쉽게 말해, '엄마들의 커뮤니티' 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하느냐,

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나 나처럼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학교에는 최대한 가지 않으려 하며,

접대멘트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행사마다 엄마 참여가 늘상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학교에 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노릇인데

반모임도 참석해야 하고, 또 그 곳에 가면 미스코리아 미소를 짓고 있어야 하는데다가,

아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말도 붙이고 만남도 주선하는 그 일련의 일들은

나에게 버거운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생각하니 모르쇠 하기도 힘들었다.


가장 먼저 자연스레 가까워진 이는 반대표 엄마였다.

부대표 지원자가 없어서, 졸지에 선생님의 지목을 받았던 나는

그 엄마와 이래저래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부딪혀야 하는 일이 많았다.

학급일을 진행하다 그 엄마가 내게 부탁할 일이 생겼던 날,

어려운 부탁이라 선뜻 승낙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나에게

전화 너머로 그녀가 강조한 부분이 있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믿어도 돼요.“

이 무슨 사기꾼들의 단골멘트인가.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안 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애써 고사하는 내게 거듭거듭 부탁을 하는 그녀와의 전화를 내려놓으며

아, 정말 나랑 안 맞네.... 생각을 했다.


그녀는 역시나 만날 때마다 종잡을 수 없었다.

이런가 싶으면 이내 저런 행동을 하고, 저런가 싶으면 또다시 이런 말을 했다.

따뜻한 사람인듯 한데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눈치 없는 사람인듯 행동하다가 갑자기 비상한 머리를 굴리기도 하고

철없이 구는 사람이라 여겨질 때쯤 돌연 신중해지는.

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특이한 사람쯤으로 여겨졌던 그녀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희한한 노릇이긴 하다. 아이들이 친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알고보니 나와 동갑이었고, 알고보니 친한 동생과 아는 사이였고,

알고보니 가까운 동네에서 자랐고, 알고보니... 만나면 즐거웠다.


그러나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나는 그녀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다름아닌

잔뜩 기울어져 있는 육아관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혹여 친구들에게 인색하게 굴면

불러다가 가르치고 바로잡고 사과를 시켜야 하는 나는,

그러려니 넘어가곤 하는 그녀와 정반대에 서 있는 엄마였다.

첫째는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해결하며 지내었지만,

아직 꼬맹이었던 둘째가 끼어 놀 때에는 난감한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속상한 상황에 마주칠 때마다 도와달라고 날 바라보는 서러운 눈빛의 둘째와

아이 행동을 무심하게 넘어가는 그녀 사이에서 나는 자꾸 언짢아졌다.

첫째가 그녀의 아이에게

왜 내 동생한테 못되게 구냐며 기어이 화를 내던 날,

결국 나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어졌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와버린 나는 이 관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이 때문에라도 만날 수밖에 없고

학교엄마이기에 덮어놓고 피하기도 애매한 사이.

그렇다고 때마다 내 새끼 맘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이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정공법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부탁했다.

둘째가 그녀의 아이 때문에 속상한 일들이 자꾸 생긴다고,

그런 상황에선 좀 타일러 달라고.

나는 아주 어렵게 꺼낸 말인데, 그녀는 전화 너머로 아무렇지 않은 말투였다.

"어머 그랬니, 난 그렇게까지는 몰랐어. 내가 아이랑 얘기해볼게."

그녀의 대답에 맥이 탁 풀렸다.

이토록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반응일줄은 몰랐다.

그 무심한 목소리가 그간의 내 무거운 마음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어차피 소용 없겠구나, 이제 슬슬 멀어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이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와 얘기를 해보았다고 했다.

"아이와 얘기를 해보니, 정말 그랬더라. 너가 속상했겠어.

얘는 그게 못된 행동인지 몰랐대. 나도 얘가 그랬는지 잘 몰랐어.

아이가 미안하대. 나도 정말 미안해.

신이한테도 이모랑 언니가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줘."

갑자기? 이런 말투로?

나는 이미 마음이 꼬일대로 꼬인지라, 선뜻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내용과는 달리 교과서를 읽는듯한, 그래서 냉랭하게 들릴 지경인 그녀의 말투에

나는 이것을 진심어린 사과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이미 미운쪽으로 치닫던 내 판단에 이토록 헷갈리는 사과로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니,

내 맘 속은 이리저리 스퀴드마크가 새겨졌다. 갈팡질팡 제어가 되지 않았다.

미운맘이 선뜻 멈추어지지 않는 내게

그녀는 통화 말미에 이야기했다.

"아이가 그러더라. 영이 이모 너무 고맙다고.

이모가 말 안해줬으면 자긴 그게 나쁜건지 모르고 계속 그랬을거래.

나도 그래. 나도 너가 말 안해줬음 몰랐을거야.

앞으로도 꼭 말해줘. 내가 좀 눈치가 없잖아. 너가 꼭 알려줘."


여전히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다. 그런데

중간중간 흑 흑 소리가 나는듯 했다. 곰곰히 들어보니

음성이 먹먹해졌다 괜찮아졌다를 반복했다. 울먹이고 있었다.


가까이 지낸 3년만에 알 것 같았다. 이 친구는 말투에 기분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구나.

내 맘이 무거울 땐, 그녀의 말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을 땐, 그녀의 말투는 찬물을 끼얹는듯 차분히 들렸다.

말투 뿐 아니라, 그녀는 태도도 그랬다.

조심스런 자리에서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솔직했고, 신이나는 자리에서 그녀는 갑자기 신중했다.

그러나

'무거워야 할' 혹은 '신이 나야 할' 이라는 판단은 내 기준이었다. 내 기분이었다.

그저 내 잣대에 맞춰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말투에 숨어 느껴지지 않던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니

나는 화르륵 부끄러워졌다. 괴로웠을 그녀의 마음을 오해한 것이 미안해졌다.

왜 울어... 하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도 눈물이 묻어났다.

내가 쉽사리 규정해버린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고작 3학년짜리에게도 그랬다.

그런데, 그 3학년짜리가

지적당했다 기분나빠하지도, 그럴수도 있다고 변명하지도 않고,

알려줘서 너무 고마운 이모라고 했다니. 아이보다도 못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 모녀를 두고

도대체 무슨 확신을 키우고 있었던걸까.


나는 요동치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느끼는 요동에 맞춰 나는 그녀를

갑작스레 차가운, 뜬금없이 신중한, 황당하게 솔직한, 쯤으로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아, 정말 신이 난다!" 라는 말투와

"어떡하니. 정말 속상하겠다." 라는 말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어느정도 가식적이라고 오해한 적도 있었다.


나는 예민한 엄마였고, 그녀는 무던한 엄마였다.

일일히 알려주고 가르치며 불안을 피해가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평소 가장 많이 하는 말처럼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일들은 마음에 두지 않고,

무엇이든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을 기다리는 엄마였을 뿐이었다.

나보다 울타리가 넉넉한 엄마였던 것이었다.


그녀의 아이는 그 날 이후,

사람이 저리 한순간에 바뀔수도 있구나 싶게 달라졌다.

몰라서 그랬다는 아이의 말에

잠시나마,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나 싶었던 내 마음이 민망할만큼

둘째에게 다정한 언니가 되어주었다.

둘째와 그 아이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같은 운동학원을 다녔는데

혹여라도 그 아이가 빠지는 날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할만큼

둘째는 그 아이를 잘 따랐다.

'몰라서 그랬어.' 라던 그 아이의 말은 진실이었다. 틀린건 나였다.


그녀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으므로

그녀를 제대로 배우는데는 그 후로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우리는 한두번의 갈등을 더 겪었다. 아니, 나는 겪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아주 차분하고 아주 담담하게.

"너랑 나랑은 너무 달라. 그래서 그래."

때로는 이 말투가 선을 긋는듯 하여 서운하기도 했고

어쩔땐 '싫음 말고' 식의 고집으로 보여 부아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멀어지려는 나의 제스처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안부를 묻고, 말을 건네며

결국은 내가 돌아오도록 했다. 담담히, 그리고 한결같이 우리의 관계를 지켜줬다.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마케팅 타겟을 정하는 회의에서

나의 상식과 경험과 판단을 내세우며

"이 제품은 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해야 한다" 고 고집을 부리던 내게

부사장님이 말했었다.

"네 상식과 경험은 너만의 것일수도, 너와 비슷한 사람들만의 것일수도 있단 걸 넌 알아야 해."

그랬다. 유독이나

비슷한, 혹은 통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했던 나는

그래서 시야가 좁고, 쉽사리 단호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아주 반대의 그녀를 만나

어느덧 10년 지기가 되어간다. 여전히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우리는 다르게 해석을 하고,

같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우리는 다르게 해결을 한다.

그래도 나는 이제

내 생각이 틀렸다 싶어 길을 잃을 때에는 그녀를 찾는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그녀로부터 구한다.

모든 것에 레이더를 세우거나, 매사를 계획대로 살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지내게 된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데에, 비슷한 시험지를 풀어내는 것은 아주 편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생각을 배워나가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임을

그녀를 통해 배웠다.


얼마전, 그녀가 (요즘들어 서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헤어지며 내게 말했다.

"이렇게 너무 다른데, 서로 다른걸 반가워하니 나는 참 좋아."

역시나 말투는 전혀 반갑지 않다. 전혀 좋지 않다. 이런 말을 저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다니!

그런데 나도 좋다. 이제 말투따윈 상관없다.

말투가 어떻든, 생각이 어떻든,

나는 그녀가 '아주 좋은 사람' 이라는 것을 안다. 충분하다.


오랜만에 묵은지지짐을 만들어야 겠다.

그녀의 아이와, 나의 둘째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이다.

두 녀석 다, 수북히 뜬 밥술 위에

된장에 지져놓은 묵은지를 척, 찢어 올려먹으며

맛있다고 엄지 척을 올려주겠지.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그녀도

함께 배가 불러올 것이다. 아주 반대인 우리 둘 다 행복해질 것이다.

그녀는 내게 말할 것이다.

"아이가 정말 맛있게 먹었어. 고마워."

전혀 고마운 것 같지 않은 말투로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그녀가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통하는 생각들만, 비슷한 인생들만 골라 만나며

굳이 반대를 만나는 기회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된 탓에 겪어야 하는 수고로움.

덕분에 그녀를 만났다. 반대쪽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묵은지 된장 지짐


첫째도 좋아하지만, 특히나 둘째가 좋아하는 반찬입니다.

이 반찬만 있으면 둘째는 밥 위에 얹어먹기도 하고, 국물에 비벼먹기도 하며

한 그릇을 순식간에 싹 비우곤 하죠.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입맛에도 잘 맞는데다가 만들기도 손쉬우니

넉넉히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든든한 밑반찬이 되어줄 거에요.


1. 묵은지의 짠 맛을 살짝 빼기 위해 양념을 씻은 후에 물에 10-20분쯤 담궈 놓습니다.

2. 된장을 푼 물에 멸치와 다시마, 그리고 담궈놓았던 묵은지를 넣고 중불로 끓이기 시작합니다. (김치에서 짠 맛이 나오는데다가 졸이듯 끓여내야 하므로, 간은 너무 세지 않게 잡아주세요.)

3. 묵은지가 충분히 익었을 때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약불에서 10여분쯤 더 끓여주세요.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4화이토록 가성비 떨어지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