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비
주말 아침, 나는 떡갈비를 세 번 구웠다.
누가 들으면 떡갈비집인줄 알겠다. 한시간반동안 세 번에 나누어 떡갈비를 굽다니.
사정은 이렇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잠이 줄어든 나와 남편은(애통하기 그지없다.)
늘 그렇듯 주말에도 7시에 눈이 떠졌고,
아이들은 9시까지 자겠다며 깨우지 말라고 했던 참이었다.
남편은 나를 배려하여
아이들이 깨고나면 같이 아침을 먹겠다고 했으나
9시가 되니 두 녀석 모두
한시간만 더 자겠다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침을 꼭 챙겨먹어야 하는 남편이기에(이건 내 탓. 아침을 먹지 않던 그를 내가 이렇게 바꾸어 놓았으니.)
한시간 후에도 일어날지 어떨지 모를 아이들을 마냥 기다리라 할 수는 없었다.
자, 그래서 떡갈비 첫번째 타임.
남편이 먹고나자 둘째가 방에서 나왔다. 내가 깨우고 나온 후에 다시 잠들지 못하고
주말 아침의 게으름을 즐기다가 나온 모양이었다.
집 안에 배어있는 고기 냄새를 놓칠 리 없는 녀석이다. 나오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성화다.
앞서 말했듯 10시가 되어도 한시간 더!를 외칠지도 모르는 큰 아이를
마냥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9시 반에 떡갈비 두번째 타임.
10시가 되었다. 일어나겠다고 하면서도 미적미적 누워있던 첫째는
10시반이 다 되어서야 방에서 나왔다. 둘째를 마냥 기다리게 하지 않았던게 다행이다.
그래서 10시반에 떡갈비 세번째 타임.
아침 한 번 먹이는데 족히 2시간은 부엌에 붙잡혀 있었다. 이제 얼른 치우고 점심을 준비해야할 참이다.
점심도 골치다. 남편은 배가 고플테고, 첫째는 배가 부를테다.
게다가 첫째는 저녁까지 학원에 붙잡혀 있을테니, 대충 먹일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떤 메뉴가 좋을까. 어젯밤 생각해둔 점심메뉴는 이미 지워버린지 오래다.
중학교 가사시간이었다.
'부엌의 동선'을 배웠던 날, 나는 유레카를 불렀다.
내용은 지루했고, 선생님은 더 지루했던 그 수업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나를 구원해줄 솔루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선과 효율'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못되었다. 특히나 움직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딸린다고 얘기하기엔 난 원래 그랬다.
결국, 결핍은 발전을 낳았다.
게으른 나는 '동선과 효율'을 고려하며 가성비를 우선하는 습관들을 만들어갔다.
그간 그에 따른 결과물들이 제법 괜찮았기에(들인 노력에 비하면)
나는 더 가열차게 이 습관을 지속했다.
되도록이면 덜 움직이고, 이왕이면 게으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계산된 시간과 동선, 인풋과 아웃풋의 예측, 철저한 계획과 실행을 습관화 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될 줄 알았다. 이렇게 살게될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인생을 만만하게 봤다.
나는 여전히
최소한의 동선으로 최대의 효율을 가능케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 한 번 외출할 때에 최대한의 볼 일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움직임 뿐 아니라, 시간배분도 그러해서
최대한 짧은 시간에 집약적으로 할 일을 끝내고, 가능한한 릴렉스를 확보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 하루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은
뻑하면 아침만 세 번 차리는 삶을 사는 중이다. 이보다 가성비 떨어지는 인생도 없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간 당연한듯 지켜오던 '동선과 효율'은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중심에 두어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원하고 바라고 지향하고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철저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원칙이었기에
아이들을 우선으로 두는 순간, 무너진다.
아이들이 갑작스레 본인의 사정대로 스케줄을 바꿔버리거나,
내 편의와는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필요한 바를 부탁하면
엄마가 무슨 힘이 있나. 받아들여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잘못된 요청이거나, 옳지않은 판단이면 모를까
내가 살아온 방법을 고수하느라 아이들의 선택이나 결정을 막을수는 없는 일이다.
바쁘게 사느라 늘 잠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스케줄과 컨디션이 어떻든지
엄마아빠는 이제 아침잠이 없어졌으니, 혹은 엄마의 아침시간이 비효율적이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기상시간을 맞춰다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마의 효율적인 스케줄상, 이미 한 번 아침을 차렸으니 오늘은 굶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2시간에 걸쳐 세 명의 아침을 차리고 먹였다.
다음주는 3시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가성비 떨어지는 경험들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동선과 효율' 운운하는 한탄은 어리광에 가깝도록
내가 가진 모든 것,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아이들에게 쏟아붓고는
뭐 하나 받는 것 없이도 만족하는 일들이 지금보다도 쌓이고 쌓일 것이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본인과 비슷하다며 유달리 잘 챙겨주시던 부사장님께서
어느날 술자리에서 내게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른다.
"네가 네 뜻대로 살아왔다는 건, 좋은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는 뜻이야.
너나 나나, 고마워하자. 우리는 여전히 뜻대로 살고 있잖냐."
동선이든 효율이든, 습관이든 성향이든,
그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건
많은 이들에게 배려를 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알게 모르게 수많은 배려를 받아왔으니,
이제는 받은걸 갚아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일테다.
갚아야하는 대상이 남도 아닌,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들이라니,
이보다 다행한 일은 없다. 감사한 노릇이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었을 계산법.
겪고, 해내고, 받아들이는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나를 기꺼이 조연으로 두는 것.
아직 엄마로 산 시간이 나로 산 시간보다는 짧은지라
종종 부아가 나긴 하지만,
꽤나 보람된 일임을 배워가고 있다.
두번 세번 열번을 반복해도
나는 아마도 아이를 주연으로 두기 위해
홀린듯 조연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빛나는 주연을 위해서라면, 나는 엑스트라도 불사할 것이 분명하다.
이래서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나보다.
떡갈비
떡갈비를 만드는 방법은 햄버거스테이크와 비슷합니다. 양념은 불고기와 같구요. 그래서인지 저희 아이들은 불고기와 햄버거스테이크를 같이 먹는 기분이라며 유독 좋아하더군요. 시간이 날 때 여러개를 만들어두고 냉동실에 넣어두면, 도시락 반찬으로도 잘 쓰이는 메뉴여서 늘 넉넉히 만들어둔답니다.
1.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2:1의 비율로 섞습니다.
2. 양파, 마늘, 대파를 다져 넣고, 간장, 매실액, 맛술, 설탕, 후추를 넣습니다.
3.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 잘 치댑니다. 왼손 오른손으로 옮겨 던지며 충분히 치대줘야 부드러운 떡갈비가 된답니다.
4. 동글동글한 떡갈비가 완성되었다면, 가운데를 눌러 움푹하게 만들어주세요. 익히면서 부풀어올라서 폭신한 떡갈비가 완성된답니다.
5. 중간불에서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떡갈비를 익히면서, 유장을 앞뒤로 서너번 발라줍니다.(유장은 간장, 설탕, 참기름입니다.)
6. 앞뒤로 노릇노릇해지고 움푹했던 가운데가 부풀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 뚜껑을 덮어 안까지 익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