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알 홍합탕
첫째는 얼마전, 큰 시험을 치뤘다.
6년을 꿈꿔왔고, 3년을 달려온 그것을 평가받는 날.
사실 나는 선뜻 내키지 않는 길이었으나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알기에
아이와 함께 애타는 마음으로 요 몇주를 버겁게 버텼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보며
나는 모든 맥이 풀려버렸다. 밥도 하기 싫고, 청소도 하기 싫고,
심지어 이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싫었다.
아이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공간이었음에도
며칠동안은 열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곁에서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이리 지쳤으니
본인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험 다음날은 아이의 기말고사였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이미 끝났으나, 유독 기말고사가 늦은 아이의 학교는
큰 시험을 치루고 온 아이를 쉬게 놔두지 않았다.
하필, 올해의 시험이 예년에 비해 까다로워져서
아이의 마음은 무너져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들로는
다른 아이들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울고 있다고 했고,
엄마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말라며 화를 내고 있다고도 했고,
망쳐버렸으니 한동안은 될대로 되라 지내겠다 선언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야속한 기말고사 일정은 기어이
6시간이 넘는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를 일으켜
주섬주섬 교과서들을 챙겨들고 대문을 나서게 만들었다.
꾸역꾸역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시험 때문에 기말 대비를 하나도 못했다며
그냥 좀 쉬라는 내 만류에도 아이는 스터디카페로 나섰다.
기말고사 첫 날,
집에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전 날보다 밝다.
시험 이후로 조심스러워 말도 잘 섞지 못했었는데
아이가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온다. 아, 다행이다. 내신이라도 잘 봤구나.
"걱정하더니... 시험 점수가 괜찮아? 기분이 좀 나아졌어?"
"뭐 시험 점수 때문에 기분이 풀린 건 아닌데..."
준비해둔 간식을 먹으며 거의 이틀만에 종알종알 내 앞에서 떠든다.
학교에서 너무 아팠다고 한다.
졸려서도 아니고, 피곤해서도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 느끼는 고통이었다고 한다.
보건실에서 진통제를 하나 받아 먹고
시험 전 자습시간에 마냥 엎드려 잠만 잤다고 했다.
첫 과목은 얼른 풀어버리고 또 엎드려 잤다고 했다.
다행히 좀 컨디션이 올라와서 두번째 과목은 그나마 집중해서 풀어내며 아이는
'아, 내가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어제 다 쓰고 온거였구나.' 싶었다고 했다.
다시 돌아가도 더 할 수는 없을만큼,
갑작스런 난이도 변화에 펜을 쥘 수 없을만큼 손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기를 쓰고, 정신을 붙들어 매며, 다 쏟아붓고 왔구나 싶었다고 했다.
"엄마, 그래서 마음이 괜찮아졌어.
그렇게 아프고 보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 다시 돌아가도 더 할 수 없이 하고 왔으니
난 이제 후회 없다 싶어졌어. 맘이 편해."
시험을 잘 보고 왔다는 소식보다, 고작 열여섯짜리가
후회없이 온 힘을 태워내고 나면,
아쉬움도, 미련도, 걱정도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더 기특하다.
그러면서도, 이런 마음을 알게 되느라 했을 고생이 떠올라 맘이 아리기도 하다.
"그럼 영아. 어제 뿐이니. 몇 년동안 너가 얼마나 고생을 했어.
결과랑 상관없이, 너가 공들인 시간은 어디 안 가. 그게 다 너의 재산이야.
이것 봐. 중학교 3학년짜리가
미련이 없을만큼 최선을 다한 기분을 느꼈다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하니.
엄마야말로 결과가 어떻든 원 없다! 엄마였다면 너처럼 못 했어."
아이의 표정이 빙긋 뿌듯해진다.
다정한 대화가 얼마만인지, 시험날이 다가올수록 아이는
온 몸의 털을 뾰족하게 갈아 세웠었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순간순간 욱하며 부딪혀 서로 악다구니를 쓴 날도 있었다.
후회가 되면서도 아이가 걱정되고, 꼴보기 싫으면서도 짠해 죽겠는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아이는 꾸준히 자라고 있었나보다.
이런 아이를 두고 나는 뭘 그리 걱정을 했을까, 미안해졌다.
기말고사 두번째날은 하필 아이의 생일이다.
아이는 기말고사가 끝날 때까지는 생일 아침상을 받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일요일 시험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미역국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말 미역국 안 먹을거야? 시험 끝났는데 뭐 어때."
"안돼. 결과 나올 때까지는 안 먹을래."
미역국을 좋아하는 아이다.
시험을 망쳤다고, 가망 없다고,
플랜B나 준비할테니 엄마도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는 미역국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는 속으로
자꾸만 일어나는 기대를 잠재우느라 애를 쓰고 있을테고,
와중에 엄마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품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지.
때로는 엄마가 슬플까봐 우려되어
내가 받은 상처는 숨기느라 급급했던 때가 있었다.
저 작은 속에
세상이치를 깨닫느라, 본인 마음을 추스리느라, 거기에
엄마 걱정까지 해주느라 참
분주하고 벅차겠다, 또다시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미역국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홍합탕을 끓여 놓으려고
홍합을 손질하는 내 옆을 지키고 서서 구경을 한다.
내일 시험 볼 과목을 걱정하기도 하고,
본인이 계획하는 플랜B를 설명하면서도 은근히
이번 시험에 합격하면 하고픈 계획도 내비친다.
그 속이 헤아려지니 나는 선뜻
합격할거라고 걱정말라는 감정적인 응원도 해줄 수가 없고,
계획을 수정을 해주는 현실적인 조언도 해줄 수도 없다.
그저, 넌 잘 될거야, 잘 할거야, 믿음을 보여주는 수밖에.
"영아, 뭘 해도 좋은 것으로 채워질거야.
중학교 3학년짜리가 다 태워버리고 나면 맘이 후련하다는 걸 깨달았다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겠니.
엄만 정말 너만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어."
"엄마는 진짜 그런 경험이 없었어?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어?"
음......
"아니다! 생각해보니 엄마도 있긴 했어.
엄마도 딱 너만할 때 깨닫긴 했네.
미친듯이 장국영을 사랑하고, 미련없이 중3때 떠나보내줬네, 생각해보니."
"어우 그게 뭐야!"
"왜. 사랑도 후회없이 다 쏟으면
이루어지지 않아도 속이 후련하거든."
낄낄 웃는 아이 앞에
나도 함께 아무 생각 없는 듯 낄낄댔지만
속으로는 열심히 되뇌었다.
잘될거야. 붙어도 떨어져도,
엄마 걱정이 늘어져도, 때로는 속을 썩여도
너는 결국 잘 될거야.
에라 모르겠다, 며 밥도 살림도 글도
다 뒤로 미루고 드러누워버린 엄마와 달리
꾸역꾸역 기말고사까지 마무리 해내고 있는데.
온 마음을 다 태워버리는 기분을 장국영으로 깨달은 엄마도
그럭저럭 이렇게 살고 있는데.
괜찮아 영아. 너는 엄마보다 훨씬 좋은 어른으로
잘 자라고 있는 중이야.
홍합만으로는 전하고픈 마음이 아쉬워
아껴놓았던 오징어알도 다듬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더덕도 넉넉히 넣으며
크느라 수고많다, 잘 자라고 있어줘서 고맙다,
열심히 내 마음을 더해본다.
사랑하는 나의 첫째, 생일 축하해.
열심히 자라느라 수고 많았어.
오징어알 홍합탕
해물찜을 시키면, 가뭄에 콩나듯 찾아지는 그것. 오징어알을 넣은 홍합탕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뽀독한 식감으로 담백한 맛을 한층 올려주는 재료에요. 마침, 생물 오징어알을 파는 곳을 발견하고는 얼른 넉넉히 주문해뒀지요.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둔 오징어알은 흐르는 물에 살살 씻기만 하면 재료준비 완성이랍니다.
홍합만으로도 시원한 맛을 낼 수 있지만, 미더덕과 오징어알까지 추가되면 그 시원함은 상상 이상입니다. 레서피도 간단하니, 입맛 없는 여름에 한 그릇 끓여드시면 속이 시원하게 회복되는 기분이실거에요.
1. 멸치육수에 다시마와 무우, 편마늘을 넣어 끓여냅니다. (다진마늘도 괜찮지만 국물이 탁해져서 저는 맑은 국에는 편마늘을 넣습니다.)
2. 육수가 우러나는동안 홍합, 오징어알, 미더덕(어느 해물이든 좋습니다.)등의 해산물을 다듬어둡니다.
2. 육수가 적당히 우려나면,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낸 후, 다듬어둔 해산물을 넣습니다. (저는 먹기 좋으라고 홍합이 익은 후에, 홍합살을 발라 넣었습니다.)
3. 대파를 큼직큼직하게 잘라 넣고 한 소끔 끓여내면서, 국간장과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합니다. (멸치나 해산물에서 짠기가 우러나왔으므로 간은 살짝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