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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엄마나 잘하세요.

얼갈이 된장찌개

by 이정

달콤하기 그지없던 둘째는 요즘 내게

자질구레한 것들로 혼나기 일쑤다.

무엇보다 제일 자주 혼나는 둘째의 고질병은

유별나게 쓴 물건을 아무데나 던져놓는다는 것인데,

몇 년에 걸친 이 잔소리는

하다 지쳐 내가 좀 포기하면 평화롭다가,

내가 다시 기운을 내면 집안이 시끌해지곤 했다.

요즘은 내가 기운이 뻗치는지 슬슬 갈등이 불 붙기 시작했는데

늘 그랬듯 둘째는 대답만 네 네, 하며 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 저 얄미운 네 네!!


이 영원할 것 같은 주제에 둘째는 언제나

대답만 멀쩡하고, 고치겠다 약속은 수십번, 그러나 달라지는건 없으니

가르치겠다는 의도는 없어진지 오래다. 걱정과 짜증의 단계도 한참 전에 지났다.

이제는 오기다. 이번만큼은 고쳐놓고 만다. 누가 이기나 보자!

벼르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도 아이는 학원을 다녀오자마자

방 이곳 저곳에 수건을 던져놓고, 양말을 내팽개쳐 놓고, 옷을 허물벗어 놓았다.

활짝 열린 가방은 방바닥 한가운데 떡하니 드러누워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종이들과 함께 뒹굴고 있다.

어떻게 이 짧은 순간에 이토록 방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맘먹고 헤집어놔도 이리 되진 못하겠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학교 다녀 와서는

먹고 난 아이스크림 껍질을 거실에 던져놓아 한 소리를 들었다.

학원 가기 전에는

옷을 갈아입겠다며 옷장을 사방 들쑤셔놓아서 혼쭐이 났다.

결국 아이는 어제

하루종일 엄마의 사나운 표정만 보았다. 다정한 목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발동걸린 나의 오기는 기어이

하루종일 아이에게 화를 내는 하루로 열매맺고 말았다.


자러 들어간 아이의 방문을 보며 영 맘이 좋지 않았다.

아직도 자러 갈 때엔 내 손을 끌고 기어이 자기 침대 옆까지 데리고 가는 아이다.

뽀뽀와 포옹을 세게 여러번 해주지 않으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잡는 아이다.

그런 둘째가 어젯 밤엔

"잘게요..." 하고는 들어가버렸다.

나도 "그래." 차갑게 대답하고는 소파에서 꼼짝도 안했다.



물건을 썼으면 제 자리에 갖다놔라.

네가 쓰는 방은 미루지 말고 그때 그때 정리해라.

둘째에게 하는 잔소리란 뻔한 것들이다.

도대체 그깟게 뭐라고. 이만큼 잔소리를 들었으면 지겨워서라도 고치고도 남을텐데

하루종일 혼난 아이가 짠하고, 혼을 내놓고 맘이 안좋은 나도 안타깝다.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가 거실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오후에 먹고 난 커피잔이 보인다. 그 옆에는 오전에 마셨던 물컵도 나란히 있다.

아까 강아지를 빗어주었던 강아지빗까지 굴러다니는 중이다.

읽다 만 책이 두 권... 이런저런 노트가 되어있는 메모지가 여러장.....

아………..


아이에게 했던 잔소리들은

나도 못 지키는 것들 투성이다.

나 또한 엄마에게 같은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징하다며 혼쭐도 났었다.

그럼에도, 정도가 조금 나아졌을 뿐 지금도 여전하다.

조금만 바빠지면 여지없이 집은 엉망이 되곤 한다.

집안 꼴에는 둘째 탓도 있지만, 나 또한

제 자리에 가져다놔야지, 생각하다가 이내 다른 것을 하느라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서랍마다 어지러이 물건들이 섞여 있는 집안 수납장들은

아무리 정리해 놓아봤자 아이들이 죄다 섞어놓아서 그렇다며 변명을 해보지만

솔직히 나도 한 몫 했다. 에라 모르겠네 아무데나 넣어둔 적이 허다하다.

저 꼬맹이에게 나는 뭘 바라고 혼을내고 있었던걸까.

어른인 나도 제대로 못 하면서, 나는 왜 저 아이에게 다그치고 가르치고 혼을 냈을까.

부끄럽고, 후회된다. 미안하기도 하다.


쫓아다니며 뒷처리를 하는 것에 짜증이 나더라도

좀 더 너그러워져야지. 다시 다정해져야지.

내일 아침에는 꼭 기분좋게 깨워줘야지. 결심에 결심을 거듭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젯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옷들이

침대 구석에 잔뜩 쑤셔박혀 있다.

심호흡 한 번. 참아야 해.


일어나라고 뽀뽀를 해주고 안아줬는데

좀 더 잘거라며 짜증을 부린다. 기상 짜증은 첫째 것인줄 알았는데,

엄마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지금 저 옷무더기도 참아줬는데!

심호흡 두 번. 참아야 해.


겨우 깨워 데리고 나왔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다시 방에 들어가

드러누워 있다. 왜 다시 누워있냐 하니 그럴수도 있지! 라고 한다.

아니, 돌아서자마자 옷을 저리 쑤셔놓고 되려 엄마한테 짜증을 낸다고?

심호흡 세 번. 참아야 해.


어찌저찌 세수를 한 둘째에게 얼른 로션만 바르고 밥 먹으러 오라 했다.

알겠다고 들어간 방 안에서 기척이 없다. 언니와 아빠는 벌써 먹고 일어났는데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빨리 좀 하고 나오라는 내 목소리에 둘째는

빨리 하고 있으니 그만 좀 재촉하라 날을 세운다.

삼세판 끝. 이제는 못 참아.


로션 대신 성질머리를 바르고 나왔나.

식탁에 앉는 모양새가 "나도 지금 기분이 나쁘거든요!" 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야말로 참을만큼 참았다.

"어젯밤에 분명히 엄마한테 아무데나 물건 던져놓지 않기로 약속해놓고

돌아서자마자 옷을 그렇게 쑤셔놨니!" 로 시작하여

참았던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인데도, 지키려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으니

엄마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서슬을 퍼렇게 세웠다.

아이도 심상찮았는지 스리슬쩍 성질머리를 꽁무니로 숨긴다.

"깜빡 했어요."

"아니 넌 어떻게 엄마랑 한 약속만 허구헌날 깜빡하니!"

"이제 약속 지킬게요."

"도대체 그 약속이 몇 번 째인지 셀 수가 없다!"


밥보다 잔소리를 먼저 실컷 먹고는

그제서야 둘째가 수저를 드는데.

얼갈이 된장찌개의 얼갈이를 집어다가

야무지게도 흰 쌀밥 위에 척척 올려 먹는다.

한 입 두 입 맛나게도 먹더니, 남은 밥에 국물을 떠다가

슥슥 비벼 한 그릇을 비운다.

내 속은 여전히 부글부글. 저리 아무렇지도 않은걸 보니

이번 약속도 물 건너갔네 싶은 마음에 또다시 부글부글.

보란듯이 맛있게 먹는 둘째를 마음 속으로 째려보다가,

그래도 다행이지. 기분 나쁘다고 잘 안 먹었으면

나는 더 화가 났겠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얼갈이 된장찌개를 끓여주면 늘

"신아. 이건 척척이 찌개야. 밥 위에 얼갈이를 척, 올려서 먹는 거거든." 이라고 말해주었는데

여전히 아주 꼬맹이 시절과 꼭 같이

척척 올려먹는 아이를 보니,

아이의 아가때 생각도 나고, 돌연 귀여운 마음도 든다.

어느새 둘째를 향한 내 눈꼬리가 좀 부드러워져 있다.


생각해보면 둘째는

밥도 맛있게 먹고, 야채도 잘 먹고, 청국장 미더덕 샐러리 파프리카 같은

아이들이 잘 안 먹는 음식들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아이이다.

친구들도 이런 친구 저런 친구, 가리는 사람 없이 잘 지내고,

수학도 열심히 하고, 체육도 열심히 하고, 노는 것도 열심히 하고,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열심히 한다.

눈치가 빨라서 친구들 맘도 잘 헤아려주며

다정해서 속상한 친구들에게 손내밀어 도와주고

씩씩해서 뭐든 적극적으로 이끌고 해결해간다.


아.

둘째는 그런 애였네.

아이 걱정을 하다가, 혹은 혼을 내고 나면

아이가 얼마나 고마운 구석이 많은지

잊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해놓고

내가 또 깜빡했네.


나도 허구헌날 깜빡하면서, 심지어

중요한 이 사실들을 잊고 잊고 또 잊어버리면서

아이가 옷 정리를 깜빡했다고 아침부터 화를 냈다.

분명 어젯밤 아이에게 화내지 말자 스스로 약속했으면서

나야말로 눈뜨자마자 약속따위 쉽게도 밀어냈다.

그래놓고 아이에겐 왜 엄마와의 약속을 안 지키냐고 혼을 내버렸다.


어른인 나도 못하면서

아이에게 하라니, 이게 말이 되나.

나나 잘하자.

애한테 잔소리 말고, 나나 잘하자.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와

애써 다정히 목소리를 바꿔본다. 방 안에 들어가 등교준비 하는 둘째를 불러본다.

"신아, 텀블러 꺼내야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통부터 꺼내놓으라는 말을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나도 평생 못 고치는 습관들이 허다하다.


"어? 엄마! 나 깜빡하고 텀블러 학교에 두고 왔나봐!"

참자, 참자, 참자.

나도 맨날 깜빡한다.

나나 잘하자. 나부터 잘하고 나서...

참자 참자 참자.........





얼갈이 된장찌개


어릴 적, 이 찌개가 상에 올라온 날이면

아빠는 늘 이렇게 먹어보라며 밥 위에 얼갈이를 척척 올려드셨었죠. 저도 어릴적부터 아이들에게 척척이 찌개라며 탑 쌓듯 올려주며 가르쳤답니다.

그 재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저희 아이들도,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 친구들도 잘 먹어주던 메뉴에요.

만들기도 간단한 얼갈이 된장찌개는 일반 된장찌개보다 더 시골스런 맛이 어울려서, 재래된장만 사용합니다. 구수하고 옛스런 맛이 일품이랍니다.


1. 자칫 풋내가 날 수도 있으니 얼갈이를 다듬에 끓는 물에 살짝 데칩니다.

2. 진한 멸치육수에 재래된장을 풀어 끓이다가, 데친 얼갈이와 파마늘을 넣어 한소끔 더 끓여주세요.


tip. 얼갈이를 건져먹는 음식인만큼 좀 더 진하게 육수를 내고, 자작하게 얼갈이를 듬뿍 넣으면 더 맛있게 드실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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