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유 라면
나는 원래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다.
몇십년을 통해, 완벽은 고사하고 구멍투성이 성격이라는걸 배워왔음에도
(수시로 잘못된 발행을 일삼는 나를 보아온 분들은 나의 구멍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자꾸 부질없는 욕심을 내어보는걸 포기 못하는 중이다.
첫째가 뱃 속에 있었을 때,
시어머니의 안부전화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어머니, 난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요."
내 뱃 속의 꼼틀대는 예쁜이를
흠 없이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혹여 내 실수로 아이가 다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길까봐
뒤로가기 버튼도 없는 아이의 인생이
걱정이 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나의 극한도전은 시작되었는데
오래된 나의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킥킥대며 웃었다.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고, 성격은 천하제일 급한 내가
말한마디 행동하나를 고르고 골라
상냥하고 차분하게, 조근조근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 황당했을테다.
"이제 돌아와 이정아!" 킥킥대며 웃는 친구에게
나는 돌쟁이 첫째가 혹시라도 알아들을까 하여
눈빛으로 내질렀다. '조용히 좀 해줄래?'
음식도 그랬다.
아니, 음식은 더 했다.
나는 아이의 밥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더더욱 내려놓을 수 없는 완벽의 영역이어야만 했다.
이유식때부터 삼시세끼 다양한 먹거리와 신선한 재료로
그렇게나 우왕을 떨었다.
인스턴트는 물론, 조미료 또한 꿈도 꾸지 않았고
식기부터 물컵까지
완벽한 한 상을 노렸다. 세 끼를 그리 하다보면
하루가 다 갔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하루걸러 하루,
아이 친구들이 엄마들과 함께 와글와글 놀러왔기 때문에
그 당시 내 인생은 밥으로 버무려진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라면이라는 존재를 알고 왔다.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라는걸 듣고 왔다.
라면이라니! 내 하루를 어떻게 바치고 있는데 라면이라니!! 말도 안돼!!!
라면은 몸에 좋지 않은거라고, 살만 찌고 키는 안 큰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고, 그래도 자꾸 졸라대면
엄마도 편하게 먹이려면 라면을 끓여주고도 싶지만,
너를 위해서 힘들어도 안 먹이는 거라며 애절한 설득도 했다.
알아들은 것인지, 나의 반복되는 이야기에 질린 것인지
아이의 라면 얘기는 쏙 들어갔는데
얼마 후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대형마트... 라면코너 한복판에서...
첫째를 카트에 태우고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라면코너를 지나는데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엄마는 이런거 영이 몸에도 안 좋고 살만 찌게 해서 안 해주죠?!"
라면을 고르고 있는 분들 사이에서 굳이? 이렇게 큰 소리로?
당황한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 첫째가 목소리를 더 높이며 외쳤다.
"엄마도 편할라면 이런거 해주지만, 엄마는 영이 위해서 힘들어도 밥 해주죠?!!"
라면을 고르고 있던 몇몇의 엄마들의 움직임이 멈칫, 했다.
라면 시식코너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의 눈총이 따가웠다.
또래에 비해 또록또록 큰소리로 이야기 하는 첫째가
대화할때나 어린이집 발표를 할 때에는 그렇게 기특했었는데
아... 그 순간은... 아이의 큰 목소리도, 유달리 정확한 발음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생각해보니, 영이의 저 멘트는 마트에서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 뱉은 말이라기엔 아이의 말이 너무 청산유수 막힘이 없었다.
라면을 먹었다는 친구에게 가감없이 떠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네 엄마는 몸에도 안좋고 살만 찌는 라면을 왜 끓여주니. 우리 엄마는 힘들어도 꼭 밥을 해 줘." 라며
친구의 엄마를 본의아니게 게으른 어른으로 매도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유난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유난 좀 떨겠다고 큰 일 치겠구나 싶어졌다.
영이는 그 날 저녁, 유아용 라면을 처음으로 먹었다.
어리둥절 하던 첫째가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엄마, 오늘은 편할라고 라면 끓여줬어요?"
아! 멈추길 잘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라면 한그릇이 뭐라고 그리 비장했을까.
그 때에는 모든 것이 그랬다.
밥 한 끼 잘못 먹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옷 한 번 춥게 입히면 큰탈 나는 줄 알았다.
완벽하지 못한 엄마가 완벽을 꿈꾸며 그리 안달을 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만큼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거나 잠이 들면
종류별로 섭렵해가며 라면을 끓여먹는 사람이었다.
저는 옆으로 가면서, 자식보고는 앞으로 가라고 하는 우화 속 게처럼
아이들한테는 라면이 무슨 심각한 유해식품이라도 되는 양 난리를 쳤지만,
사실 나는
아이들을 임신하고 제일 아쉬운걸 꼽으라면
맥주와 라면.을 고민없이 선택했던 라면 매니아였다.
그러나 나에게 아이들의 어린시절은
하루에 잔뜩 힘이 들어간채 지내는 시기였다.
각종 육아서적과 전문가들의 지침들과
SNS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황새 엄마들을 보면서
뱁새였던 내가 종종대며 쫓아가느라
고군분투하는 날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둘째가 자라면서 여러가지로 두세배 바빠지자,
그간 지켜오던 식사며 육아에 관련된 나의 황새흉내는
조금씩 힘에 부쳤던 듯 하다.
무엇보다
코로나는 나의 유난에게도 재앙이었다.
다른건 좀 포기하더라도, 아이들 면역력을 운운하며 밥만큼은 버텨내려 했지만
하루종일 붙어있는 아이들의 삼시세끼가
한달 두달 1년 가까이 흘러가자
뱁새에겐 무리었다. 악착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 나는 버겁던 유난을 내려놓고
라면도 먹이고, 인스턴트도 해준다.
필요하다면 조미료도 잘 쓰고, 한끼정도는 대충도 때운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워낙 별별걸로 배를 채우고 다니니 집에서라도,
혹은
소홀히 먹이는 날들이 많아지면 꼭 한번씩 아픈 첫째를 위해 조금이라도,
하며 자꾸 예전의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지만
그래도 내가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고 한다.
뱁새가랑이가 정말 찢어져 버리면 그야말로 큰일이지 않은가.
엊그제는 밤 12시가 넘어 짜장라면을 끓여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샐러드는 어떻니, 과일을 먹을래, 뭘 좀 만들어줄까, 물어보다가
에라 모르겠네. 나의 뱁새다리에게 휴식을 주었다.
사실, 아이들이 야밤에 먹을것 타령을 하면
짜증이 밀려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설핏 잠든 몸을 일으켜 이것저것 먹을 것 챙겨주고 나면
오던 잠이 다 달아나, 한참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날 밤, 아이들의 기분은 좋았으며, 나의 몸도 편했다.
역시
뱁새는 뱁새다울 때, 좋은 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뱁새다리는 바쁘다.
짧은 다리 종종대며
온가족이 유일하게 모여앉는 아침과
매일의 도시락, 그리고 도시락 못잖은 간식을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뱁새에게는 그닥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안달냈던 마음을 좀 내려놓는다.
그 동안 열심히 챙겨 먹였으니, 평소에 부지런히 신경쓰고 있으니
가끔 게으름을 부려도
아이들은 건강히 자라줄 것이다. 아무 탈 없을 것을 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라유라면.
향긋한 대파를 얹은 꼬들꼬들한 면발로 입 안을 가득 채우면
값비싼 요리 못잖게 뿌듯할테지.
반숙된 달걀노른자에 칼칼한 국물을 끼얹어 호록 먹으면
얼얼히 매웠던 입 안이 사르르 녹아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깔끔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국물에 아침에 먹고 남은 찬밥도 말아서
야무지게 한 그릇을 비울 예정이다.
자, 맛있게 한그릇 싹 비우고,
오늘도 잘 부탁해.
앞으로도 때론 종종대며, 때론 쉬어가며 잘 지내보자, 나의 소중한 뱁새다리.
라유라면
라면을 좋아하는만큼 이런저런 방법들로 끓여먹곤 하는데, 간단하면서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라면은 라유라면이에요.
라유는 마늘향이 풍부한 고추기름 종류인데, 라면을 끓일 때에 라유를 넣으면 맛과 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답니다.
라유라면은 세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라유, 대파, 후추.
이 세가지만 추가하시면, 훨씬 얼큰하고 깔끔한 라면을 드실 수 있을거에요.
1. 일반 라면 레서피에 물을 조금 더 추가해주세요. (가장 플레인한 라면으로 선택해주세요. 저는 보통 스O면이나 안성O면으로 끓인답니다.)
2. 스프를 넣을 때, 취향껏 라유를 추가해서 간을 맞춥니다.저는 2큰술 정도 넣습니다. (라유를 넣으실 때에는 아래쪽까지 잘 섞어주세요. 풍미 프레이크들은 아래쪽에 깔려있거든요.)
3. 달걀을 넣으신다면, 라유 특유의 풍미를 해치지 않도록 터뜨리지 말아주세요.
4. 다 끓고나면 대파와 후추를 더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