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구이
아이들이 한참 어렸을 때에
영이를 시작으로 신이까지, 장염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이제는 다 나았다고,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는 영이에게
아직은 죽을 먹어야 한다는 고집을 고수하지 못한 탓에
영이의 장염은 나을듯 다시 도지며 길게 이어졌고,
뒤이어 신이까지 아프면서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먹지 못하는 아이가 집에 있으니, 나 또한 함께 굶어가며 간호를 하게 되고,
결국 두 녀석이 다 낫자마자 내가 몸살이 났었는데
하필 남편의 분기행사인 편도선염까지 시작되며
누구라도 붙들고 엉엉 울며 하소연을 하고픈 심정이었다.
나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사위를 늘상 괴롭히는 편도선염을 원망하며
얼른 나아야 할텐데, 너무 앓으면 안될텐데,
사위가 좋아하는 죽이라도 끓여갈까, 목에 좋다는 차라도 우려갈까, 걱정을 이어갔다.
그것이 어찌 사위만 걱정하는 마음이었을까.
아직 추스리지 못한 컨디션으로 남편까지 챙겨야 하는 딸이 안쓰러워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게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던 시점은 하필,
시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줄줄이 가족을 챙기느라 진을 빼는 며느리 걱정은 하나 없이
아파서 딱하다고, 열나서 어쩌냐고, 눈물바람을 날리며
뭘 해 먹이는지 시시콜콜 참견을 하시는 시어머니에게
나는 아주 속이 뒤틀린 상태였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건만, 지친 몸으로 듣기에는 그 날따라 버거웠다.
그러니 엄마의 걱정이 사위 보약이라도 지어먹일까 하는 말로 이어지는 순간,
갑자기 내 눈물이 터져나왔다.
나도 죽겠는데 사위 보약 타령만 하냐고,
엄마라도 지쳐있을 나를 더 걱정해줘야 하는거 아니냐며,
생전 않던 땡깡을 부리며 엉엉 우는 나에게
너가 많이 힘들구나, 어쩌면 좋니, 엄마는 안타까워 몸둘 바를 몰랐더랬다.
엄마에게 서운했던 것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 터뜨릴 수 없었던 속내가
마침 전화를 한 엄마에게 터져나온 것 뿐이었고,
아들만 챙기며 며느리를 볶았던 시어머니의 말들이
사위를 어떻게든 챙기려는 엄마와 대비되면서
애써 모른척 묻어두려던 서러움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아니, 서러움을 넘어 엄마 앞에서는 죄스러움으로 밀려왔다.
나는 딸 둘인지라
시어머니가 될 일은 없고, 장모가 되기에도 아직 멀었으나,
시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아무리 온 마음을 열어본들, 어느 누가 내 자식보다 더 귀할 수가 있을까.
온통 마음을 열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며느리를 아들보다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것을 보면
시어머니보다는 친정엄마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딸 같은 며느리는 가능하지 않다며
잘났다고 아는 척을 해 댔지만,
어쩌면 나는
엄마같은 시어머니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들보다 나를 먼저 챙겨줬으면 좋겠고,
백 번 양보해서라도
아들 입에 뭐 하나 넣어줄 때에, 내 입에도 공평하게 넣어주시길 바랬던 건
나의 철없는 미련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련되게 표현하거나, 속내를 감추는 것에 서툰 어머님에게
너무 큰 욕심을 낸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추석을 맞아, 시댁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서운할 일들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여러번의 갈등을 지나, 어머님은 이제
내 안부도 먼저 묻고, 내 걱정을 앞세우시기도 하지만,
쓴 웃음이 나도록 아들사랑을 숨기지 못하신다.
푸짐한 반찬은 아들 앞으로 밀어 놓으시고,
며느리에게는 홑이불먀낭 얇은 이불을 깔고 자라고 주시면서
아들에게는 두터운 요 위에 시트까지 갈아주시며
직접 자리를 정성껏 봐주시기도 했다.
순간순간, 아이들 보기 좀 민망하고
시어머님을 흘겨보게 되는 마음이 전혀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당췌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어머님의 세련되지 못함을
한 편으로는 귀엽게, 또 한 편으로는 안타깝게,
그리 받아들이고 있다.
민망해하는 남편을 안쓰럽게 여길 줄 아는 마음도 마련해 두었다.
시댁을 다녀 온 날 들른 친정에서
고기반찬은 사위 앞에 두고, 안마의자도 사위에게 먼저 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시댁에서 받은 대접에 죄스러운 마음을 먹기보다는
다행히 친정엄마가 지혜롭게 행동해줘서
내가 곤란하지 않아도 됨에 감사한 마음을 먼저 느낄 줄도 알게 되었다.
어머님은 이번에도 아이스박스에
바리바리 반찬들을 싸 주셨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시래기는 물론이거니와,
남편이 좋아하지 않으나, 남편이 좋아한다고 믿고 계신 고추찜부터
남편이 좋아하는 장아찌, 남편이 좋아하는 물김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그랑땡과 아이들이 잘 먹었던 오징어숙회 사이에
며느리를 위한 더덕구이를 끼워넣으셨다.
남편도 아이들도 그닥 잘 먹지 않음을 알고 계신데도
종종 넉넉히 만들어서 넣어주시는 반찬이다.
간단해 뵈는 이 반찬이 생각보다
공이 많이 드는 메뉴임을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님에게는 늘 내가
아들 다음, 아니 아들과 손주들 다음이겠지만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과 같이 살아주는 이어서,
아주 미운 며느리는 아니어서,
더덕을 두드리고 재우고 구워내는
그 귀찮은 과정을 기쁘게 해주심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나와 어머님은
꽤나 긴 갈등을 겪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종종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남자와도 시시때때로 부딪히며 사는데,
친정엄마조차 맘에 안 들고 서운한 때가 많은데,
나는 어머님의 어떤 면은 내내 익숙하지 않을테고
어머님 또한 나의 어떤 점이 영 마뜩치 않을테다.
그래도 괜찮다.
며느리의 반란에 때로는 져주시기도 하시고,
보란듯 맹랑하기로 맘 먹은 며느리의 말대꾸에도
어이구 너 잘났다, 며 넘어가주시기도 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잘 지내볼 일이다.
나 또한,
남편이 혹여 한이 되는 일들이 없도록
도리를 지키고 마음을 전하는 것을 함께 할 작정이니
나와 어머님은 덜그덕 대면서도 별 탈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사느라 바빴고
허리를 좀 펼만하니 아들은 일찌감치 집을 떠나
살뜰한 정을 퍼부어주지 못했음을 아직도 눈물로 기억하시는 우리 어머님.
이제, 거짓말로라도 아들보다 나를 더 아끼는 척 해달라던
꽁한 욕심은 버렸답니다.
벌써 여든이 넘으신 어머님.
마음껏 아들에게 사랑을 쏟아부으시고,
원없이 아끼고 표현하시길.
남은 날들이라도 아쉬움 없이 뿌듯하시길.
대신, 더덕구이는
종종 부탁드려요.
더덕구이
시어머님의 더덕은 참기름이 아니라 들기름으로 유장을 한답니다. 씹을 때마다 살며시 풍기는 들기름 향은 더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조차도 푹 빠지게 만들었죠. 어머님께 레서피를 받아서 한 번 시도했는데 보통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 아니더군요. 깐 더덕도 아니고 하나 하나 까서 두드리셨을 어머님을 생각하면 미웠던 맘이 녹아내리기도 한답니다.
이번 추석에 받아온 더덕이 푸짐해서, 반 정도는 냉동실에 넣어두었어요. 혹여 또 어머님이 원망스러운 맘이 들 때에 조용히 해동된 더덕을 씹으며 다시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어볼 참입니다.
1. 더덕을 깨끗이 씻어 깐 후에 끓는 물에 살짝 튀겨냅니다.
2. 너무 으깨지지 않도록 두들겨줍니다.
3. 적당한 크기로 찢거나 자른 후에, 들기름과 간장을 섞어 골고루 발라 유장을 해줍니다.
4.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파마늘, 설탕, 들기름, 간장으로 양념장을 만듭니다.
5. 유장을 한 더덕을 노릇하게 앞뒤로 구워준 후에 약불로 줄이고 양념을 여러번 발라주며 구워줍니다.
5.다 구워진 더덕위에 다시 한 번 양념을 발라주면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