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툰 울타리
영이가 초등학교 졸업 무렵, 사춘기를 맞이하며
우리는 그간의 모든 룰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전쟁을 치뤄야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큰 만큼, 어느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겠노라며
귀를 기울여주기도 하고, 양보도 해 주었으나,
어느새 아이는 영역을 재빠르게 확장해가며 모든 것에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취침시간이나 귀가시간 등의 선택사항은 그렇다치고,
눈 내리는 한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겠다거나,
하루 세끼를 거르거나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우겠다거나,
하다하다 아파서 끙끙 앓으면서도 병원에는 한사코 가지 않겠다는 등의
건강이나 안전에 관한,
엄마로서 마땅히 저지해야 한다고 여겼던 목록까지 아이는 협상리스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겪어보는 자식의 사춘기.
그것은 내 경험이나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치도 못한 부딪힘은 수시로 일어났고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감정에 나 또한 맺히고 쌓인 것들이 늘어나며
나까지 하루에도 수십번 널뛰는 기분을 겪어내야 했기에
막상 아이와 부딪히면
이론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대책없는 요구와 불만이 이어지면서
나는 어느새, 아이가 합리적이랍시고 내세우는 주장들을 뒤로 하기 시작했다.
그저 사탕달라 떼 쓰는 아이의
조잡한 합리화라며 귓등으로 들어버리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짓말이라고는 당췌 소질이 없어서, 갑갑하리만큼 유도리가 없던 아이었는데 이제는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와 핑계들을 들이대며
나에게 요구했다는 것을 여러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과할만큼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는 아이었기에,
그래서 첫째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믿어줬던 엄마였기에,
그 깨달음의 과정은 나에게
상처고, 혼란이고, 불안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나자 아이는
돌연,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내게 선언을 했다.
아이는 나의 만류에도 일찍부터 입시판에 달려들어
이미 가족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터였다.
공부하는 시간까지 밖으로 도는 것은 최대한 늦추고픈 일이었고,
게다가 아직 어린 여자아이가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일은
요즘 세상에 걱정되고 불안한 터였다.
게다가 그 즈음, 성범죄자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는 알림이 떠서
엄마들 사이에서 한참 시끄러웠던 중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이 모든 이유를 정성스레 설명을 했으나,
아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집에서도 방 안에만 있을 것이고,
엄마나 아빠가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와준다면
밤늦게 밖에 돌아다닐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부모라면 안다.
한 번 터진 물꼬는 부지불식간에 커지기 마련이다.
겨우 중학교를 막 입학한 아이, 벌써부터 허락을 해준다면
나중엔 어디까지 허락이 되어야할 지, 나는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이와의 지리한 논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내 속에서 움켜쥐고 있었던 또다른 이유를 꺼내놓았다.
"엄마가 해봐서 알아. 스터디카페가 처음에는 공부가 잘 되는 것 같겠지.
삐끗하는 순간, 엉망이 되기 십상이야.
엄마는 고등학생 때에도 독서실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1년을 헤맸는데
넌 아직 중학교 신입생이야. 아직은 안 돼. 더 성숙해지면 그 때 다시 얘기해."
그랬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을
독서실 친구들과 엉망으로 보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독서실의 도움으로 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하게 유지되었으나
내가 다니는 독서실에 학교에서 유명한, 그 아이가 오면서부터
나는 가랑비 옷젖듯 생활과 공부가 엉망이 되어갔었다.
내가 그리 공부를 놓아버릴 것이라고는 나조차도 몰랐다.
그저, 일주일 한 두 번 그 아이의 접근에 대꾸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2-3일에 한 번, 그러다가 매일,
그 아이가 나의 냉랭함에 민망하지 않도록 요령껏 대하겠다던 나의 결심은
어느새 그 아이에게 물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이었다.
나와 첫째는 그 부분을 두고 또 수시로 부딪혔다.
아이는 투쟁하듯, 공부하겠다고 들어가서는 5분도 안되어 나와
"집에서는 공부가 진짜 안된단 말이야!" 라며 전쟁을 선포했고,
나는 설득하는 노력을 집어치우고
"시끄러워. 아직 스터디카페는 안 돼!" 라고 반격하다 결국
"조용히 해. 너가 내 딸인 이상, 내 말에 순종해." 로 끝나버리는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짜증으로 일관하던 아이가
단호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 스타카토로 말했다.
"엄마가. 그랬던건. 알겠는데.
나는. 엄마와. 다른 사람이야."
-
나의 사춘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던 고등학교 1학년.
엄마와의 전쟁은 지긋지긋할 지경이었고,
그 때마다 늦게 퇴근해서 무조건 엄마 편을 들어주는 아빠에게도
온갖 불만이 쌓여가던 시기.
아빠는 어느 날, 나에게 선언했다.
"이번주부터 매주 일요일 아침에 나와 등산을 가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교회 때문에 일요일 하루도 늦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안 그래도 불만이었는데
그보다 몇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서 등산을 가자니.
맥없는 반항이라도 해보려고도 했으나
오랜 학습을 통해, 이 정도는 순종해줘야 뒷탈이 없음을 알았던 나는
반항보다는 시위를 선택했다.
일요일 새벽마다 어떻게든 이유를 들어 기상시간을 미뤄보려 했고,
등산 내내 입을 한 발 내밀고 아빠와 대화를 하지 않으며 버텼고,
돌아와서도 온 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며 지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보다 아빠에게 더 힘든 미션이었으리라.
아빠는 모두가 인정하는 '올빼미형 인간' 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평생 힘들었던 사람.
그 시절은 주6일 근무에, 출근시간까지 왜그리 빨랐는지,
안그래도 업무에, 야근에 버거웠을 아빠에게
일요일 아침의 몇시간 아침잠은 나보다도 간절한 것이었을테다.
머리로는 어렴풋이 알았으나, 마음으로는 그 생각을 밀어내며 살던 철없던 시절.
일어나라는 아빠의 호통, 다녀와서까지 이어지던 나의 짜증등으로 가득했던 주말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날의 아빠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일정부분 마음이 풀렸고,
아빠의 그 목소리와 함께, 그 말을 할 때 들렸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서늘하게 콧 속으로 들어오던 바람의 온도, 걸음마다 발 끝에 치여 굴러다니던 자갈들까지.
이 모든 것이 평생 나에게 남았다.
"너는 어릴적부터 엄마보다는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던 애야.
엄마와는 워낙 다른 성향이기 때문에 너가 힘든 부분도 분명 있을거야.
내가 너를 키우면 좀 편했을지도 모르지만,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 너희를 키우는 건 엄마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엄마가 너 잘못되라고 하는 건 하나도 없어.
그러니 너가 좀 이해 안되는 면이 있더라도 엄마 말을 따르는게 좋겠어."
아빠가 그 날,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와 어떤 대화를 했었는지,
그저 그 날 나는
언제나 엄마 편에만 서던 아빠가,
늘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던 아빠가,
엄마와 나의 다름을 알고 있고
나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것이 안타까워 양해를 구하고 있음에
놀랐다.
늘 그렇듯 아빠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 날만큼은 시위가 아닌, 놀란 머릿속을 진정시키느라 그랬다.
"엄마와 너는 달라."
이 말이 나는 언제나 고팠다.
엄마에게도 수시로 내지르던 말이었다.
"진짜 나랑 안 맞아!!!"
엄마가 내려주는 선택도, 엄마가 처방하는 솔루션도,
나는 싫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기질의 인간인지,
내가 나를 알아가면 갈수록
엄마의 방법은 내게 맞지 않았다.
엄마와의 끝없는 전쟁은
엄마가 내게 입히려던 맞지 않는 옷이 늘 원인이었던 것이다.
-
영이가 단호한 표정과 말투로
"엄마와. 나는. 달라."
라고 말했을 때, 당황한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지는 못했다.
생각을 좀 해보자고 영이를 방으로 들여보내 놓고 나는,
조금 마음이 아팠던 것도 같다.
나와 많은 부분 다른 점이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놀랍도록 비슷한 면도 많고, 누구보다 잘 통하는 사이라고 믿어왔다.
조금 허전하고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영이에게 미안해졌다.
영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영이에게
그리고 신이에게도
'엄마의 아기가 아니라,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께.' 라고 약속했었다.
나의 분신이 아닌, 나와 다른 또 하나의 사람.
갓난 아기에게도 그리 대하려 애썼던 결심은 어느새 희석되어
나보다도 키가 커진 아이를
나의 경험과, 성향과, 짐작에 기대어 키우려 했었다.
그것이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최고의 역할이라 여겼다.
영이는 나에게
'나는 엄마와 다르다.' 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갑갑함을 느꼈을까.
때론 불호령을 내리는 만만찮은 엄마에게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니,
미안함과 동시에, 나는 영이를 통해 왠지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가 해내지 못했던 그것.
엄마와 나를 '다른 사람' 으로 분리하기.
그것을 영이가 해내었다는 것에
그 시절 간절했던 희열이 이제 와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그 마음이 많이 간절했었구나, 뒤늦게 깨달아지기도 했다.
-
영이를 '나와는 다른 사람' 으로 인정하고 나니,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나아졌다. 물론, 영이의 입시가 끝나면서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진 탓도 있을테다.
원하는 것은, 그것이 합당하다면, 어떻게든 관철시켜야 하는 아이.
영이가 따박따박 나의 결정을 바꾸려고 들 때마다
그 태도가 불손하거나, 그 근거가 불합리하지만 않다면
나는 그 날처럼 왠지모를 해방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 시절의 나보다, 현명하게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영이가 반갑고 기특하다.
다만, 영이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입학한 여전히 아직 작은 사람.
인정해줘야할 것과, 잡아두어야할 것의 판단은
언제나 어렵다.
배워보지 않은 것을 행한다는 것은
이 나이가 되어도 수월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낯선 엄마의 역할에 대하여 비틀거리기도,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말을 순종해야한다.' 는
궁핍한 논리로 아이를 붙잡아두지 않기 위해
기꺼이 그 혼란한 길을 가보자고 결심해본다.
영이는, 그리고 착실히 영이의 뒤를 따르고 있는 신이는
나보다 더
억압되지 않은 자유를 훨훨 누리며 자라기를.
혹여, 그런 이유로 더 많이 넘어지고, 더 많이 부딪히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아이는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나는 그저,
더 지혜로워져야겠다.
순종을 무기로 삼지 않고
아이와 함께 더 나은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아이의 자유로운 날들에 아주 드넓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도록.
겪어보지 못한 길을 가야하는 엄마의 서투름을
아이들이 너그럽게 대해주길 바랄 뿐이다.
내가 애써 넓혀가는 울타리가
나쁜 모양새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