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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의 아줌마들

그녀들은 이제 행복하고 있을까

by 이정

세 살이 되던 해, 나는

강남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그 곳.

지금의 강남과 달리, 내 어린시절의 강남은

떵떵거리고 사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정반대로

꽃동네같은 비닐하우스촌도 있어서,

어울리지 않는 이웃들이 생경하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그 둘의 사이에는 우리집처럼

잘 살아보자며 무리해서 이사온 평범한 집들도 많았는데,

나는 평범함들 뒤에 숨어

때로는 각잡히고 시커먼 커다란 외제차를 구경해보기도 하고,

어느날은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는 또래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너무 다른 두 온도를 수시로 경험하며 자랐다.


그저 성실한 월급쟁이 살림이었던 젋은 부모님은

신흥부촌이라며 뉴스에 심심찮게 올라오던 그 동네로 이사오느라

아파트 대출금에 치여 종종 관리비도 벅찼다. 게다가

뭐든 남부럽잖게 해주고픈 딸이 쑥쑥 자라고 있었고,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방이 하나 더 있은 평수로 이사하고 나니

맞벌이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지만 나의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다행히 엄마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학원을 차리고

제법 쏠쏠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으나,

맞벌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직 어린 딸과 유달리 요구많은 시어머니를 위하여

'아줌마'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기다란 복도에 네 집이 나란나란 붙어있는 모양이었는데

지금의 아파트 문화와는 달리, 여름이 되면 너도나도 대문을 열어두고

아이들은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식사를 얻어먹곤 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막 입주한 젊은 엄마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로의 사정을 기대며 지냈는데

집집마다 '식모아줌마'를 두는 일은 흔해서

어린 내게 식모아줌마들은 또다른 형태의 이웃이기도 했다.

옆집 아줌마만큼이나 나와 친밀하게 연결되었던 그녀들은

엄마들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결의 여자어른이었다.

그녀들이 어린아이 앞에서 무방비하게 흘리는 이야기들은

미용실에서 엄마 몰래 읽던 주간잡지만큼이나

흥미롭고 충격적이었으며,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했기에

어린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늘 귀를 쫑긋하며 듣곤 했었다.


너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대부분이라

내가 겪은 '아줌마'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데에도

꽤나 큰 공이 필요했다.

왜곡되었거나 섞여버린 기억일수도 있는 그녀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내 어린시절에 깊이 남아

인간극장을 보다가, 초등시절 사진을 찾다가, 예고도 없이

훅훅 떠오르곤 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직하며 겪어야 했던,

잘 정제된, 이제는 명백한 직업군으로 자리잡은 '이모님'이라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종종 아줌마들이 그리웠다.


아줌마들은 이모님들과 달리,

서로간의 적당한 거리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때로는 엄마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하였고

다행한 경우에는 엄마들과 피를 나눈 자매마냥 가까워지기도 했다.

어린 나에겐

친밀하나 견고하지 못한 이런 관계가 어려웠다.

분명 가족 같으나, 절대 가족 같지 않았던 그녀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하기도 낯설기도 했던 그녀들은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저

누군가의 딸이었다. 아내이자 엄마였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80년대.

지금의 잣대로는 야만적인 상처들을

그 시절 사람들은 흔히들 주고받았다.

자식들에게는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 믿어졌던 사회였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조차 드물지 않게 폭력과 성추행을 범하던 세상이었으니

마치 어느 집의 부속물처럼 존재하던 그녀들은 오죽했을까.

아마도 어린 나의 눈에는 잡히지 않았던 상처가 많았을 것이다.

아니, 동네 엄마들의 수다 옆에 앉아 있노라면

어린 맘에도 '아줌마들'이 좀 불쌍하다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던걸 보면

그녀들에게는

가난이 서럽고 인생이 야속했을 일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변했으니, 그녀들의 인생도 좀 변했을까.

지금 어딘가에 그녀들이 지내고 있다면

조금은 평안해졌기를 빌어본다.

종종 떠오르고, 때로는 그립기도 했던 나의 아줌마들.

이 글의 카테고리를 고민하다가 '가족'을 누르며

그녀들은 어린 내게, 누가 뭐래도 가족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목차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다가

나의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주었던 아줌마들에게

고맙다 전하고 싶어졌다.


어린 눈에도 삶이 녹록해뵈지 않았던 그녀들.

그녀들은 이제

행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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