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절에 더 가난했던 죄
그 시절엔 왜들 그리
어디에서 주워왔다는둥, 내다 버릴거라는둥의 농담을 아이들에게 해댔는지
평소엔 시큰둥하게 넘어 가다가도
엄마나 아빠에게 크게 혼이 나고 난 밤이면
할머니가 했던 얘기, 외삼촌이 했던 말들이 엮어지면서
나는 어디에서 주워왔을까. 버려지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저리 무섭게 혼을 내는걸 보니 나는 정말 주워온 고아가 틀림없다며
전원일기 금동이나 엄마없는 하늘아래 형제들을 떠올렸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명자언니만 봐도 고아라는 처지는 무서운 노릇이었다.
이왕이면 명자언니가 아니라 알프스소녀 하이디 같은 고아가 되고 싶다고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며 기도를 하기도 했다.
흔히 접할 수 있어 더욱 무서웠던 고아라는 존재.
이 아줌마는 고아를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버렸다'고 내뱉어버리는 엄마였다.
자기 딸도 갖다 버리는데, 말을 안 들으면 나도 내다 버릴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소와 달리 자꾸 말을 거는 내가 귀여워서
'나만했던 딸'을 떠올린 것일수도 있으나
그 당시 나는, 내가 너무 깐족거려서 아줌마가 협박을 한거라 생각했다.
집에 있을수가 없었다.
엄마가 학원을 차릴 때에, 학원이 지척이니 언제든 와도 좋다고 했지만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던 엄마가 떠올라 쉽사리 가게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줌마가 자꾸 안방에 들어가면서 가볼 틈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가야했다. 안그러면 오늘 저녁 엠비씨 뉴스에 나올 것만 같았다. 비상이었다.
정말이지 공포에 질렸던듯 하다.
엉엉 울며 엄마학원으로 뛰어들어 갔을 때, 엄마의 잔뜩 놀란 표정은 기억이 나지만
어떻게 갔는지, 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던듯도 하고,
내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있었던듯도 하다.
다만, 아줌마가 퇴근을 한 후 저녁식탁에 앉았는데
할머니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은 기억이 난다.
"사람 하나 부리지를 못해서 원, 쯧!" 하는 한 마디.
할머니의 '쯧'은 어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소리였다.
저 '쯧'이 등장한 이상,
무언가 해결이 되든 사단이 나든, 어떻게든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쯤은 걸 알 수 있었다.
저녁 내내 엄마를 쫓아다니며 "내일도 아줌마 와? 아줌마 또 와?"
귀찮게 물어댔지만
엄마는 그만 좀 하라는 말만 반복하며
왠지모를 짜증을 내었다.
아빠가 퇴근 후,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또다시 엄마와 안방문을 닫고 들어가자
나는 혹여 무슨 소리라도 들릴까 싶어 방문근처를 어슬렁댔다.
이렇다할 대답을 못 들은채 무심한 시간이 닥쳤다.
마루에 틀어놓은 TV가
9시가 되었다고 착한 어린이는 자러 들어가야 한다며 알람을 울렸다.
대국민적인 교육은 어린아이에겐 법과 같아서
늘 그렇듯 찍 소리도 못한 채, 순순히 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써야 했다.
'내일 아줌마가 오거든 여차하면 도망가야지, 절대 날 내다버리지 못하게 해야지,
그리고 진짜진짜
그냥아줌마라고 다시는 놀리지 말아야지.'
나는 두려움에 질린 다짐을 거듭한채 밤늦도록 뒤척였다.
그냥아줌마는 그날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갑작스레 식모가 없어지니, 어린 나는 갈 곳이 없어져서
하루종일 옆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지영이 아줌마에게 연신 사과를 하는 엄마를 보면
내가 꽤나 민폐를 끼치고 있는듯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 며칠은 내게 최고의 날들이었다.
엄마에게 걱정말라고 다독이던 지영이 아줌마는 정말이지
친절하기 그지 없어서, 저 아줌마가 명자언니를 혼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명자언니는 며칠간 나와 노는 것이 허락되어
간단한 집안일만 마치면 나와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언니 일이 얼른 마쳤으면 해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마루바닥에 걸레를 밀어대며 뛰어다녔다.
우리 집에 가서 놀자며, 처음으로 명자언니를 우리집으로 끌고 갔는데
신기한듯 이리저리 집을 살피던 언니가
"그 아줌마 쫓겨난거래." 알려주었다.
명자언니 말에 의하면
엄마 귀걸이나 화장품이 자꾸 없어졌다고 했다.
안그래도 집안 일을 잘 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더는 미룰 수 없어 급히 그만두게 했다고 했다.
내게는 그런 이유보다 아이를 내다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엄마의 귀걸이 같은건 내게 별 상관이 없었다.
"아니야. 그거보다 아줌마가 딸을 내다버렸대!" 라고 얼른 이야기 꺼냈는데
아차... 후회를 했다.
명자언니가 멈칫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울고만 싶어졌다. 언니에게 상처를 주려던 것은 아니었다.
착한 명자언니는
"암튼 이상한 사람이었대. 금세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라며
놀꺼리를 챙겨서 옆집으로 건너가자고 다정히 말해주었다.
나는 앞으로 명자언니 말을 더 잘 들어야지, 다짐을 했다.
명자언니뿐 아니라, 그 후에도
종종 엄마들 이야기에 그냥아줌마는 등장했다.
엄마들의 결론도 늘 '빨리 알게 되어 다행' 이라고 마무리 되었던걸 보면
그냥아줌마는 잠깐 우리집에 있었던 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처음이었고, 낯설었으며,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옆집 신세를 지고 난 후에
새로운 아줌마가 왔는데, 엄마보다 작고 순하게 생긴 아줌마였다.
목소리도 작고 말수도 적어서, 나는 아주 안심이 되었다.
새로 온 준구아줌마에게 적응을 하고 나자,
그제서야 나는 왠지 그냥아줌마에게 미안한 맘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내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오징어도 구워주고 아폴로도 사주었다.
그런데 내가 난리를 치는 통에
명자언니 표현에 의하면 '쫓겨난 여자' 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냥아줌마가 그만둘 무렵, 옆옆집 수연이네가 이사가고 현정이네가 왔다.
현정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외동이라
나와 잘 지낼것 같았지만 그닥이었다.
놀다가 술래가 되기만 하면 삐쳐서 가버리는지라, 나도 옆집언니들도 현정이가 아주 별로였다.
엄마와 지영이 아줌마도 현정이 아줌마와 잘 지내는듯 하면서도 거리가 있는게 보였다.
그냥아줌마가 그만두고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들 셋이 모여 수다를 떠는데 그냥아줌마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듯 해서
나는 옆에서 책을 읽는척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도 그게 인두겁 쓰고 할 일이야! 어떻게 애가 아프다고 내다버려 버리기를!"
늘 그렇듯 날카롭게 흥분하는 현정이 아줌마를 지영이 아줌마가 얼른 막아섰다.
"여북하면 그랬겠어 여북하면.
집에 돈이라고는 없는데 치료 안 받으면 애가 다 죽게 생겼었다잖아.
애라도 살리려고 병원에 버리는 그 속은 어땠겠어."
지영이 아줌마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아줌마에게 더 미안해졌다.
엄마 표정을 얼른 살피니, 엄마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그냥아줌마를 딱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그냥아줌마가 쫓겨난 배경에
아이를 내다버린 항목이 누락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옳지는 않으나, 어른들은 맘아픈 사연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린 딸이 아줌마랑 같이 있지 않겠다고 발악을 하니, 그냥아줌마의 사연은 그저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다 이해할 수 없었으나 왠지 모르게 이해할 것도 같았다.
"버렸어." 라고 무심히 내뱉었던 그냥아줌마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맥놓은 표정이었던 것도 같았다.
”너만한 딸이 있었지.“ 하던 목소리에 눈물이 맺혀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주인집 물건에 손 대는걸 보면 볼장 다 본거야." 라고
땍땍거리며 말하는 현정이 아줌마를
그냥아줌마 대신, 몰래 흘겨주었다.
아줌마를 천하에 나쁜 여자로 몰아갔던 내 마음을 속죄하듯
한동안 나는 현정이 아줌마를 만나면 뒷통수에 가재미눈을 꽂아주었다.
뒤늦게라도 그냥아줌마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무심한건지, 담담한건지, 당췌 판단이 안 서던 그 날 그냥아줌마의 표정.
그냥아줌마는 굳이 내뱉지 않아도 될 말을 끄집어 내가며
스스로에게 형벌을 주고 있었다.
"딸 아이를 내다버린 여자." 라고 모질게 규정해가며
수시로 자신에게 죄를 묻고 있었다.
아이들이 꽤 크고 나서야, 나는 그 표정의 의미가 겨우 가늠되었다.
내 기억 속 그냥아줌마는 여전히 중년의 여인이기에,
언니뻘 되는 그냥아줌마를 마음으로 여러번 안아주곤 했다.
그냥아줌마의 무시무시한 죄는
시절 탓이고, 가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