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언니'가 아닌것이 아쉽긴 했지만
옆집에는 언니가 둘이 있었다. 아닌가 셋이라 해야하나.
내가 여섯살이 되었을 때 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 가족은 홀로된 할머니와 살림을 합쳤는데,
그러느라 방 하나가 더 있는 옆 동으로 이사한 참이었다.
우리가 이사오고 얼마되지 않아 옆집에도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고,
엄마는 내게 "옆집에 언니가 둘 있더라." 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외동으로 혼자인게 늘 외로웠던 나는
잃어버렸던 자매를 찾은양 신이 났다.
아랫집에 창호가 있고, 옆옆집에 수연이도 있었지만,
창호는 너무 울보였고, 수연이는 너무 얌전했다. 같이 놀기에 좀 시시해진 터였다.
부디 새로운 옆집과 친해져서 언니들이랑 매일 어울릴 수 있기를 기도했다.
기도빨이 먹혔는지 엄마는 옆집 '지영이 아줌마'와 둘도없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조심조심 그 집에 들어갔던 기억이 유달리 또렷한 이유는
들어가보니 언니가 둘이 아니었다. 셋이었다.
나이에 비해 눈치가 제법 빨랐던 나는
“언니가 둘이 아니라 셋인데?"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그 질문은 누군가를 곤란하게 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엄마는 두 언니에게 인사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한 언니에게는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언니의 차림새는 다른 두 언니와 확연히 달라보였다.
세련된 옷차림에 고운 얼굴을 한 두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우리 방에 와서 놀래?" 라고 손을 잡아 끌었으나
다른 한 언니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부엌으로 들어가 과일을 깎아내고는 마루로 나오지 않았다.
지영이 아줌마도 왠지 그 언니에게는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며 시켜먹기만 했다.
아, 아마도 엄마가 말한 두 언니는
지금 나에게 방구경을 시켜주는 이들이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 "왜 언니가 셋이야? 왜 그 언니는 부엌에만 있어?" 묻는 내게 엄마는
"걔는 식모야. 같이 산다더라." 고 대답했다.
식모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에
나는 그저 샘이 났다.
그 집은 자매인데, 또다른 언니도 있다니!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구나, 어린 맘에 심술이 나기도 했다.
옆집이 이사오고 얼마 안 되어, 엄마는 피아노레슨을 시작했다.
음대를 나와 재능을 썩히는걸 엄마는 스스로 늘 아쉬워했었다.
아빠도 너희엄마 재능이 아깝다고 종종 이야기했던 터라
내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행보였다.
대출금이 올라서, 혹은
그 당시 바이올린을 배우던 나의 레슨비를 충당하느라
맞벌이를 해야했다는걸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걸 다 하는데
나는 되려 더 심심해졌다.
엄마가 집에서 레슨을 시작하며 나에겐 금지사항이 많아져서
큰 소리를 내어서는 안되었고
레슨 중에는 엄마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되었으며
되도록이면 방에 들어가 혼자 놀아야 했다.
평소엔 책만 쥐어주면 방 안에서 한참을 혼자 놀던 나였지만
막상 나오지 말라고 하니, 나의 작은방이 더더욱 숨막히도록 좁게 느껴졌다.
자꾸 피아노가 있는 마루로 나와 엄마 주변을 맴돌거나 정신산란하게 만들자 엄마는
공문수학을 시작하게 했고, 바이올린 연습시간을 늘렸으며,
어느날은 여섯살짜리에게 글짓기도 시키는등 보충꺼리도 얹었다.
그러니 나의 하루하루는 더더욱 고역이었다.
엄마 레슨이 끝나는 5시 만화영화 시간만 손을 꼽아가며 기다렸다.
처음부터 방에서 나오지 말것을, 차라리 심심한게 나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옆집으로 건너가는 날이 많아졌다.
떼를 써보다가 안 먹히는 날에는 몰래 내달리기도 했다.
지영이 언니는 친절했으나, 가영이 언니는 좀 쌀쌀맞아서
나는 빼꼼히 옆집 문을 들여다보다가
지영이 언니가 있으면 냉큼 들어갔다.
가영이 언니만 있는 날에는
기운이 빠져 공문수학을 하러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신, 언니들이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는 오전 시간엔
눈치볼 것 없이 후다닥 옆집으로 뛰어들어가 명자 언니를 쫓아다녔는데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참 희한한 모양새였다.
같이 놀 친구도 없는데 그 집에 들어가 식모언니 옆을 쫓아다니다니.
지영이 아줌마도 옆집 꼬마에게 박하게 할 수는 없었는지
내가 명자언니 일을 방해하더라도
다른 때처럼 명자언니를 혼내거나 나를 내쫓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명자언니는 나를 아주 반가워했다.
명자언니가 너무 바빠보여 집에 가려고 하면
"가지 말고 나랑 있어. 내가 이거 얼른 끝내고 각설탕 꺼내 줄게." 며
나를 꼬시기도 했다.
엄마는 언니들 없을 땐 옆집에 가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명자언니가 빨래를 개키는 옆에 쪼그리고 있는 내 뒷덜미를 잡고
집으로 끌고 오기도 했던걸 보면
꽤나 지영이 아줌마에게 미안했던듯 하다.
딸래미가 자꾸 가서 집안일 하는 식모를 방해하니 그럴만도 했으나,
나는 어떻게든 틈을 보아 옆집으로 홀랑 뛰어들곤 했다.
일 년 정도 지났을까.
집에서 레슨을 하던 엄마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학원을 차리기로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신나는 사건이었다.
뱃 속에는 동생이 생겨 생활비가 더 필요했고
나의 바이올린 레슨비는 천정부지로 올라서
본격적인 맞벌이를 강행해야 했던 엄마의 사정은
어린 내가 알 리 없었다.
더 이상 방에 틀어박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신났고
공문수학과 바이올린 연습을 안해도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은 하나 더 이어졌는데
우리집에
아줌마가 온다고 했다.
명자언니같은 식모가 올거라 했다.
"왜 언니가 아니고 아줌마야?"
나는 자매를 원했기에 아줌마는 아쉬웠다. 아줌마는 친구도 자매도 될 수 없지 않은가.
내 속을 알 리 없는 엄마는
지영이언니네 식모는 명자언니지만
우리집 식모는 아줌마라고 대답했다.
아줌마라서 집안일도 더 잘 할거고, 무엇보다 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위로인가.
나는 나와 함께 사는 언니를 원했던 건데
엄마의 설명을 들을수록 좋을게 하나도 없었다.
언니도 아니고, 같이 살지도 않는다니
옆집 언니들과 다른 내 처지가 딱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옆집 언니들보다 훨씬 더 친절한 동생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같이 살지도 않는 아줌마라니,
이보다 불공평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의 울 지경이 된 나의 표정을 살피던 엄마는
이래저래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오면, 엄마가 없는동안 나도 챙겨주고 예뻐해줄거라 했다.
"나랑 놀아도 줘?" 나의 질문에 엄마는
"시간이 되면?" 이라고 했다.
그러면 되었다.
나는 그 순간, 아줌마와 놀꺼리를 열개도 넘게 떠올렸다.
명자언니는 늘 우리와 함께 놀고 싶어 했는데
그러다가 지영이 아줌마한테 걸리면 등짝을 맞고 부엌으로 쫓겨나곤 했었다.
그와 달리 우리 엄마는 허락을 해 주었으니
내가 아줌마의 일을 도와서라도 할 일을 얼른 끝내고
나와 놀아달라고 하면 되겠다 싶었다.
놀다가 쫓겨가는 명자언니보다
나랑 맘편히 놀 수 있는 아줌마가 나을지도 몰라!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듯 아줌마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아줌마가 왔다.
무섭도록 짧은 숏컷 머리에 덩치가 큰
아줌마인지 아저씨인지 모를 그녀가
대문을 통해 성큼성큼 들어왔다. 나는 개구리왕눈이에 나오는 투투를 떠올렸다.
겁에 질려 인사하는 내게 활짝 웃으며
"너 이름이 뭐니?" 하고 물어보는데
목소리가 들어본데 없이 우렁우렁 컸다.
하얀 이보다 더 크게 보이는 시뻘건 잇몸이 너무 무서워
나는 대답도 못하고 엄마 뒤에 숨은채
내게 닥친 이 당황스런 시련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줌마보다 한참 어리고 약해뵈는 울엄마는
평소답잖게 허둥대며 인사를 하고 아줌마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마도 내가 저 아줌마에게 등짝을 맞는 일이 생기면
엄마조차 나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 손보다 두 배는 두꺼워보이는 저 손으로
엄마까지 한 대 맞을것만 같았다.
나의 첫 아줌마는
그렇게 우리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