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지금, 여기서

by 친절한 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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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고 자꾸 어디론가 행복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가수 자이언티는 자신의 노래 ‘꺼내먹어요’ 에서 “집에 가고 싶을거야~ 집에 있는데도”라고 노래했다. 앞의 ‘집’이 행복이 있을 법한 상상의 시공간이라면, 뒤의 ‘집’은 현재 우리가 살아 숨쉬는 때와 장소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지금 앞에 있을까, 뒤에 있을까.


사람들은 왜 자꾸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할까. 과연 여기가 아니고, 또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붙어 있는 땅에서 조금만 하늘로 가면, 캄캄한 허무가 펼쳐진다. 평생 우주 여행이 꿈이었던 미국의 억만 장자 제프 베이조스는, 막상 우주에 도착해서는 광막한 죽음의 공간을 봤을 뿐이라고 했다.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어떨까? 코로나로 몇 명이 죽었는지 집계도 안 되는, 가난한 인민의 고혈을 빨아 수십억 미사일을 쏴대는 나라가 있다. 100년쯤 과거로 돌아가면 어떨까? 이웃나라가 일으킨 전쟁으로 4대문 밖에 시체가 쌓여있고, 비만 오면 길거리에 분뇨가 넘치는 망국의 나라가 있다. 그렇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간다면 어떨까? 나의 미래가 나의 현재보다 나은 상황일 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래로 10년을 이동한다면 나는 죽음에 10년만큼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여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고 대단히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에서 질투와 비교의 마음이 행복을 가로 막는다고 했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다. 제국을 다스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따스한 햇볕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가난한 디오게네스가 부러울 수도 있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나는 의대생 시절에는 서울대학교 의대생들이 부러웠고, 원하는 과에 낙방하여 군대에 끌려 갔을 때는 전공의 수련을 받는 친구들을 부러웠고, 수련 중에는 이미 수련 마친 친구들을 부러웠다. 수련을 마치고 나니 애초에 미국에서 수련 받은 친구들이 부럽다. 정말 끝이 없다.


반면, 러셀은 주위에 사물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했다. 환자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면, 금전적인 보상마저 주어지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진료실에 오는 똑같은 환자여도, 환자마다 호소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고 눈의 생김새가 미묘하게 다르다. 경미한 증상일지언정 환자들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짧은 시간이나마 치료를 위해 환자 함께 걷는 과정이 나와 환자 모두에게 만족감을 준다. 환자가 호소하는 바를 대충 듣고 나서 “지겨운 건조증, 지긋지긋한 알러지” 하는 마음으로는 나도 환자도 행복할 수 없다.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 유토피아 (Utopia)는 “어디에도 위치하지 (Topos) 않기 (Un) 때문에”, 반대로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 행복은 내가 의지한 만큼 느낄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인간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고, 오색 창연한 구중궁궐에서도 한 없이 우울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바로 눈을 들어 파란 봄 하늘을 만끽해야 하고, 여기서 허리를 굽혀 아이들과 눈 맞추고 깔깔 웃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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