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뜨겁게

버틀런드 러셀의 자서전을 읽고

by 친절한 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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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사두고 읽지 못했던 버틀런드 러셀의 자서전 “인생은 뜨겁게”를 읽었다. 95세가 넘어 쓴 자서전임에도 인생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다 기억한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고, 나이가 들어도 지치지 않는 피터팬 같은 열정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느꼈던 바를 몇 가지 꼭지로 정리해 본다.



1. 엄청나게 능력이 있고 배경이 좋은 사람도, 현실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기서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러셀은 친 할아버지가 영국 총리였고, 당대 최고의 명사들을 친구로 둘만큼 금수저였다. 하지만, 그런 귀족도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위자료를 지급하기 위해, 그러니깐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팔고 강연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새벽 쇳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때,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것은 거의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소위 ‘먹고 사니즘’에서 해방되지 못한 우리의 삶을 비관해서는 안 된다. 일은 단순히 숨을 붙여놓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을 뿐 더러, 역사를 통틀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사람은 매우 소수에 부과하다. ‘일 안해도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은 천한 자본주의의 못된 속삭임이다.




2. 지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도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20세기 철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 원리’를 써낸 러셀은 자신의 스승이자 철학적 동료인 화이트헤드의 부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발 밑이 무너지면서,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서는 나”를 느꼈다고 했다. 젊음을 바쳐 사물의 진리를 궁구했던 러셀은 그 순간부터 인간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러셀 본인이 “인간에 대한 연민이 나를 지상으로 다시 끌어내렸다”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정치, 경제, 전쟁, 가난 등 현실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버틀런드 러셀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현실을 개선하려는 참여적인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은 한 명의 군인도 못 살리고, 하루도 전쟁을 줄이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수 많은 정치범들을 구했고, 핵 전쟁을 억제하였으며, 대중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실로 그의 삶은,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최악의 비 이성의 시대에, 인간에게 “이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였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서 인간의 생각을 모두 대신해 준다고 해도, 내 옆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연민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3. 40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 진다. 하던 일에만 매진하다 보면 나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그리고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면 어려운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카톡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루어진 공간에서 일상적인 대화만을 반복하다 보니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생각이 편협해지고 한 쪽 방향으로만 생각이 공명한다. 반면, 버틀런드 러셀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와 나는 무엇이 다를까?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따뜻한 마음,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 그리고 다른 의견을 설복해 이기려 들지 않는 여유, 비슷한 부분을 찾아내어 공명하려는 노력 이것이 그의 자서전에 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원동력일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제일 잘났고, 본인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기 포장의 시대다.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둔 지금, 본인 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수 많은 사람들 중 버틀런드 러셀만큼의 지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도 친구로 만들 수 있었던 러셀은 과연 읽고 아는 바가 부족해서 그랬을까? 뽐내기 위한 독서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열기 위한 독서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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