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전직 개그맨이 경제 방송에 나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첫 느낌은, “니가? 개그맨이?” 였다. 하지만 곧 내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변한 모습을 못 받아들이는 갇혀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언젠가 가운을 벗고 예술을 논할 수도, 철학을 논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을 지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행복의 변함 없는 원칙 중 하나는,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 그 판단의 틀에서 내 자신이 자유롭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특정인의 성공담이 후광이 되어 그 사람의 말이 다 맞는 것처럼 표현되는 모양새는 조금 안타까웠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책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경제학 박사 친구도 시장의 방향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한다. 인생을 걸고 경제 공부를 한 사람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혹시 그 분이 자신의 성공에 취하고 다른 사람의 박수 소리에 귀가 닫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필즈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수학자도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자신의 축사 또한 “기질과, 우연과 노력이 기막히게 정렬하여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교묘한 자기자랑”이 될까 염려한다고 했다. 혹여 내가 아주 작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면, 그건 위험을 감수하는 (부모님께서 주신) 나의 기질과 사업을 도와줬던 수 많은 우연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기막히게 정렬한 것이다. 내가 무슨 경영을 잘 알고, 시장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직원들 관리를 잘해서 뭔가를 해낸 게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고맙게도 잘 정렬되어 있는 상태일 뿐인 것이다. 나는 일이 좀 잘 되려고 할 때, 개원 직전 온갖 걱정에 한 숨도 못 자던 밤들을 꺼내어 기억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내가 벽에 부딪혔을 때 나타나서 나를 도와준 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떠오르게 된다.
물론 성공에 취해 자신만만하게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 같은 모습도 인생의 한 단면일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의 결과로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옳은 것으로 정당화한다면, 언젠가 그 사람이 실패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위는 반대로 부정된다. 결과에 치우치지 않고 생각할 때 또 다른 좋은 점은, 중간중간 사업의 결과가 내 맘에 썩 들지 않아도 너무 좌절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안 좋은 결과가 모두 나의 탓은 아닐 뿐 더러, 언젠가 또 좋은 기회에 많은 도움들이 있다면, 언제고 다시 좋은 결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에 상관 없이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름을 떨치는 화가가 되고 남부러운 가정을 꾸리는 34세 때의 램브란트 자화상도 멋지지만, 명성과 가족을 모두 잃어버리고 초라해진 자신을 담담하게 그려낸 63세 때의 자화상도 그 자체로 훌륭하고 멋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한 일의 결과에 상관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