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산 라디오

by 친절한 손원장

아내가 라디오를 샀다. 손으로 다이얼을 돌려서 전파를 맞추는 옛날 방식의 라디오 였다. 스마트폰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은 다이얼을 돌리며 신기해 한다. 아내는 비가 오는 날 들리는 약간의 지직 거림이 예전 감성을 자극한다고 좋아한다.


옛날 생각이 났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던 90년대 초, 노래를 들으려고 밤새 라디오 앞에 앉아있던 그 때. 당시는 지금처럼 스마트 폰을 열어 바로바로 그 날의 선곡표를 확인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주구 장창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디오를 켤 때마다 오늘은 무슨 노래가 나올까? 하는 설렘은 늘 가득했다.


원하는 노래는 정말 가끔 나왔기 때문에 어쩌다가 원하는 노래가 나오면 그 기회가 참 소중했다. 원하던 노래가 나오면 녹음과 플레이 버튼을 동시에 눌러 미리 준비해 둔 공 테이프에 녹음을 했었는데, 1절만 나오고 광고가 나오거나, 눈치 없는 DJ 가 간주 때 목소리를 섞으면 그게 그렇게 화가 났었다. 어디 그 뿐인가, 비가 오거나 어쩌다 안테나를 건드려 위치가 틀어지면 여지없이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났고,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그 기회는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어쩌다 원하는 노래가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녹음이 된 날이면, 그 테이프는 그야말로 나의 보물이 되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지금 우리는 원하는 노래를 언제든 찾아 들을 수 있고, 지직거림을 피하려고 라디오 안테나를 이리저리 휘젓는 일도 없다. 원하는 노래가 언제 나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는, 이제는 듣고 싶은 노래를 바로 찾을 수 있어도 끝까지 듣는 여유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고 깨끗한 음질의 노래를 들어보는게 소원이었던 우리는 그 지직거림에 감성을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무엇일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끝 없는 갈망. 결핍에 대한 기억을 희미하게 덧칠하는 감정... 비오는 오늘, 나는 아내가 사온 라디오 다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볼 셈이다. 혹시 오늘은 무슨 노래가 나올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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