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예찬

by 친절한 손원장

1. 산은 항상 거기 있다. 산은 등반을 강제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도, 가지 않아도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생각을 하든 생각을 하지 않든 우리는 살아 있고, 우리에게 허락된 생의 시간은 간다.


2. 산에 가면 모든걸 잊는다. 두 팔과 다리로 산을 기어 오르다 보면 습관적으로 쳐다보던 휴대폰을 볼 수가 없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주기적으로 등산을 하는 것은, 주기적으로 다른 시공간에 몸을 노출하는 것이다. 생업의 공간에서 잠시 분리될 수 있는 것은, 내 삶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특권이다.


3. 산에는 정상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는다고 산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목표를 정했으면 달성하면 그만이고, 누구도 그 목표를 나에게 강제하지 않는다. 내가 정상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산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4. 가깝고 낮아 보이는 봉우리가, 실제로 가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험난한 길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이뤄놓은 성취가,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을 해보면, 그 사람이 지냈던 시간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을 직접 타보지 않고, 그 산이 높다 낮다 말할 수 없다.


5. 등산보다 하산 때 많이 다친다. 인생의 뒤안길에서는 몸도 아프고 마음도 다치게 된다. 하산도 등반의 과정이다. 인생이 언제나 오르막만 있을 수 없다.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든 일이 반복될 때에도, 실망하지 않고 등반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오르막이 온다.


6. 정상 정복의 짜릿함은 힘들여 등산을 완료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정상은, 두 다리로 올라간 정상과 같을 수 없다. 따라서 같은 성취를 좀 더 쉽게 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내가 느끼는 짜릿함을 결코 느낄 수 없다. 많은 것을 받고 태어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성취감은 주관적인 것이며, 절대적인 비교를 할 수 없다. 내가 오늘 오른 산의 정상은, 내가 오늘 있었던 곳 중에 가장 높은 곳이다. 나는 남들보다 높은 산이 아닌, 어제 내가 올랐던 산 보다 더 높은 산을 오르면 그만이다.


7.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고, 첫 발을 디뎌야 한다. 멋져 보이는 정상을 멀리서 바라만 보면 결코 그 정상을 정복할 수가 없다. 히말라야든 안나푸르나든 동네 뒷 산이든 첫 발을 떼어야 갈 수 있다. 장사를 하다 보면 빨리 매출이 늘어났으면 좋겠고, 사업체가 빨리 커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우선 백만원을 벌어야 이백만원을 벌 수 있고, 오백만원을 벌어야 천만원을 벌 수 있다. 혼자 개원을 했으면, 우선은 2인 안과를 만들어야, 3인 안과, 4인 안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각 단계에는 그 단계에 걸맞는 충분한 시간이 소요 된다. 무리한 확장이나 투자는 반드시 위기로 연결된다.


8. 더 높은 봉우리를 정복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선택한 산을 잘 오르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의 목표가 나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당장 내가 오르고 있는 산을 내려가서 그 사람이 타는 산에 오르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내가 오르고 있는 산에 최선을 다하고 기쁨을 느끼면 그만이지, 다른 봉우리를 두리번거리며 올라가면 내가 오르는 산도 소중하지 않게 된다.


9. 정상에 가지 않았다고 산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상 정복을 한 번 했다고 해서 그 산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정점에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두게 되면, 산을 둘러싼 아름다운 나무, 계곡물, 바위들을 모두 지나치게 된다. 행복의 비밀은 주위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정상 정복이 등산의 전부가 아니듯이, 성공과 승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10. 등반시 안전사고는 거의 대부분 ‘부주의’에서 온다. 수술을 할 때 모든 사고도 ‘부주의’에서 온다. 어려운 수술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획을 하고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한다. 또한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다. 그런데, 쉬워 보이는 수술을 아무 준비 들어갔다가 변수가 생기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큰 사고로 이어진다. 쉬워 보이는 등산도 단 한 가지 변수(해가 지거나, 길을 잘못 들거나, 다리를 다치거나 등) 만 생겨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간단해 보이는 산행도 많은 준비를 하고 가야 하는 이유이다.


11. 다리가 아프지 않고, 심장이 터질 것 같지 않으면, 정상에 서는 행복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난이 없는 행복은 없다. 고난이 없다면, 행복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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