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해볼 만한 직업이 3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마에스트로), 다른 하나는 야구팀의 감독 (manager), 마지막 하나는 전투함의 함장 (해군 제독)이다. 스스로를 반쯤 민간인으로 생각해 군기가 빠져있고 오만 불손했던 나의 함상 생활 중에서도, 나는 당시 함장님의 권위에 만은 정말 절대 복종했었다. 함장님에게는 계급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함장님은 정말 멋있었다. 좁은 선내에 함장님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가장 먼저 함장님을 발견한 함인원이 “총원 차렷”이라 크게 주위에 알리고, 함 인원들은 함장님이 지나가실 수 있게 옆으로 도열 했다. 함장님의 한 마디가 곧 법이었다. 함장님이 곧 배고, 배가 곧 함장님이었다. 전투함에는 ‘함장 깃발’이 있는데, 그 깃발은 육지에 접안한 함 내에 함장님께서 계신지 아닌지를 함 안팎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함장 깃발이 올라가 있으면 그 배는 ‘살아있는 배’ 였고, 함장 깃발이 내려가 있으면 그 배는 함장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죽은 배’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함장님은 외로워 보였다. 고위급 장교들과 자주 회의를 하지만, 의사결정은 항상 함장님의 몫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함장님의 것이었다. 한 번은 북한에서 (탈북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뗏목이 내려와 그 잔해를 수습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이 있었는데, 작전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인간적으로 괴로워하시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함장님께서 본인의 스트레스를 밖으로 표출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일 출근하고 환자 보는 것이 힘들어 병원을 비우는 날이 가끔 있다. 그런데 내가 없는 병원은 내가 있을 때와 판이하게 다르다. 배로 치면 ‘죽은 배’다. 할 수 있는 처치의 범위도 다르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도 다르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도 구성원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부터가 이미 다르다. 함장 깃발이 내려와 있는 죽어있는 배로는 항해를 할 수 없듯이, 내가 자리를 비운 병원은 원래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어렵다.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지만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말했듯, 사업주의 마음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과 외로움은 사업을 접어야 끝난다. 환자 수가 줄거나, 수술이 잘 안 되거나 환자로부터 심한 컴플레인을 받아도, 나는 괴로운 마음을 겉으로 내색할 수 없다. 내 잘 못을 다른 구성원에게 projection 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힘든 상황에서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직원들을 쳐다보는 고통은 덤이다.
일년 내내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면, 때로는 지겹기도 하고 너무 지치기도 해서 누군가 내 자리를 대신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함교 (Bridge)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준 전투함이 안전하게 항해를 할리 만무하다. 내 사업체가 안전한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내가 함교에 똑바로 서서 방향타를 잡고 있어야 한다. 그게 싫으면 나는 병원 원장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겨울, 갑판에서 두들겨 맞던 서해 칼 바람이 생각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