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빛을 다루는 안과 의사다. 진료실에 앉아, 매일 수십 번씩 빛을 굴절시키고, 퍼뜨리고, 모은다. 그렇게 빛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어 환자 눈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아픈 이유를 찾는다. 때론 그 빛을 더 정밀하게 조율해 만든 여러 종류의 레이저로, 눈 속 깊은 병을 다스린다.
그렇게 매일 빛을 다루다 보니, 문득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빛을 이해하고 다루어온 역사 아니었을까.
뉴턴이 빛을 입자로 이해하면서 굴절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색수차를 극복하면서 우리는 망원경과 현미경이라는 강력한 두 눈을 갖게 되었다. 망원경은 지구 중심의 세계관을 부숴버렸고, 현미경은 생명의 비밀을 풀어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었다.
빛의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믿었던 시간과 공간이 실은 이리저리 굽히고 휘어지는 곳임을 알게 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도약은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로 이어졌고, 그 팽창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시작이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직관을 배신했다. 이해되지 않지만 실험으로 확인된 이중성은 우리가 보는 현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측이라는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확률적인 존재’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보지 않으면 밤 하늘의 저 달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을까.
인간은 결국 빛을 다듬어 레이저를 만들었고, 예수가 태어난 뒤 2000년이 다 되서야 손에 쥐게 된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레이저로 우리는 블랙홀의 충돌로 생긴 중력파를 들었고, 분자의 진동과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했으며, 광유전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뇌 속 기억의 회로를 마음대로 켜고 끄고 있다.
그런 빛을, 나는 오늘도 이리저리 만진다. 그리고 그 안엔 생각보다 많은 세계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