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민 작가님의 신간 “비트코인 없는 미래는 없다”를 읽었다. 이 책은, 2025년 1학기 세계 최초로 개설된 “화폐 철학과” 의 석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공 지능과 협업하며 논의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기존 오태민 작가님의 책들을 모두 구입해서 여러 번 읽었기에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아직도 “비트코인은 사기 아닌가?” 라고 질문할 법한 사람들에게 차분한 설득의 자료가 될 만한 책이었다.
화폐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지폐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핸드폰 어플 속의 숫자를 떠올릴 수 있다. 누군가는 시장에서 음식을 사먹고 내는 돈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화폐가 “신뢰”라고 말한다.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으면” 그게 바로 화폐가 되는 것이다. 달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이 세상 모두가 달러를 가치 있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러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치를 보증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이 시대 경제적,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대국이다. 그런 미국도, 석유를 달러로만 쓰게 만들고, 항행의 자유를 끊임 없이 보장하고, 위안화나 루블화를 억제하고, SWIFT 망이라는 강력하고 배타적인 국제 송금망을 유지하여 그 가치를 보증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 금융의 근원적인 담보는 미국 국채가 되었다. 미국이 발행한 채권을 들고 있으면 지정한 날짜에 미국이 달러를 준다는 약속은 다른 어떤 약속보다도 사람들이 굳게 믿는 약속이 되었다.
신뢰가 없다면 화폐 뿐 아니라 “자산” 이라는 것도 성립할 수가 없다. 우리가 집을 사고 ‘등기’를 치는 것도 그 기록을 신뢰할 수 있게 보증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10x동 70x호가 A 씨의 집이다”라는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면 대번에 아수라장이 된다. B가 70x호를 자기 아파트라고 주장을 할 때 누구나 인정하는 기록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로 무법천지로 변하게 된다.
만약 어떤 기록이, 보증하는 제 3의 주체가 없이도 모두가 그 기록을 신뢰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게 가능할까? 그걸 현실에서 구현한 게 비트코인이다. (내가 이해한) 비트코인은 전 세계 컴퓨터에 나누어 저장된 “기록”이다. 그 기록은 수 만 대의 컴퓨터에 나누어져 기록되어 있고, 매 순간 수 많은 컴퓨터 (노드라고 한다) 들이 그 기록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 충돌하고, 그 중에 가장 긴 연산을 한 노드에게 새로운 기록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한 대의 컴퓨터에서 한 비트 코인의 전체 기록을 복원할 수 있다. 누군가 그 기록을 조작하려면 네트워크 전체의 계산력(해시파워) 상당 부분을 통제하여, 이미 기록된 블록 이후의 모든 작업(증명)을 다시 수행하고 그 누적 작업량이 기존 체인보다 커지게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비용은 막대하기 때문에, 임의 조작은 사실상 매우 어렵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발행 총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되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경기를 부양했지만, 비트코인에는 그런 중앙 발행 주체가 없다. 새로운 비트코인은 오직 채굴(Proof-of-Work)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며, 이 과정에는 막대한 전력과 연산 자원이 필요하다. 총량이 코드로 정해져 있어 누구도 임의로 “비트코인을 찍어내는 일”은 할 수 없다. 또한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채굴자가 경쟁에 뛰어들어 난이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채굴 비용도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비트코인은 스스로 희소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자기조절적 화폐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결국 화폐의 본질이 신뢰라면, 신뢰 자체가 곧 화폐가 될 수도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신뢰를 보증하는 주체’를 만들어 왔다. 왕의 인장, 교회의 증서, 은행의 어음, 국가의 중앙은행이 그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그 보증인을 제거한 최초의 화폐다. 그 신뢰는 제3자의 약속이 아니라, 수학과 합의로 유지되는 신뢰다. 이 시스템은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누구도 임의로 바꿀 수 없으며, 모든 참여자가 동시에 감시하는 투명한 회계 장부 위에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는 지금 비트코인은 그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매우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