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중 나선 (Double Helix)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을 읽고

by 친절한 손원장

제임스 왓슨의 이중 나선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는 철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유전체가 삼중이나 사중이 아닌 이중 나선 (double helix) 임은 매우 직관적이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정보를 동등하게 받아와야 한다면, 유전체의 단위가 홀수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4개, 6개, 8개 이상의 짝수는 낭비이며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결국 유전체의 구조는 2개(한 쌍) 인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본래의 목적에도 맞다. 그 유명한 photo 51 (로지 플랭클린이라는 여성 과학자가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찍은 DNA의 X 선 사진. 당시 여자들은 왓슨의 책에도 나온 것처럼 심심풀이의 대상이었지 진정한 동료 과학자로 인정 받지 못했다)를 보고 이중 나선을 떠올린 순간은 생명공학이 탄생하는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다.



DNA는 인산/당/염기의 복합체가 반복되는 구조인데, 인산/당은 뼈대이고 염기는 정보이다. 후대에 내리는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인산과 당으로 된 뼈대는 밖에 위치하고, 염기는 안에 위치한다. 그냥 평면 사다리처럼 배치하면 염기에 담긴 유전 정보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으므로, 인산/당 뼈대는 염기를 안에 두고 휘감아 돌아 올라간다. 결국 평소에는 인산/당이 유전 정보를 그들의 회전 계단 발판에 안전하게 가두고, 정보의 복제가 필요한 순간에만 뼈대를 열어 정보를 내어준다. DNA가 정보를 복사해서 전달하는 과정도 아름답다. 평소에는 단단히 잠겨있던 회전 계단을 필요한 만큼만 열면, 핵 안에 떠 있던 벽돌 (인산/당/염기의 복합체, Nucleotide)들이 자연스럽게 붙어 새로운 계단이 생긴다.



DNA의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세포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질(염기)의 ‘배열’안에 정보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정보를 실리콘(메모리 반도체) 안에 0과 1로 기록한다. 수 억년 동안 정보를 전달해 온 생명은 4가지 염기 (RNA의 우라실 까지 5가지)의 배열로 정보를 전달한다. 키가 크거나 작고, 눈이 크거나 작고, 피부 색이 어떻고…. 생명체가 갖는 무한대의 특징들(phenotypes)을 각각의 단백질에 기록하려면 끝도 없이 새로운 단백질이 필요할 거다. 그런데, 우리가 0과 1의 배열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수 억 년 전에 생명은 이미 패턴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장치로 정보를 기록하고, 가지고 있는 구조에서 최대한 정보를 보호하면서, 필요한 순간에만 정보를 내어주는 물건이 있다면 그건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할까?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이중 나선 말고는 다른 구조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이중 나선을 보면 사랑하는 남녀가 손을 잡고 빙글 돌며 왈츠를 추는 장면이 떠오른다. 23살의 젊은이가 아무도 모르는 생명의 비밀을 인류 최초로, 아니 지구상 생명체 중에 최초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얼마나 황홀 했을까. 이중나선 발표를 앞두고도 1주일 휴가를 갈 수 있던 자유로운 영혼의 23살 왓슨과, 의대 재시를 안 볼려고 도서관에서 벌벌 떨기만 했던 23살의 내가 비교되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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