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못 한다고 현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운명 전쟁 49를 보고

by 친절한 손원장

요새 “운명 전쟁49”를 재밌게 보고 있다. 무속인, 타로, 명리, 사주 등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이 나와 벌이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나름 과학적 사고를 한다고 자부하는 나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짜고치는 고스톱이냐? 라고 삐뚤어지게 보았다. 그런데 (재미있기도 정말 재미있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무속인들이 낯선 사람들을 볼 때 떠오른다고 하는 비언어적 심상들에는 모종의 일관성이 있다. 게다가 배경 정보 없이 임의의 판단을 하는데도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높은 확률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돈이 많은 사람 앞에 섰을 때 어떤 무속인은 엽전 소리가 들린다고 하고 어떤 무속인은 쌀을 수북히 실은 가마가 보인다고 한다.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과연 뭘 느끼는 걸까?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를 읽어보면, 인간의 사고는 자동적이고 노력 없이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빠른 생각 (system1) 과 고도의 집중과 노력이 필요한 느린 생각 (system2) 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빠른 생각이 경험, 직관, 연상이라면 느린 생각은 합리, 규칙, 성찰이다. 애초에 번득이는 어떤 생각들은 누구나 한다. 대부분의 생각들은 날아가지만, 누군가는 그걸 수첩에 적고 숙고한다. 과학자들이 그렇다. 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꿈을 꾸었던 케쿨레는 벤젠 고리의 구조를 밝혀냈고, 가로등 불빛에서 사람들이 보였다가 안 보이는 것을 본 닐스보어는 양자의 도약을 생각해냈다.


혹시 무속인들은 빠른 생각 (system 1) 이 고도로 발달한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이 빠른 생각을 붙잡아 느린 생각으로 엄격하게 검증하여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무속인들은 연상되는 생각들을 상징적으로 재해석한다. 다만 그 연상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비언어적인 공감각으로 한꺼번에 다가오는 것일지 모르겠다. 여기에 논리와 성찰이 끼어들 순 없다. 누군가는 비논리적이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내가 모시는 할머니 귀신이 그렇다는데 거기에 어떻게 논리의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끝까지 거부했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며 이후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다. 이유를 모른다고 현상을 부정할 순 없다.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귀신이 보이고, 모시는 할머니가 자신에게만 들리게 소리를 지르다는게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내가 ‘아직’ 모르는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 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있던 양자가 갑자기 저 쪽으로 도약하는 방법을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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