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반 슈뢰딩거의 책을 읽고 (26.03.09)

by 친절한 손원장

에르반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이 나온 뒤 10년 뒤에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낸 왓슨과 크릭이 이 책을 읽고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막혔던 숙제 같은 책이었는데, GPT의 도움을 받아 책을 산지 3년 만에 겨우 읽어낼 수 있었다.


슈뢰딩거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혹은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이며 전자의 움직임을 방정식으로 풀어내어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슈뢰딩거는 “이 세상의 구조가 어떻게 안정하게 유지되는가?”를 평생 고민한 사람이다. 전자의 운동을 방정식으로 표현해 낸 그의 업적은, 마이너스 전하를 띤 전자가 어떻게 플러스 전하를 띤 원자핵에 끌려가지 않고 그 구조를 유지하는지를 이해하는 길을 연 것 봐도 무방하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생명으로 옮겨,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열역학 제 2법칙에도, 어떻게 생명은 본인의 구조를 유지하고 심지어는 정보를 ‘유전’이라는 형태로 후대에 전달하는지 물리학적으로 사유했다. 이 책은 그러한 바탕에서 탄생했다.


DNA의 구조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던 시절에, 물리학자인 슈뢰딩거는 유전 정보를 담는 것이 ‘비 주기적 결정체 (aperiodic crystals)’라고 상상했다. 결정(crystal) 구조를 가진 이유는 유전 정보가 수 백 년 이상 지속되도록 안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백년 이상 지속된 합수부르크 왕가의 입술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결정 구조는 결국 원자의 단순한 반복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유전 정보를 담을 수 없다. 따라서, 원자 배열이 반복되지 않는 (비 주기적) 성질을 가진 결정의 형태가 유전자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DNA의 구조는 인산/당/염기의 반복으로 안정성을 지니지만, 정보는 반복되지 않는 ‘비주기적인’ 염기 안에 들어있다. 슈뢰딩거의 추론이 거의 맞았다는 이야기 이다.


돌연변이의 개념을 통해 유전자의 크기를 상상해 낸 것은 더 기가 막히다. 돌연변이는 불연속적으로 ‘갑자기’ 발생하고 그 형질을 후대로 전한다. 따라서 어느정도 심한 에너지 변화가 있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너무 적은 에너지로도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면 생명체는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정도 “문턱”을 넘을 정도의 에너지가 유전자에 가해져야 돌연변이가 생기는데, 에너지의 문턱이 낮을수록 분자의 수명은 짧고 높을수록 분자의 수명은 길다. 유전정보를 가진 분자가 오랜 시간 동안 안정하기 위해서, 슈뢰딩거는 그 분자가 갖는 이 에너지 문턱의 값을 약 약 1.8~2eV (전자볼트) 로 예시했다. 그런데 X선에 의한 자유전자가 30eV 정도의 에너지를 내는데, 이 에너지가 전부 유전자에 가면 돌연변이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망가진다. 하지만 일정한 거리가 떨어져 에너지가 줄어들면 구조가 망가지지 않으면서도 유전자 변이를 일으킬 만큼의 에너지가 남게 된다. 슈뢰딩거는 그 거리가 약 10 옹구스트롱(Å, 10-10m) 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유전 정보를 담당하는 부분의 길이는 10 Å 전후 (원자 여러 개를 가로지르는 길이)가 되어야 한다고 추론했다. 나중에 밝혀진 DNA 염기쌍 한 개의 길이는 약 3.4Å, DNA지름은 20 Å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DNA 가 뭔지 밝혀 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생각만으로 그 성질과 크기를 추론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캄캄한 곳에서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인간이 손의 감각과 깊은 생각만으로 머리 속에 정밀한 지도를 그려 낸 듯 했다. 인간 사유의 위대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과분하다는 생물학자들의 비판도 있다. 물리학자인 저자가 여러가지 개념을 언급하기 이전에 이미 생물학에는 라이너스 폴링 등 훌륭한 수 많은 과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쌓아 두었으니, 슈뢰딩거가 유명한 책 한 권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분자 생물학의 창시자인 것 마냥 신격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양자역학의 세계를 열어젖히며 자신감에 차 있던 물리학계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원자핵의 구조를 처음 밝혀낸 러더퍼드는 “물리학 이외의 학문은 우표 수집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전해진다. 그리고 정작 노벨상은 화학상으로 탔다) 평생에 걸쳐 생물학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생물학을 엿보는 천재 물리학자의 외도에 볼멘 소리를 할 법도 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감명 받은 부분은 슈뢰딩거의 천재성이 아니었다. 학문의 영역에 구애 받지 않던 그의 자유로운 사상이었다. 대학 (University)은 보편적인 (universe) 진리를 연구해야 한다는 게 책을 여는 그의 첫 마디였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담겨 있던 한 생물학자의 길고 긴 비난은 현 시대에도 살아 있다. 지난 번에는 내 유튜브에서 면접시 눈 빛 얘기를 했다고 병원장인 니가 뭘 아냐는 댓글이 달렸다. 나는 내가 안과 의사로 생을 마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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