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영상을 준비하다가 알게 된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었다. 미국의 독립 선언서의 기초를 마련한 정치가이자, 철학가, 과학자로 보스턴 (당시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태어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의 자리까지 오른 위대한 인물이다. 느낀 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1. 죽는 순간까지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한다.
가난한 집, 식민지에서 태어난 프랭클린은 어려서 인쇄소의 일을 하며 책과 접했다. 읽고 쓰는 일을 평생 게을리하지 않은 탓에 그는 언제나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었고 인생에서 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의 세운 계획을 투철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꾸준히 남겨두었던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읽고 쓰는 훈련을 평생 해왔던 그는, 신문사를 운영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고, 공공의 분야에서 평생을 종횡무진 활약하게 된다.
2. 도덕성은 경쟁력이다.
프랭클린은 13가지 덕목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을 평생 지키고자 했고,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가며 지키려 노력했다. 18세기에 84세까지 살면서도 큰 정치적 몰락 없이 자리를 지켜냈던 그의 인생이 그 결과다. 눈 부신 성공 가도를 달려도 약한 도덕성 (weak morality)으로 한 방에 무너지는 인물들이 많다. “남들 다하는데 왜 너는 안 해?” 라는 비아냥은 지옥으로 가는 길의 초대장일 수 있다.
3. 같은 시대 조선의 역사가 참 아쉽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대를 보며, 나는 정약용이 떠 올랐다. 둘 다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한 사람은 새로운 나라의 건국의 기틀을 잡았고, 다른 한 사람은 정치 권력에서 밀려나 18년 동안이나 유배를 당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두 사람에게 허용되는 공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18세기 당시 미국은 식민지였지만 영국 왕실이라는 중앙 정부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상업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계몽주의가 확산되던 시기였으며, 자치 의식을 갖는 시민 사회가 막 형성되고 있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이런 시기는 본인의 역량을 발산할 수 있는 신나는 무대였을 것이다. 도서관, 소방서, 병원, 심지어 국가의 기틀까지, 시대를 잘 타고난 인물은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반면, 조선은 이미 수 백 년 동안 정치의 틀이 짜여진 왕권 국가였다. 그러니 어떠한 개혁도 왕권의 지원 없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공간적으로는 청/일본과 제한적인 무역만이 작동하고 정신적으로는 국가의 이념인 ‘성리학’이 강하게 작동하던 곳. 정약용에게는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허락되었던 넓은 공간이 없었다. 18년 간 유배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그가 꽃피운 사상도 결국 국가의 근대적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정약용이 1700년대 미국에 태어났다면, 그의 사상은 책이 아닌 현대에도 살아 숨 쉬는 ‘제도’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