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황반 변성 환자를 치료하는 망막 의사다. 황반 변성이 심한 환자들은 눈에 생긴 나쁜 혈관을 줄이고 시력을 지키기 위해 눈에 주사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눈에 주사를 맞는 건, 환자에게 공포이자 부담이다. 특히 3~4달에 한 번 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분들은, 병원에 가기 한 달 전부터 슬슬 눈에 주사 맞아야 한다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특히, 심한 황반 변성으로 기약 없이 계속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삶이 우울감에 잠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황반변성 환자들이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시력이 잘 보이는 순간이 아니다. 눈에 주기적으로 맞던 주사를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된다고 듣는 순간이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눈 주사를 앞으로 안 맞아도 된다니? 이거야 말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본다. 그리고 고통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즐거운 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삶에 고통이 없기만 해도 그것은 평온하고 고요한 열반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왜 나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지?" 라는 질문에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다. 질문이 잘 못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 가 올바른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을 해야 "어떡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를 생각할 수 있다.
삼법인, 사성제, 육바라밀… 이런 어려운 불교의 교리들도 결국 보면, “인생은 고통”라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인생이 고통스러우니 그걸 벗어나는 길을 찾아내는게 ‘지혜’일거고, 내가 고통스러운 만큼 남도 고통스러움을 깨달으면 ‘자비’로운 마음이 생길 거다. 내 오늘 하루가 괴로웠던 건, 내가 지혜롭지도, 자비롭지도 못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