럽덥대장 최이슬에게 묻다.
하루하루 쫓기듯 살다 보면 일상의 설렘은 사치라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틈새 속 두근거림을 전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을 '대장'이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이 사람, 중랑구 골목 한편 조그마한 문화공간 '럽덥'을 운영하고 있는 대장. 최이슬님입니다. 다양한 모임의 호스트이자, 작은 책방의 주인. 그리고 마을학교 선생님까지.
그는 어떤 모습으로 일상의 두근거림을 전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를 나아가게 하는 삶의 근육은 무엇일까요. 내 주변 가까이,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루업(GREW-UP) 네 번째 에피소드. 이슬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슬님! 만나서 반가워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이슬입니다.
요즘 이슬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요즘 매일의 일상이 다른데, 오늘로 말씀드려보도록 할게요.
작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사진 공모전의 홍보물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올해에는 영상 기획, 촬영, 편집도 맡게 되었어요. 지난주에 1차 홍보영상 편집을 마무리했고요. 오늘은 브이로그 형식으로 제작하는 영상을 내내 편집했어요.
이 영상을 맡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영상을 분석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음악 하나를 고르기 위해서 어제부터 들었던 음악을 반복적으로 종일 들었어요. 촬영해온 영상 소스를 정리하면서요! 그 사이사이에 미팅 건과 디자인 마무리 건 등 일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했네요. 실은 오늘 일을 하다 살짝 과부하가 되어서 오후에 집에 와 동생과 낮잠을 잠시 잤답니다.
일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셨군요. 과부하가 걸릴 때 스스로를 충전하는 방법을 아는 건 참 중요하죠. 이슬님에겐 그런 취미가 있으신가요?
코로나 이전과 럽덥을 운영하기 전에는 참 많이 돌아다녔어요. 매일 전시회를 다니고, 페스티벌을 다녔고, 여행을 다녔죠. 외부에서 영감을 받는 걸 참 좋아했어요. 요즘은 음… 취미가 뭘까요? 삐용삐용… 위험. 사라진 저의 취미를 찾아주세요…
조금 슬픈 이야기네요 (웃음) 공간을 하나 운영하고 계신다 들었어요.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요.
네, 중랑구 중화동에 10평 정도 크기의 공간 <럽덥>을 운영 중이에요. 이곳은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아동복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고,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장소가 되기도 하고, 작고 큰 모임을 운영하는 장소가 되기도 해요.
제가 좋아하는 문체를 가진 오빠에게 럽덥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전부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럽덥의 방향이 될 글 선물을 받았죠.
이 공간에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작년에 중랑구에서 처음 만난 새로운 친구들도 많았고요. 럽덥에 일이 일어났어! 하면 달려와줄 친구들이요.
이야기를 하다가 또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함께 두근두근 거리는 곳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서울시 마을 예술창작소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서 “두근두근 창작소”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럽덥··· 단어를 되뇔 때마다 발음이 참 귀엽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공간 이름을 지어야 할 때 어떤 이름이 좋을까 정말 며칠을 고민했어요. 한글, 숫자, 외국어 등 찾아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요. 이 공간의 이름을 불렀을 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단어면 좋겠다 생각했죠.
어느 날은 동생과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 동생 전공 책을 가지고 와서 찾아보기로 했어요. 동생이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거든요. 의학용어 책을 펼쳐서 처음부터 넘겨가며 보는데, 세상에! 온갖 의학 용어들이 가득하더라고요. 그래.. 이 책은 안 되겠다 하고 포기하던 찰나, 심장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쓰여있었죠. “lub-dub”
럽덥은 청진기를 통해서 들리는 두근거림을 뜻해요. 심장 판막이 딱-하고 닫힐 때 내는 소리로 만들어지죠. 그렇게 공간 이름 '럽덥'을 운명처럼 만났어요.
럽덥은 청진기를 통해서 들리는 두근거림을 뜻해요.
심장 판막이 딱-하고 닫힐 때 만들어지는 소리죠.
그렇게 공간 이름 '럽덥'을 운명처럼 만났어요.
그런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었군요. 럽덥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럽덥은 코로나가 지금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픈했어요. 2020년 4월 13일이었죠. 문을 열고도 한동안은 모임을 운영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작은 모임부터 시작했죠.
만다라트를 작성해보는 모임, 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 꽃을 다듬는 모임 등등. 제 전공을 살려서 코딩 수업과 부캐릭터를 만들어보는 멀티 페르소나 연구소, 전 세대가 모여서 함께 글을 쓰는 금요일 글쓰기까지. 조용히 사전예약제로 진행하는 글쓰기 전시회도 운영했어요.
복작복작하게 이곳에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지만 소극적인 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올해 초에 작년에 했던 것들을 모아 두고 보니까 꽤나 많은 것들을 했었더라고요.
와.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셨네요. 왠지 예전부터 공간에 대한 꿈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2018년에 친구와 부평역 근처 복층 오피스텔에 살았을 때부터 공간에 대한 꿈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 친구랑 한 달에 한 번씩 프로젝트를 운영했거든요. 집 호수가 1103호라 그 이름을 따 일일공삼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정했죠.
일일공삼 프로젝트의 핵심은 '나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요. 행복, 소확행, 어른, 여행 등.. 주제 별로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토요일 오후 5시에 모여서 저녁 10시까지 진행했었죠. 둘 다 직장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밤새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했고, 프로젝트에서 필요했던 키트도 만들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막연히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일일공삼과 럽덥이 많이 닮아있네요.
이슬님의 직장인 시절은 잘 상상이 되질 않네요! 공간을 차리기 전엔 어떻게 지내셨나요?
5년 전쯤 생각해 보면.. 2017 년도군요. 그때는 막 2년 동안 했던 일을 마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던 연도였어요. 난생처음 하프 마라톤에 도전했고, 베트남에 여행도 갔네요 또.. 50일 정도 유럽여행을 떠났었고 교육기업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어요. 페스티벌을 5개를 내리 가기도 했네요…(백만 원…!)
제일 처음 일을 했던 것도 그렇고 목표나, 계획이 크게 없는 사람이에요. 어떤 일을 해야겠다! 하고 정해놓은 적이 없었어요. 생각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대신 단기로 해야 할 것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어요. 후회를 하지 않게끔요.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일이 되어 다시 저를 찾아오더라고요. 마치 이렇게요. “작년에 절 잘 돌보아주셨죠? 감사해요. 제가 일이 되어 또 돌아왔답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일을 맡아서 진행할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제일 중요한 재미있게! 를 지키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지금은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주인장, 다양한 모임의 호스트, 마을학교의 선생님.. 등 N 개의 영역을 활동하며 본인에게 가장 즐거운 모습이 있을 텐데요.
음… 딱 이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하고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하나의 일 안에도 좋은 모습과 좋지 않은 모습들이 섞여있으니까요. 모든 일이 좋은 면만 있는 것도 아닐 테고요.
그래도 그 일들끼리 뭔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있는 것 같아요. 강사 일을 할 때의 경험이 모임의 호스트에게 도움을 준다던가 말이죠. 제일 좋은 거 하나를 말하자면요. 저의 모든 일에는 사람이 중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래도 혼자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슬 님의 여러 활동들을 관통하는 키워드 #사람, 이슬님에겐 어떤 존재인가요?
혼자 공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도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의 취향이 생기도록 해 주고,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도 제 주위 사람들이 아닐까요.
혼자 일을 해도 재밌지만, 저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만드는 것도, 함께 노는 것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해요.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두근거리는 일을 함께 만들어가면서요.
반대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은 키워드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대장’, 짱! 을 말해요. 럽덥 대장, 쓰담 대장, 사람들이 대장이라 불러주기 시작했어요. 그 단어에 어느새 적응이 되었고, 이제는 대장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강의를 나갈 때도 선생님 말고 대장이라고 불러달라고 하고 있죠. 재밌기도 하고, 뭔가 두목이 된 것 같아 아주 흡족합니다.
대장이요! 이 단어를 참 오랜만에 들어요. 무언가 장난스럽지만 우직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슬님이 그리는 대장의 모습은 무언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부모님이 항상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면서 살자고. 대장을 하다 보면, 리더를 맡다 보면 어느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의 공으로 돌려질 때가 많아요. 그럴 때 기분에 취하지 않고, 주위에 함께 만든 사람을 쳐다보자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일들이니까요.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자고 항상 생각해요. 좀 더 솔직히, 좋은 소리는 대장인 제가 다 듣거든요. 좋은 소리를 함께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함께하는 사람을 빛나게 하는 사람' 이 다짐은 꼭 잊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때마다 어떤 방법을 택했고, 그 방법들이 삶에 어떤 파장들을 만들어냈나요?
힘든 순간들이 올 땐, 그냥 그 자리에 있었어요. 버텼고, 즐기려고 노력했어요. 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나 어려운 상황과 힘든 일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해요. 뭐 가끔은 피하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그럴 때마다 조금씩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힘든 순간 속에서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많이 배웠어요. 정말 온몸으로 책임감을 배웠고, 느꼈어요. 저는 책임감이 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 순간들을 오롯이 버텼고 즐겼기에 생긴 맷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버티며, 이슬 님의 인생을 지탱하는 삶의 근육이 있다면?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저만의 규칙들이 아닐까 싶어요.
남 탓하지 말 것, 행복한 하루를 보낼 것, 항상 끊임없이 기록을 할 것, 지금에 최선을 다할 것, 재미있는 것들을 잘할 것, 사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을 것, 지금 어떻게 살지 충실히 고민할 것, 편안한 사람이 될 것, 거절을 계속해서 잘할 것, 대신 너무 강하게만 하지는 말 것, 럽덥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다닐 것, 인사를 잘할 것, 스트레칭을 잘할 것, 중랑천 뛰러 나갈 것, 사람에게 실망하지 말 것, 매일 꾸준히 일기를 쓸 것, 건강한 생각을 할 것, 매일 하늘을 꼭 볼 것, 식물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 될 것, 약한 사람들에게 약하고, 강한 사람에게도 흔들리지 않을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널리 퍼뜨릴 것.
하나하나가 모두 쉽게 느껴져도 막상 지키기 어려운 일상 속 규칙들이 아닐까 싶어요. 삶의 근육들이 더욱 단단해질 먼 훗날, 누군가 사람 최이슬을 그릴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나요?
재밌는 사람! 뭔가 기대가 되고, 같이 재미있는 일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슬님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문장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자!
1년은 365개의 오늘 하루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모두 착실했던 365개의 오늘 하루 속에서 움직였던 ‘이슬’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제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오늘 하루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죠. 짠! 하고 커다란 결과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오늘 하루도 소처럼 우직하게 나아가려 합니다.
365개의 오늘을 착실히 움직였던 '이슬'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도 우직한 소처럼 나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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