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꿈꾸는 아들, 모세의 일기
겨울은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바람은 매서웠고, 장갑을 낀 손은 둔탁했다. 손가락 끝이 시려왔다. 글자를 적는 일조차 쉽지 않은 날이었다. 그런 날에도 아버지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꽁꽁 언 손을 녹이며 그 춥디추운 날씨에 밖에서 일기를 쓰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는 그런 강박.
아버지는 요즘 무력감에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무력감을 대하는 방식이 특별했다. 그는 무력감과 싸우지 않았다. 그것을 이겨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무력감을 온전히 즐기듯 대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모세야 너도, 늦잠도 허리 아플 때까지 자보고, 드라마 보기로 밤새워 보고, 소설 읽으며 시간 죽이기 해도 돼, 그럼 어때?"
아버지의 이 말씀은 우리가 보통 자신에게 던지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무기력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을 극복해야 할 대상,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무력감을 합리화하려는 어떤 이유도 심각하게 대하지 않고 그저 소중하게 대했다. 늦잠자고 도서관을 늦게 가는 날도, 가기 싫어 쉬는 날도 "그럴 수 있지", "그래, 내 말이" 하며 100% 공감해주었다. 어떤 이유든 동조해 주고,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다정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무력감을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게 지켜보며, 충분히 느끼고 즐기도록 그저 곁에 있어 주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태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 단순한 진리가 우리의 삶에서는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흐름을 믿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든다.
아버지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없는 때가 있고, 매서운 추위 속에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일기를 쓰고 앉아 있는 게 자연스럽게 될 때도 있다는 것.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고 좋은 모습인지 판단하려는 마음조차 내려놓았다. 그저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도록.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그대로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깨달음. 그것이 아버지가 무력감의 시절에 배운 감사함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자신의 무력감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것과 싸우고 있는가, 아니면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 그런 역설의 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