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제주도 방언으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단순히 “완전히 속았어요”라는 뜻인 줄 알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그보다 훨씬 깊고 다정한 결이 담겨 있다.
‘폭싹’은 ‘매우, 몹시’라는 뜻이고,
‘속았수다’는 사실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는 의미다.
표준어로 바꾸면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는 인사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 말은,
살아낸 하루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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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이 말을 감정의 깊이로 풀어낸 장면이 나온다.
애순이라는 어머니는
딸 금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거의 다 내던진다.
자기를 위한 삶은 접어둔 채
딸 하나만 바라보며 모든 감정을 밀어넣는다.
아버지는 더 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무책임이 아니라,
자기를 갈아 넣는 치열한 헌신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 모두를 위해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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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딸 금명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내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엄마가 자신을 위해 자기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데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더 화가 나게 만드는 것이다.
자격지심은 울컥한 말이 되어 튀어나오고,
죄송함은 가시 돋힌 표현이 되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찌르게 된다.
“당신은 왜 항상 아무 말도 없이
모든 걸 내주기만 하죠?”
이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의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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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
그리고 감당하지 못했던 내 마음이
서로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든 관계의 오해는,
스스로에 대한 수용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가장 깊어진다.
금명도, 나도, 우리 모두가—
자기를 온전히 껴안지 못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랑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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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무너졌다는 말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살아낸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인사 같은 말이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정말 애썼어요.”
“말은 못 했지만, 나도 알아요.”
이 말은 그래서,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내 삶에게, 내 오늘에게
한 번쯤 말해줄 수 있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나, 오늘도 폭싹 속았수다.”
“나, 오늘도 살아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