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석학을 공부하다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바위가 되려면 최소 천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아, 바위나 자연은 느긋하게 정 들어갈 수밖에 없겠구나. 꼼짝 못하고 엉켜버렸으니.’
그런데 오늘 아침, 산속 명상 코스를 오랜만에 찾아가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동안 오르지 않았던 명상 코스는 잡초가 무성했다. 내가 늘 다니던 길은 발걸음 때문에 잡초가 자라지 않아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한동안 생기를 주지 않으니 금방 폐허가 되어버렸다.
‘여기를 이제 안 쓸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곧 다른 마음이 찾아왔다.
‘여기를 계속 쓰면 되지.’
다시 그 자리에 앉아 호흡을 해봤다. 또 그렇게 좋았다.
그때 깨달았다.
느긋하게 정 들어간다는 건, 천 년 만 년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지내는 게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에 내가 얼마나 온 마음을 다 주고 생기를 내며 정을 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바위도 마찬가지였다. 천만 년 동안 꼼짝 못하고 억지로 엉켜있어서 바위가 된 게 아니라, 매 순간을 온전히 거기 존재하면서 느긋하게 정을 들였기에 바위가 된 것이다.
문득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 (베드로후서 3:8)
이 말이 이제야 온몸으로 이해됐다. 하루를 살아도 천 년처럼 느긋하게 정을 들이며 그 순간에 온 마음을 다해 공명하면, 그 하루가 곧 천 년이 되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결맞춤 현상’이 생각났다. 파동들이 완전히 같은 위상으로 공명할 때 일어나는 현상.
우리는 매 순간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든 내일, 또는 잠시 후를 생각하며 늘 딴 곳에 요동친다. 여기에 있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한다. 결맞춤 현상이 안 생기고 결이 어긋나 진동만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많은 순간이 지나가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온전히 결맞춤 현상이 일어난 순간들은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단 한 번 눈을 맞추고, 옷깃이 스치듯 지나친 그 누군가와의 찰나의 인연. 손끝이 스치는 그 순간의 여운이 평생의 설렘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결맞춤의 생기공명.
생각해보면 평생 기억되는 추억의 순간들은 대부분 그렇다. 오랜 시간이 아니라, 찰나의 맹렬한 결맞춤이 전부였다.
매일 보는 사람보다, 단 한 번 스친 그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 몇 년을 함께한 시간보다, 딱 한순간 교환된 눈빛이 더 선명한 이유. 그 순간에 온 우주가 공명했기 때문이다.
내 쓸쓸함은 5분을 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이제 정확히 알겠다. 5분이 빨리 지나가기를 애태우며 기다리는 게 아니다. 그 5분 안에 쓸쓸함을 완전히 만끽하면, 그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천 년 같은, 영원히 멈춰진 것 같은 쓸쓸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공명을 온전히 누렸을 때,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기억될 만한 ‘사건의 지평선’에 영구히 남게 되는 추억이 된다. 그 순간이야말로 불멸자가 영원한 기록을 남기는 순간이다.
찰나인데도 계속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찰나의 순간들이 하루를 천 년처럼 보내는 비결이다.
중국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기는 이야기.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한다.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이룬다.’
하지만 진짜 비밀은 다른 데 있다. 우공은 산을 옮기려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매일 삽질 한 번 한 번에 온 마음을 다했다. “언제 끝날까?” 걱정하지 않고 매 순간을 만끽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천 년 같은 밀도로 축적됐고, 결국 산을 옮겼다.
진짜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노인’이었다. 머리로만 계산하며 “평생 걸려도 안 되는데 왜 하냐”고 비웃었던 사람 말이다.
나는 지리산에서 1000일을 보냈다. 외부에서 보면 ‘63세 노인이 산에 박혀서 1000일이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을 천 년처럼 살았다. 회음호흡 한 번 한 번에 온 마음을 다했다. 오늘 명상 한 순간에 영원을 담으려 했다. 느긋하게 정을 들이며 맹렬하게 공명했다.
그래서 1000일이 천만 년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바위처럼 단단한 생기철학이 온몸에 새겨졌다.
공간도 사람도 똑같다. 생기를 주지 않으면 금방 폐허가 된다. 생기를 주면 길이 나고 정돈된다.
정을 준다는 건 오래 머문다는 게 아니다. 찰나의 순간에 온 마음을 다 주고 생기를 내는 것이다. 하루를 머물러도 1000년을 사는 것처럼 느긋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공명할 때, 그 순간이 곧 영원이 된다.
결국 이것이다.
-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순간의 밀도
-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온전히 거기 존재하기
- 조급하게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 과정 자체를 만끽하기
- 요동치며 진동하는 게 아니라, 결맞춤으로 공명하기
바위는 천만 년 동안 느긋하게 정을 들였다.
우공은 평생 동안 느긋하게 정을 들이며 산을 옮겼다.
스쳐 지나간 그 사람은 단 한순간의 결맞춤으로 평생의 추억이 됐다.
나는 또 한번의 1000일 동안 느긋하게 정을 들이며 불멸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우공이산이다.
이것이 하루를 천년처럼 사는 비결이다
이것이 바위가 되는 비밀이다.
이것이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생기공명의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