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 누구와 일상을
완전연소했나요?

by 하봉길

당신은 오늘 누구와 일상을 완전연소했나요?

치매 아내의 지퍼를 내려주던 그 손이 가르쳐준 것

체육센터 안내 데스크에 서 있다 보면 하루 600여 명의 사람이 지나간다.


열쇠를 건네고, 입장권을 확인하고, 웃으며 인사한다. 단순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매일 인간을 본다. 특히 부부를.

어떤 노부부는 매일 함께 온다.


아내가 치매 초기 증상이 시작되어 탈의실에서 옷도 혼자 입지 못하는 상태다.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주변에 애둘러 전한다. 민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어떤 분이 한마디 한다.


"혼자서 옷도 못 입는데 수영장에 데려오면 어떡해요. 오늘은 내가 도와줬지만 여러 사람한테 민폐잖아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인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2인승 장애인 오토바이 앞에 선다. 부인을 조수석에 앉히고, 천막 지퍼를 내려준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추울까봐.


그렇게 출발한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또 다른 부부가 있다.


1,500원짜리 입장료를 누구 카드로 낼 건지 매번 신경전을 벌인다. 부인은 못마땅한 표정이고, 남편은 먼저 나가버린다. 기다리지 않는다.


또 어떤 노인은 부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에 몰입한다. 부인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냥 달관한 자세로 앉아 있다.


드러내놓고 잘해주는 것도 아니다. 애정 표현도 없다. 배려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오늘도 함께 왔다.


그 안에 오랜 세월이 있다. 익숙한 친밀함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다.

나는 29년을 결혼 생활을 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착각했던 것이 있다. 돈이 더 있었다면, 성공했다면, 입지가 더 단단했다면 — 그때 더 잘해줄 수 있었을 거라고.


틀렸다.


체육센터 할아버지는 부자가 아니다. 장애인 오토바이를 탄다. 그런데 그는 오늘도 부인의 지퍼를 내려준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행복은 조건이 갖춰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일상을 함께 온전히 느끼며 공명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29년 동안 그것이 없었다. 꿈을 향해, 사명을 향해 혼자 달렸다. 아내와 함께 걷고 있다고 믿었지만, 나만 걷고 있었다.


일상을 함께 완전연소한 적이 없었다.

당신은 오늘 누구와 일상을 완전연소했나요?


거창할 것 없다. 1,500원 입장료를 두고 티격태격해도 괜찮다. 핸드폰 보며 기다려도 괜찮다. 치매가 와도, 오토바이를 타도 괜찮다.


그저 오늘 이 하루를,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찐 행복이다.


할아버지가 부인의 지퍼를 내려주던 그 손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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