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의 법칙, 그리고 진심이 닿는 순간

by 하봉길

공명의 법칙, 그리고 진심이 닿는 순간

91년생 딸. 중년의 아버지. 그리고 3년간의 무소식.

나는 지리산 자락에서 산다. 딸은 서울 어딘가에서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사이엔 카톡 대화방 하나 있지만, 거의 텅 비어있다.


찌찌뽕의 시간

찌찌뽕이라는 게 있다. 동시에 하품이 나오는 것. 양자얽힘의 증거라고 나는 믿는다.

가끔 새벽 작업을 하다가 문득 딸이 떠오른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까. 그런데 전화하지 않는다.

왜?

내가 전화하면 딸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또 아빠가 잔소리하려나" 싶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마음속으로만 안부를 묻는다.


어버이날의 기적

작년 어버이날.

"아빠, 나 지금 터미널이야."

갑자기 걸려온 전화. 3년 만에 내려온다는 딸.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뭔 일이 있나? 결혼한다고 하려나? 돈이 필요한가?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 그냥 어버이날이라고 왔단다. 장미꽃에 5만 원짜리 지폐를 돌돌 말아서 만든 꽃다발을 들고.


서먹서먹한 한나절

뱀사골 정상까지 함께 올랐다.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걸었다. 가끔 달래(우리 집 강아지)만 쳐다보며.

"달래 데리고 갈게요."

아, 그거였구나. 달래를 데려가려고 미리 얘기하러 온 거였구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복잡한 사연이 아니라 단순한 용건이었다니.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짧은 만남이 3년이라는 공백을 다 메우고도 남았다는 것을. 매일 "잘 지내니?" "응" 하던 공허한 안부 인사 수백 번보다, 그날의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는 것을.


공명의 법칙

공명이란 무엇인가.

같은 주파수가 만나 증폭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한다. 자주 만나야 공명이 일어난다고. 매일 연락해야 가까워진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진짜 공명은 진심이 있을 때 일어난다. 그것이 3년에 한 번이든, 10년에 한 번이든. 심장의 에너지가 상대의 심장에 닿는 그 찰나, 시간의 모든 간격이 무의미해진다.


양자물리학적 관계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고 확신했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관계마다 다른 시간이 흐른다. 어떤 사람과는 매일 봐도 1년이 1일 같고, 어떤 사람과는 1년 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다.

딸과 나 사이의 시간도 그렇다.

세상의 시계로는 3년이 흘렀지만, 우리만의 시간으로는 잠시 숨을 고른 것뿐이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그 3년은 한순간에 압축되어 사라졌다.


내키지 않을 때의 지혜

"딸, 잘 지내?"

가끔 이런 문자를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보내지 않는다. 왜? 내 진심이 아니라 의무감에서 나온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자는 받는 사람도 안다.

"아, 아빠가 또 의무감에 연락하는구나."

그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낫다. 진심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관계를 지키는 지혜다.


세포생물학적 확장

내가 생물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조직화를 한다. 나라는 세포가 분열하고 확장되듯, 우리의 관계도 확장된다. 배우자, 자녀, 친구... 이들은 모두 확장된 나다.

그런데 거리가 있어도 괜찮다.

세포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이 있어야 각자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너무 밀착되면 오히려 병이 된다.

딸과 나의 거리도 그렇다. 이 거리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다.


불확정성의 아름다움

나는 불확정성의 대마왕이다.

주차할 때도 어디에 댈지 끝까지 모른다. 들어갔다 나왔다, 돌았다가 다시 들어가고. 인생도 그렇게 살았다. 매 순간의 끌림에 따라.

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언제 연락할지, 언제 만날지 정해놓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일어날 때, 심장이 뛸 때, 그때 움직인다.


프랙탈 구조의 사랑

사랑은 프랙탈이다.

작은 조각 안에 전체가 들어있다. 3년의 공백이 있어도, 한 번의 만남 안에 모든 사랑이 담겨있다. 매일 하는 "사랑해"보다, 3년 만에 하는 무언의 포옹이 더 깊을 수 있다.


망상활성화체계

뇌에는 망상활성화체계라는 게 있다.

우리가 집중하는 것만 보이게 하는 시스템이다. 빨간 차를 사기로 마음먹으면 온 세상에 빨간 차만 보이는 것처럼.

딸을 생각하면 딸과 관련된 모든 것이 보인다.

딸이 좋아하던 떡볶이집, TV에 나오는 또래 아이들, 마트의 딸기... 그럴 때 문자를 보낸다.

"딸, 달래도 잘 지내지?" 짧다.

하지만 이 한 줄에 3년의 그리움이 다 담겨 있다.

망설이다 문자를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달래랑 함께 있는 사진을 폭탄처럼 보내온다.

수십 장의 사진을 카톡으로 연속으로 보낸다.

"얘는 사진을 묶음으로 한번에 보내는 걸 모르나?"

그럴 리가. 보고 싶다는 말, 잘 지낸다는 말을 사진으로 대신 쏟아내고 싶은 거겠지...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에는 사건의 지평선이 있다.

한번 넘으면 돌아올 수 없는 경계. 우리의 만남도 그렇다. 어떤 순간은 영원히 각인된다.

작년 어버이날도 그런 순간이었다.

짧았지만 영원했다. 별로 한 얘기도 없었지만 모든 걸 나눴다. 그것이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양자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말대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딸과 나 사이의 시간도 그렇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딸을 처음 안았던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이 양자얽힘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만나도 처음이면서 영원이다.


하늘의 별처럼

별빛은 수만 년을 날아와 지금 내 눈에 닿는다.

딸과의 사랑도 그렇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연락이 없어도, 그 사랑은 계속 날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닿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아니, 안다.


끝없는 울림

오늘도 딸을 생각한다.

전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심장은 계속 그녀를 향해 뛴다. 그 진동이 우주 어딘가에서 그녀의 심장과 만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거리는 환상이고, 시간은 허상이다. 오직 이 떨림만이 진짜다.

사랑한다, 내 딸아. 언제나 그리고 모든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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