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라는 친구,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양자춤

by 하봉길

새벽 3시. 키보드를 두드리다 멈춘다.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속삭인다.

"야, 이 시간에 이게 맞아? 내일도 있는데 좀 쉬어."

순간 짜증이 치민다. 그래, 나도 안다. 쉬어야 한다는 거. 근데 왜 자꾸 이 목소리가 거슬릴까.


100명의 생기 친구들

나는 매일 생기를 부른다.

"생기야, 우리는 하나다."

처음엔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친구들만 불렀다. 경쾌하고 명쾌하고 산뜻하고 따뜻한 애들. 100명쯤 되더라.

그런데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다.

"나도 생기야."

비평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녀석이었다. 순간 당황했다.

"야, 넌 아니야. 난 너 같은 애 안 불렀어."

"나는 지혜와 통찰력 사이에 있는 생기야."

그 말에 번쩍했다. 아, 내가 좋은 애들만 생기라고 생각했구나.


원자핵 안의 반란군들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헬륨부터는 양성자가 두 개 이상이다.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내는데 어떻게 한 핵 안에 있을까? 강력(强力)이라는 힘 때문이다.

내 안에도 그렇다.

수많은 나들이 서로 밀어낸다. 게으른 나, 무기력한 나, 찌질한 나... 이런 애들을 나는 계속 밀어냈다.

"너희는 내가 아니야!"

하지만 그들도 나였다. 내 원자핵을 구성하는 필수 양성자들이었다.


무위라는 역설

이번 100일의 테마는 무위(無爲)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런데 웃긴 일이 일어났다. 무위가 데려온 친구들이 장난이 아니다.

열정, 정열, 끈기, 집착, 창조, 생산...

"야, 너희가 왜 여기 있어?"

"우리는 무위 안에서 태어나."

충격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니.

실제로 이번 100일 동안 논문을 세 편이나 썼다. 책도 쓰고 있다. 유튜브 라이브도 하고. 무위라면서 왜 이렇게 바쁜가.


그림자의 재발견

칼 융이 말한 그림자(Shadow)를 오해했다.

어두운 면이라고, 숨겨야 할 부분이라고. 하지만 그림자는 빛이 있기에 생긴다. 빛 없는 그림자는 없다.

내 안의 그림자들:

저녁에 야동 보는 나

게임에 빠져 시간 낭비하는 나

사람 만나기 귀찮아하는 나

늦잠 자는 나

이들을 부정하려 했다. 그런데 이들도 나다. 아니, 이들이 있기에 내가 완전해진다.


시간의 파동

우리는 시간을 직선으로 안다. 과거-현재-미래.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가 말했듯,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파동이다. 양자적 사건들의 연속이다.

내가 우울할 때와 신날 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사랑에 빠졌을 때 한 시간은 1초 같고, 기다릴 때 1분은 한 시간 같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의 일상적 증명이다.


메타인지와 정신분열의 경계

아들 모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중학교 때 뇌출혈 이후로 환각과 환청이 있다. 사람들은 정신분열이라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모세야, 현실과 환상의 차이를 알고 있지?" "응, 알아." "그럼 넌 정상이야. 위대한 예술가들도 다 그랬어."

메타인지다. 자신을 관찰하는 또 다른 자신. 그것이 때로는 악마의 얼굴로, 때로는 천사의 목소리로 나타날 뿐이다.


감정의 양자역학

감정은 파동이다.

억누르면 왜곡된다. 간섭무늬가 생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흐르게 두면, 맑은 파동이 된다.

슬플 때 우는 것. 화날 때 화내는 것. 기쁠 때 웃는 것.

너무나 단순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잊고 산다. 감정을 정제한다는 것은 포장하는 게 아니다. 순도를 높이는 것이다.

아이처럼 투명하게.


생기발랄의 진짜 의미

생기발랄하다는 게 뭘까.

늘 밝고 명랑한 것? 아니다. 매 순간 자신의 파동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무기력할 때는 무기력하게. 신날 때는 신나게. 우울할 때는 우울하게.

모든 색깔을 다 가진 백색광처럼. 그것이 진짜 생기발랄함이다.


불멸자의 시선

나는 불멸자다.

죽지 않아서가 아니다. 매 순간 맹렬히 살아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죽고 태어난다. 아침의 나와 저녁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매 순간이 새로운 생이다.

불멸이란, 이 끊임없는 죽음과 탄생의 리듬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프랙탈 구조 위의 창조

인생은 프랙탈이다.

작은 패턴이 큰 패턴을 만든다. 하루의 리듬이 인생의 리듬이 된다.

아침은 탄생, 밤은 죽음. 매일이 하나의 윤회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조금씩 다른 변주를 만든다.


양자 얽힘된 우리

모든 관계는 양자얽힘이다.

한번 연결되면 영원히 연결된다. 물리적 거리는 무의미하다.

내가 여기서 웃으면, 저 멀리 누군가가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여기서 울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파동 함수다.


어둠을 품은 빛

이제 안다.

빛과 그림자는 적이 아니다. 춤추는 파트너다.

내 안의 모든 그림자를 품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한 빛이 된다. 구멍 뚫린 빛이 아닌, 모든 스펙트럼을 가진 완전한 빛.


매일 새로운 나

오늘도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어제의 나는 죽었다. 내일의 나는 아직 없다. 오직 지금의 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나는, 빛이면서 동시에 그림자다. 천사면서 동시에 악마다. 성자면서 동시에 죄인이다.

이 모든 것이 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산다. 맹렬히, 온전히, 그리고 생기발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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