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우리 집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모세가 도서관에서 돌아왔다. 손에는 여느 때처럼 책이 가득했다. 책상에 책들을 정리하던 모세가 문득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 오늘 사서 선생님이 내가 벌써 천 권이 넘는 책을 빌려갔대.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
"뭐가 이상한데?"
"사람들은 큰 일을 해야 대단하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내가 책 천 권 읽은 건 하루에 한 권, 두 권씩 읽은 거뿐인데 사람들은 대단하대. 뭔가 이상해."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모세는 늘 이렇게 단순한 질문 속에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오늘 얘기해주고 싶던 주제야. 지극히 작은 것에 감춰진 우주의 치트키 같은 비밀이랄까?"
모세가 눈을 크게 뜨고 내 옆에 앉았다.
"치트키? 게임할 때 쓰는 그거?"
"맞아.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는 일종의 치트키가 있어. 그 비밀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아? 지극히 작은 것 속에 숨어 있어."
모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책 천 권 읽은 게 대단한 건, 한 번에 천 권을 읽은 게 아니라 하루하루 한 권씩 꾸준히 읽었기 때문이구나!"
"정확해. 중용 23장에는 이런 말이 있어. '작은 것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그게 정성스러워지고, 정성스러워지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하게 되고, 생육하면 번성하게 된다는 거지."
모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리산의 봄빛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근데 아빠,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커.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내가 모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빅뱅을 알지?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응, 알아. 엄청 작은 점에서 폭발했다고 과학 책에서 봤어."
"맞아. 성경에서는 '빛이 있으라'고 했을 때 그 빛은 사실 작은 알갱이 하나야. 빛 알갱이 하나에서 모든 게 시작된 거지. 그 작은 알갱이 하나가 터지면서 온 우주가 만들어진 거야."
모세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작은 거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 바이러스를 생각해봐.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를 바꿔놓잖아. 우리의 작은 행동도 그래. 네가 오늘 버스를 타느냐 안 타느냐, 이 길로 가느냐 저 길로 가느냐 하는 작은 선택이 네 인생의 경로를 완전히 바꿀 수 있어."
모세가 갑자기 책을 하나 들고 와서 펼쳤다.
"여기! 나비효과! 뉴욕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중국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거! 이거랑 비슷한 얘기지?"
"정확히 그거야. 나는 우주 전체로 보면 원자 하나보다도 작은 존재지만, 내 안에도 우주만큼 많은 원자가 있어. 내 작은 행동 하나가 전체 우주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거야."
모세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럼 아빠, 내가 매일 도서관 가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거야?"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네가 지식을 쌓아가는 것은 네 세상을 창조하는 거야. 예수님도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어. 작은 것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야."
"근데 아빠, 내가 지적장애가 있어서 보통 사람들처럼 못 살잖아. 그래도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이 질문에 내 마음이 잠시 아려왔다. 모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모세야, 네가 도서관에서 책 천 권을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의사들이 네가 살 수 없다고 했을 때, 넌 살아남았어.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고 있지. 이건 모두 작은 기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큰 기적이야.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고 했어. 세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어."
모세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빠, 그럼 나도 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거네? 창조주처럼?"
"그렇지. 우리 모두는 자기 세상의 창조주야.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살 필요가 없어. 우리는 에너지체로서 자유로워. 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건 네가 네 세상을 창조하려는 소망이야."
"근데 세상이 너무 크고 복잡해 보여서 엄두가 안 나."
"그럴 땐 바늘 쌈지부터 정리하라는 옛말이 있어. 복잡한 실타래는 한 끝을 잡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돼. 가장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하는 거야.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잖아."
모세는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책들과 노트들, 그리고 그가 쓰고 있는 글들이 놓여 있었다.
"그럼 내가 매일 조금씩 글 쓰는 것도 내 세상을 만드는 거네?"
"그래,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진주가 되어가는 거야. 조개가 작은 모래 알갱이를 감싸 진주를 만들듯이, 네가 매일 작은 글을 쓰면 언젠가 그게 모여서 책이 될 거야."
모세가 가슴을 활짝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빠, 나 오늘부터 일기를 더 열심히 쓸래. 그리고 내가 읽은 책 내용도 정리할래.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언젠가 내 책을 쓸 거야."
"그거야.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거야. 네가 오늘 한 페이지를 쓰고, 내일 한 페이지를 더 쓰고...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이 완성될 거야."
모세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 차를 다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리산의 봄빛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작은 씨앗이 자라 거대한 나무가 되듯, 모세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언젠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단지 모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우주의 비밀은 정말 지극히 작은 것 속에 감춰져 있었다.
나는 모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