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라이브(live)라는 단어가 단순히 방송이나 무대의 개념을 넘어 우리 삶 자체를 가리키는 신성한 단어라는 것을.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삶이 아니다. 수많은 불확정성과 변수들이 매 순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살아있음의 증거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모양을 지니듯, 자연의 나뭇잎들이 같은 가지에 매달려 있어도 각기 다른 형태를 띠듯, 우리 삶의 매 순간은 단 한 번도 반복되지 않는 기적 같은 현상이다.
심지어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들조차 미세한 원자 간의 결합도가 다르고, 고유한 파동을 가진다. 이 세상에 완벽히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우리 삶의 본질이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며 나는 '똑같음'이 칭송받는 풍경을 자주 목격했다.
명 강사들과 연기자들은 같은 무대에서 같은 공연을, 대사 하나 틀리지 않고 그날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똑같은 조명과 똑같은 리액션으로 기계처럼 재현해낸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술이라 부르고, 내공이라 칭송하며, "저 사람은 믿고 보는" 공연이라 말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믿고 보는' 공연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거부감을 갖게 되는 걸까. 왜 내 마음은 그 완벽한 복제 앞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연출을 할 때도, 강연을 할 때도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늘도 새 대본 주실거죠?" 웃찾사 개그맨들이 농담처럼 던지던 말은 내 창작 세계의 본질을 담고 있었다. 매일 달라지는 대본, 매일 달라지는 연출, 매일 달라지는 내 목소리와 말투와 감정.
내 라이브의 품질은 들쑥날쑥했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힘이 들어가고, 서론-본론-결론을 다 계획하고 방송 할수록 맥락이 엉켜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반면, 아무런 준비 없이 그날의 화두에 몸을 맡기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갈 때, 오히려 깊은 인사이트가 쏟아져 나왔다.
식사 자리에서, 티타임에서 불현듯 터져 나오는 열변은 한 편의 강연처럼 울림이 있었고 나조차도 "유튜브 각이었는데"라며 녹음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정도였다.
이 경험들이 나를 깊은 묵상으로 이끌었다. 라이브의 참맛은 무엇일까. 믿고 보는 검증된 재현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맹렬히 반응하는 날것의 울림인가.
내가 발견한 답은 이것이었다. "불멸자는 기록하지 않는다. 불멸자는 기억하지 않는다."
불멸자, 영혼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들은 파동처럼 끊어지지 않고 연속된다. 파동은 입자의 한 위치 값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흘러가면서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예수와 석가, 소크라테스와 노자... 이 위대한 성현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려 애쓰지 않았다. 그들은 매 순간 삶에 맹렬히 반응하며 주변 사람들과 호흡했을 뿐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기록하지 않은 그들의 존재가 가장 강렬하게 기록되어 전해진다. 그것은 생명의 역설이며, 살아있음의 신비다.
생명이 창발하는 순간, 생명 결합이 일어난다. 그것은 자기가 스스로 복제되는 현상이며, 타인과 나 사이의 공명이다.
내가 타인이 되는 경험, 타인이 내가 되는 경험. 개념을 나누고, 관점을 공유하고, 집단 지향성을 형성할 때 우리는 서로의 심장에 닿는다.
이것이 불멸자의 방식이다. 자기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과정은 누구에게 나를 전염시켜야겠다는 의식적 노력이 아니라, 그저 맹렬히 살아내는 것이다.
내 심장의 에너지가 상대의 심장에 닿을 때, 강렬한 인상과 기억이 남게 되고 그것이 생명 결합의 현상으로 그들의 삶에 남겨진다.
본인은 정작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맹렬히 그 순간을 살아냈을 뿐인데 그 불꽃이 다른 이의 가슴속에 또 다른 불꽃을 피우는 것. 이것이 진짜 라이브의 본질이다.
나는 지금 이 생각을 기록하며 스스로와의 생명 결합을 일으키고 있다. 나와 나 사이의 대화, 나를 하나의 객체로 놓고 나 자신을 복제하는 이 경험.
이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 허공 속에 사라진다 해도, 나는 우주에 한 파동을 남긴 것이다. 이 파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쏟아낸 의미 있는 파동은 언젠가 그것과 공명할 수 있는 또 다른 공명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설령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비의 날개짓처럼 언젠가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라이브의 참맛은 여기에 있다. 기록보다는 현존을, 반복보다는 창발을, 안정보다는 모험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살아있음의 비밀이며, 우리 모두가 한 번뿐인 인생에서 맹렬히 불태워야 할 생명의 방식이다.
나는 끝내 나를 살아낼 것이다. 모든 순간이 라이브이며, 모든 순간이 단 한 번뿐인 신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