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코를 타면 나도 작아진다

by 하봉길

티코를 타면 나도 작아진다



보철적 존재로서의 인간


"티코가 가다가 멈췄는데, 알고 보니 타이어에 껌이 붙어서였대."


한때 유행했던 티코 유머다. 작은 차를 타면 사람도 작아진다는, 웃자고 한 농담.


그런데 정말 농담일까?


놀랍게도 과학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우리는 정말로 타는 차에 따라, 입는 옷에 따라, 사는 집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


인간은 보철적 존재다


'보철적(prosthetic) 존재'라는 말이 낯설 것이다.


보철은 원래 의족, 의수처럼 신체를 대체하는 인공 기구를 뜻한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도구를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는다. 사용하는 순간 '확장된 나'로 인식한다.


지팡이를 짚는 시각장애인에게 지팡이는 손의 연장이다.

운전자에게 자동차는 몸의 확장이다.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뇌의 외장 하드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우리는 도구와 하나가 된다.


차가 바꾸는 내 정체성


대형 트럭 운전석에 앉아본 적이 있는가?


키 160cm의 여성도 트럭 운전대를 잡는 순간 거인이 된다. 높은 시선, 묵직한 엔진음, 거대한 차체. 이 모든 것이 '나'가 된다.


실제로 뇌파를 측정하면:

- 자신감 관련 호르몬이 증가한다

- 공간 인지 영역이 차체 크기로 확장된다

- 말투와 행동이 더 당당해진다


반대로 경차를 탈 때는:

- 조심스러워진다

- 양보를 더 많이 한다

- 목소리가 작아진다


차가 성격을 바꾸는 게 아니다. 차가 '나'의 경계를 바꾸는 것이다.


## 옷이 만드는 또 다른 나


"예비군복을 입으면 왜 다들 삐딱해질까?"


평소에는 점잖은 회사원도, 교양 있는 교수님도, 예비군복을 입는 순간 달라진다.


"오늘 밤은 삐딱하게~"


농담이 아니다. 진짜 삐딱해진다. 왜일까?


옷은 단순한 천조각이 아니다. 옷은 '역할'이고 '정체성'이다.


- 군복 = 명령받는 사람

- 정장 = 사회적 페르소나

- 운동복 = 자유로운 나

- 잠옷 = 무방비한 나


우리는 옷을 갈아입으며 정체성을 갈아입는다. 그래서 면접 때는 정장을 입고, 데이트할 때는 예쁜 옷을 입는다. 그 옷이 주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이 만드는 계급의식


"우리 집은 몇 평이야"

"우리는 강남에 살아"


초등학생들까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집은 가장 큰 보철물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곧 확장된 몸이 된다.


- 넓은 집 → 마음도 넓어진다

- 높은 층 → 시선도 높아진다

- 좋은 동네 → 자존감도 올라간다


이것은 허영이 아니다. 실제로 뇌가 그렇게 작동한다. 내가 속한 공간을 '나'로 인식하는 것이다.


브랜드라는 이름의 갑옷


명품을 걸치면 왜 기분이 좋을까?


"그냥 비싼 거 산 티 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어느 유명 패션 브랜드 CEO의 말:

"옷은 또 하나의 몸이다. 우리는 옷을 파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판다."


브랜드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를 입으면 나도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


- 나이키 = 승리의 여신

- 샤넬 = 독립적인 여성

- 롤렉스 = 성공한 사람


우리는 브랜드를 통해 되고 싶은 나를 입는다.


디지털 시대의 보철물


현대인의 가장 친밀한 보철물은 뭘까?


스마트폰이다.


- 기억 = 사진첩과 메모

- 관계 = 연락처와 SNS

- 지식 = 검색과 AI

- 일상 = 앱과 알람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왜 그렇게 불안할까? 단순히 비싸서가 아니다. '나의 일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모포비아(Nomophobia)라는 공포증이 있다. No Mobile Phobia,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증상이다.


이미 우리는 사이보그다. 기계와 결합한 존재.


## 공간이 바꾸는 나


같은 사람도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도서관의 나**: 조용하고 진지하다

**클럽의 나**: 신나고 외향적이다

**집의 나**: 편하고 나른하다

**직장의 나**: 프로페셔널하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공간이 주는 에너지에 몸이 공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소의 영향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


- 창의적이고 싶다면 → 카페나 열린 공간으로

- 집중하고 싶다면 → 도서관이나 독서실로

- 활기를 얻고 싶다면 → 자연이나 공원으로


공간을 바꾸면 나도 바뀐다.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옷


가장 강력한 보철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로 '관계'다.


- 부모 앞의 나 = 어린아이

- 상사 앞의 나 = 부하직원

- 친구 앞의 나 = 편한 사람

- 연인 앞의 나 = 사랑스러운 사람


우리는 관계라는 옷을 입고 매 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누구냐"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보철적 존재의 자유


이쯤 되면 불안해질 수 있다.


"그럼 진짜 나는 뭐야?"

"나는 그냥 환경의 산물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자유다.


우리는 언제든 다른 나가 될 수 있다.

옷을 바꾸듯, 공간을 바꾸듯, 관계를 바꾸듯.


고정된 정체성은 없다.

매 순간 새로운 나를 창조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보철물 선택하기


이제 알았다면, 의식적으로 선택하자.


**오늘 어떤 나가 되고 싶은가?**


- 자신감 있는 나 →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 창의적인 나 → 새로운 공간을 찾는다

- 따뜻한 나 →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 성장하는 나 → 배울 수 있는 환경에 간다


우리는 환경의 노예가 아니다.

환경을 선택하는 창조자다.


마지막 통찰


티코를 타면 정말 작아질까?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아질 필요가 있다. 겸손해지고, 조심스러워지고, 섬세해질 필요가.


때로는 커질 필요가 있다. 당당해지고, 과감해지고, 도전할 필요가.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타고,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그것이 오늘의 당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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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다른 나를 입고 산다. 의식적으로 선택하라. 그것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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