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맞춰 살려고 애썼다. 부, 영향력, 다수의 사람들과의 만남. 이런 것들만이 모범적인 삶의 답이라고 믿었다.
K-pop 팬덤 시장을 개척하고, 트위터 60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기브콘 앱으로 3조원 시장을 창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과는 화려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뭔가 어긋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삶의 성공이나 행복을 측정할 때, 일상의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일상적인 만족을 추구한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마다 고유한 주파수와 템포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누구는 아주 빠르고 역동적으로, 누구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산다. 진동수가 높거나 낮은 것이 좋고 나쁜 것은 아니었다.
대사량이 큰 사람과 소화가 느린 사람이 있듯, 삶의 에너지 사이클도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몇 배 많은 활동을 소화하지만, 그런 삶을 억지로 권하면 힘들어질 수 있다.
반대로, 액티브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느긋한 일상을 강요하면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럽다고 느낀다. 나 역시 14억 규모 프로젝트를 강행하는 저돌적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 행복을 느끼는 순간, 의욕과 에너지가 넘치는 일과 흥미 없는 일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행 분석을 통해 내가 화토가 과다하고 수금이 부족한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돈이 들어와도 바로 나가서 축적이 안 되고, 팀보다 혼자 작업을 선호하며,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삶의 스타일을 유형별로 구분하여 내가 어떤 유형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확인하고, 해당하지 않는 유형은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사람마다 플라톤처럼 이상을 추구하거나 디오게네스처럼 자기 식대로 사는 등 완전히 다른 유형이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기운의 사이클이 존재하며, 풍족함과 결핍을 자연스럽게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풍족함만 지속되면 그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고, 결핍을 경험함으로써 더욱 삶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허기짐이 있어야 미각의 기쁨과 음식의 행복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허기짐은 나쁜 것이라기보다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중한 에너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함과 겨울같은 경험도 삶의 일부이며, 음과 양의 반복을 통해 삶의 다양한 맛과 진실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이클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완전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성공과 행복의 판단 기준을 스스로 정하기로 했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 기준이 외부의 틀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유형이 무엇인지 벤치마킹하거나 롤 모델을 정한 뒤, 현재 상황을 점검해 원하는 삶을 실현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고 싶다는 내 꿈도 이제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 고유한 진동에서 나온 것임을 확신한다. 병오일주의 태양 에너지, 편인과 식신의 창조적 재능이 이런 꿈을 꾸게 한 것이다.
사주나 주역 같은 외부의 지표 없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방식은 디오게네스, 원효처럼 남과 비교하지 않고, 무위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 기준이 없고 오롯이 내 결대로 살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삶은 누구와도 견주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삶을 실현하기 어렵기에, 나는 다양한 시도와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찾은 것이 바로 자신만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자세로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꿈이나 목표가 크고 때로는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조급함이나 자괴감을 내려놓고 리셋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내 삶의 온전함은 이미 이루어진 상태로 받아들이며, 남들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이 충분하며, 더 이루지 못한 것이 있더라도 미련 없이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더 이상 이루고자 애쓸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가 충분하고 완전한 자기 충족임을 의미한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남이 정하게 하지 마라. 내 고유한 진동에 맞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라."*